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입법, 사법, 행정 등 삼권분립 흔들려
신뢰 상실한 사법부에 ‘특판’, ‘탄핵’, ‘방탄판사단’ 용어 회자
상고법원으로 출발한 사법농단, 핵심은 행정-사법 재판거래
전국법관대표회의 ‘탄핵소추’ 의결했지만 실제 탄핵 어려워
2019년은 삼권분립 엄정히 지키는 사상 최초의 해 되기를


다사다난했던 2018년, 한해를 마무리할 시점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보다 나은 내일과 내년을 위해 올해 국내외를 달군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10대 뉴스는 ▲남북정상회담, ▲미중무역전쟁, ▲북미정상회담, ▲6・13지방선거, ▲소득주도성장, ▲미투(Me too), ▲사법농단, ▲9・13부동산대책, ▲방탄소년단, ▲글로벌 자연재해 등이다.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올해의 나날은 내일의 대한민국을 더 보람 있고 알차게 하는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다.<편집자주>

<목차>
① [통일]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평화여 오라
② [국제] 中기술굴기 향배 가를 미중무역전쟁
③ [통일] 트럼프・김정은 세기적 북미정상회담
④ [사회] 미투, 남녀 性대결 부른 미완의 혁명
⑤ [정치] 정치지형 판도 뒤엎은 6・13지방선거
⑥ [경제] 포용성장 속도 못맞춘 소득주도성장
⑦ [사회] 상고법원 사법농단, 양승태 겨눈 칼날
⑧ [경제] 9・13부동산대책에 강남3구 집값 휘청
⑨ [문화] 세계뮤직의 핵폭탄 방탄소년단(BTS)
⑩ [환경] 폭염・산불・지진...자연재해 덮친 세계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2018년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등 사법농단으로 인해 사상 최초로 검찰이 사법부 자체를 수사한 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삼권분립(입법, 사법, 행정)’이 위태롭게 흔들린 해로 기록됐다.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스트레이트뉴스DB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스트레이트뉴스DB

행정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재판이 거래(개입 혹은 지연)됐고, 법관들의 비리가 덮였으며, 지도부 성향과 다른 판사들의 블랙리스트가 작성됐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80명이 넘는 전・현직 법관들을 조사했고, 법원행정처 및 관계자들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 과정에 중간고리 역할을 하며 핵심 실무를 담당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법원행정처 처장을 지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 등 검찰이 청구한 각종 영장이 번번이 기각되면서 ‘특판’과 ‘탄핵’이라는 용어가 회자됐다. 국민들은 신뢰를 상실한 법원을 ‘방탄판사단’이라 불렀다. 이 모든 의혹의 중심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자료:대법원) ⓒ스트레이트뉴스DB
대법원 전원합의체(자료:대법원) ⓒ스트레이트뉴스DB

사법농단의 발단

사건의 발단은 대법관 1명이 매년 처리해야 하는 연간 3,000건이 넘는 사건수다(2012년 기준). 1년 내내 하루 평균 8건 넘게 판결을 내려야 한다. 전문 분야 따위는 없다. 가히 재판 담당 AI 수준, 애초부터 제대로 된 판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독일에는 300여 명의 대법관이 있다. 이탈리아의 대법관은 250여 명이고, 프랑스는 129명(파기원), 스페인은 70여 명, 오스트리아는 50여 명, 네덜란드는 30여 명이다. 미국에는 대법관이 9명뿐이지만, ‘상고허가제’를 워낙 엄격하게 운용하고 있어 대법관 1인이 연간 맡는 사건은 8.5건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대법원장 포함 14인의 대법관이 모든 상고 사건을 맡고 있으며, 상고는 일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법관의 수를 늘리거나 상고법원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중 양승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을 택했다. 상고법원이란, 그동안 대법원이 맡아오던 대부분의 상고심을 대신 맡을 법원을 말한다.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를 위해 입장하는 재판부(2014.12.09) ⓒ스트레이트뉴스DB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를 위해 입장하는 재판부(2014.12.09) ⓒ스트레이트뉴스DB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판결이 내려진 2014년 12월 19일, 국회에서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의원 168명의 서명으로 발의됐다. 그러나 개정안은 빛을 볼 수 없었다.

이유는 개정안이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는 헌법 제101조 제2항과 정면으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사건을 담당할 법원의 기준도 모호했다. 무엇보다 상고법원이 설치될 경우, 대법원장이 국회 동의도 없이 최소 30명에서 최대 300명에 이르는 대법관을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이때부터 상고법원 설치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 됐다. 헌법은 어떻게든 우회로를 만들 수 있다 쳐도, ‘국회 동의도 필요 없는 임명권’은 난제였다.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이 비대해지는 것을 우려하는 행정부 수장으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선택은 당시 행정부 수장, 즉 박근혜 대통령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설득' 또는 '거래'였다.

사법행정권 남용의 서막

2015년 8월, 양승태 대법원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가진 오찬 석상에서 상고법원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은 오찬 후 양 대법원장에게 “쓸데없는 일을 하셨다”고 질타했다. 양 대법원장이 행정부 수장과 거래를 시도한 증거는 법원행정처가 지난 5월 공개한 98개 문건에도 다음과 같이 적시돼 있다.

“여권에 유리한 재판 결과를 청와대에 대한 우호적인 접근 소재로 삼아야 한다.”

“상고법원을 만들면서 법관을 선정할 때, BH(청와대)와 ‘실질적으로 협의한다’는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

또한 문건에는 법관 사찰, 원세훈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 세월호 사건, 제주 해군기지 사건, 밀양 송전탑 사건, 리퍼트 전 미국대사 피습 사건, KTX 해고 승무원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쌍용차 사건, 콜텍 해고노동자 사건 등 사법부 스스로 존립 근거를 무너뜨리는 정치 관련 사건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오찬 직후 법원내부통신망에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는 차성안 판사(사법연수원 35기)의 글이 올라왔다. 글의 요지는 “상고법원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법관의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판사들이 댓글과 대댓글을 달아가며 폭발적인 호응을 보였다.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차성안 판사(자료:CBS) ⓒ스트레이트뉴스DB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차성안 판사(자료:CBS) ⓒ스트레이트뉴스DB

놀란 양승태 사법부는 당시 법원행정처 임종헌 차장을 중심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차성안 판사 게시 글 관련 동향과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이 작성됐고, 차 판사의 사촌형인 차문호 부장판사를 동원한 설득작업도 이뤄졌다.

그러나 차 판사는 아예 언론기고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했다. 결국 법원행정처는 심의관실과 윤리감사관실을 동원, 재산 뒷조사까지 해가며 차 판사에 대한 압박에 돌입했다. 하지만 어떤 비위 사실도 나오지 않았고, 항명에 가까운 이 사안은 그대로 묻히는 듯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사법농단의 실체

북한 김정남 살해와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구속으로 어수선하던 2017년 2월, 일부 판사들이 “법원행정처가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학회 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비교적 사소한’ 의혹을 제기했다. 대번에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 양승태 사법부는 “조사 결과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지만, 일선 판사들은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개최해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이 사안은 그해 9월 김명수(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 취임과 동시에 수면 위로 부상했다. 취임 두 달 후,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의 학회 활동 부당개입 의혹’에 대해 2차 조사를 지시했고, 이 조사에서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한 문건,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항소심 선고를 전후해 대법원과 청와대가 교감을 나눴다는 문건 등이 대량 발견됐다.

대법관들은 일제히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여론은 들끓었다. 이후 3차 조사가 이어졌고, 올해 5월 특별조사단은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 재산 등을 조사한 문서 98개 등 문제 소지가 있는 410개 문서들을 찾아냈다. 양승태 사법부가 청와대와 사전교감을 통해 재판을 물밑 조율한 사실이 드러났던 것이다.

ⓒ스트레이트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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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판사들은 지난달 19일 다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고,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에 대한 ‘탄핵소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채택했다(참석자 105명 중 찬성 53, 반대 43, 기권 9).

다만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탄핵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는 점, 사법부 문제를 탄핵의 장인 국회로 끌고 가기는 어렵다는 점 등에 비추어 실제 탄핵까지 이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견이 법적 효력이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무너진 신뢰 회복해 삼권분립 원년 되길

사법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4%)에 훨씬 못 미치는 27% 수준이다(‘한눈에 보는 정부 보고서’, OECD, 2015). 73%의 국민이 사법부를 불신하는 현실에,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농단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사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고 행정부와 사법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후, 판결은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회복하는 모양새다. 한일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대한 올해 10월과 11월 판결이 대표적이다.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춘식(95)씨 등 4명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2012년 소송을 제기한 이후 6년 만이다.

11월 29일, 대법원은 양금덕(89)씨 등 5명의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등 23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에서도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상고 접수 후 5년, 전체적으로 무려 18년 만에 얻어낸 값진 승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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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질 때만 해도, 판결의 주체 문제가 대두됐다. 김명수 대법원장 또는 법원행정처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 검찰이 법원을 수사한다 해도, 그에 대한 판결은 법원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다. ‘특판’이 회자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5월, 전국법관대표회의 최기상 의장(부장판사)은 “재판 거래는 헌정 유린 행위이며, 관련자들에 대해 그 책임에 상응하는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틀 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조단이 이번에 여러 개의 컴퓨터를 남의 일기장 보듯 뒤졌습니다. 또 4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야 됩니까? 그 이상 뭐가 밝혀지겠습니까?”

잘못한 것 없으니 조사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 스스로에게 무죄를 선고한 말이다. 수사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 양 전 대법관 역시 수사 대상이다. 똘레랑스(tolerance, 관용) 정신으로 무장한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Voltaire)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이미 무죄를 판결해버린 양 전 대법원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위해 목숨이라도 걸고 싸우겠습니다.”

2018년은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으로 인해 사상 최초로 검찰이 사법부 자체를 수사한 해였다. 그러나 사법부의 행정부 종속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당시 사법부를 알고 있다. 2019년은 무너져 내린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삼권분립을 엄정히 지키는 사상 최초의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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