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뉴시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는 참 좋은 경제제도다. 시장수요로 표현되는 사회적 가치, 즉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생산해내는 사람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정의로운 제도고, 그 가치를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효율적인 제도다. 이런 일을 더 잘하는 방법을 고안하도록 끊임없이 혁신을 고취하는 역동적인 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시장경제를 강력하게 옹호한다.

그러나 시장을 적절하게 규제하고 보완하지 않으면 시장경제는 아주 나쁜 제도로 전락하고 만다. 혁신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여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빼앗고 약자를 착취하여 돈을 버는 일이 많아진다면 정의가 무너지고, 효율이 망가지며, 혁신도 지체될 것이다. 돈과 힘과 정보를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들을 쥐어짜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공동체는 파괴된다. 그래서 약자 보호를 위한 규제는 건강한 시장경제 발달의 필수요소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경제의 현실을 둘러보면 가치 창출보다 가치 약탈로 돈을 버는 일이 만연하고 있다. 대주주에 의한 소액주주 권리침탈, 생산성은 증가하는데 실질임금은 올려주지 않아 기업이윤만 확대시키는 노동착취, 대기업이 하청기업을 쥐어짜는 불공정거래, 장사 좀 잘되면 임대료를 올려버리는 건물주에 의한 임대인 갈취, 본사가 가맹점이나 대리점을 후려치는 갑질 횡포 등이 그런 사례다.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주고 온갖 비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두고두고 '마른 수건 쥐어짜기'로 돈을 뽑아내는 약탈적 대출이 만연하고 있어,가계부채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비참함과 신음소리를 우리 사회 밑바닥에 양산하고 있다.

시장을 맹신하는 이들, 약탈적 자본의 변호인들은 약자를 보호한다는 규제가 오히려 약자에게 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아동노동을 금지하면 가난한 가정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으며, 이자율을 제한하면 급전이 필요한 서민이 돈 빌릴 길이 막힌다는 것이다.일리가 있는 듯하지만 잔인하고 무식한 주장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도움을 주어 스스로의 미래를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복지다. 어린이는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하고, 가족이 직장을 잃거나 병이 들어서 급전이 필요한 경우에 사회보험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현대 복지국가의 기본정신이다. 약자보호를 위한 규제와 약자가 약탈적 거래를 거부하고 시장경쟁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복지시스템은 서로 맞물리는 것이며, 이는 건강한 시장경제 발달의 필수요소다.

사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착취가 만연했던 19세기 자유방임 자본주의 시대에 비해 규제와 복지가 발달한 20세기에 경제성장률이 훨씬 높았다. 하버드 대학의 클라우디아골딘은 20세기가 ‘인적자본’의 세기였다고 말한다. 약자들의 미래를 파괴하지 않고 사회가 ‘인적자본’ 축적을 책임져 모두의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성장도 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에 글로벌 금융자본주의가 득세하면서 규제와 복지를 반대하고 시장만능을 외치는신자유주의 사조가 유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규제와 복지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으면서 이 몹쓸 사조까지 들여와서 약자들이 살기 참 어려운 나라가 되고 말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총선과 대선을 통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향한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었다. 약자보호와 복지확대로 모두가 더불어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경제민주화는 실종되었고, 복지공약은 후퇴를 거듭했다. 경제활성화가 우선이라는 것이다.무엇이 진정으로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유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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