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광복 70주년과 469돌 한글날을 맞아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최초로 복간됐다.

교보문고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1940년부터 소장해온 훈민정음 해례본을 정밀한 고증과 작업을 거쳐 최대한 현존하는 원본의 모습에 가깝게 출간했다.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반포 맥락을 담아낸 중학생 눈높이의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한글의 탄생과 역사'도 함께 선보였다. 여기에는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영어 번역본도 수록했다.

6일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복간 행사에는 간송(澗松) 전형필의 손자인 간송미술문화재단 정인건 사무국장, 해례본의 한글 해설서를 집필한 훈민정음학 학자인 김슬옹 워싱턴 글로벌유니버시티 교수, 교보문고 컨텐츠사업단 안병현 단장, 출판팀 허균 편집장이 참석했다.

안병현 단장은 "2016년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반포된 지 570년이 되는 해"라며 "우리가 현재 쓰는 모든 글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모사본과 영인본(복사본)으로만 유통되던 해례본을 최초로 원본과 똑같이 간행해 원본의 가치와 의미를 온 국민이 함께 나누게 됐다"며 "570년이란 세월의 흔적까지 담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해례본 복간에는 1년여가 소요됐다. 허균 편집장은 "2014년 상반기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방식과 절차 등을 논의했고 7월에 프로젝트를 발의했다"며 "이후 철저한 고증작업과 복간물 제작을 둘러싼 시행착오 끝에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복간물을 제작했다"고 전했다. "원본과 동일한 4침안정법과 자루매기, 전통한지채택, 100% 수작업 재본 등을 거쳐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만들었다"며 "정확한 고증에 의해 훈민정음 해례본의 표지를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정인건 사무국장은 "촉감이나 재질이 매우 흡사하다"고 인정했다.

1446년 발간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 사실을 알린 뒤 정인지 등의 학자들과 함께 창제 목적과 글자의 원리, 사용법 등을 설명한 한문해설서다. 그러나 5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해례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1930년대 일제는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우리의 말과 글 사용을 금지했다. 훈민정음과 관련한 문헌은 모두 불태우거나 훼손해 역사 자체를 부정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어용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소문과 추측만 무성하던 해례본의 존재가 드러난 것은 ‘문화유산 수호자’라 불린 간송 덕분이다.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편안한 삶 대신 민족의 뿌리를 지키는 데 앞장선 간송이 역사 기록에만 남아 있던 해례본을 지켜낸 것이다. 수소문 끝에 당시 기와집 수십 채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 해례본을 사들이면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전인건 사무국장은 "1940년에 대학생이던 이용준 선생의 본가인지 처가인지 확실치 않으나 경북 안동에서 해례본이 발견됐고 간송에게 연결됐다"며 "습득 후 확인작업을 거쳤고 조선총독부가 한글을 폄하하던 시대적 분위기에 맞서 해례본의 내용을 밝히는 기사를 신문에 실었다"고 밝혔다.

이후 간송은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해례본을 소장하고 있다가 광복된 후 바로 조선어(한글)학회 간부들에게 존재를 알리고, 이듬해인 1946년 최초의 영인본이 조선학회에서 발간됐다.

김슬옹 교수는 "해례본은 1940년 홍기문, 방종현 선생이 최초 번역했는데 그게 조선일보에 5회에 걸쳐 연재됐던 것"이라며 "이후 35종의 각종 번역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내가 한 번역은 독창적 번역은 아니다"며 "차이라면 학문성과 대중성을 결합해 번역했으며, 현대 한국어에 능통한 원어민과 함께 영어 번역을 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30여 년간 한글 연구에 몰두한 김슬옹 교수는 앞서 KBS '한국의 유산'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해설한 바 있다. 이번 해설서에 대해 "학자로서 원문을 직접 보고 해설을 맡게 돼 영광"이라면서 "문자와 책, 번역을 포괄하는 총체적 해설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해설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에는 문자이야기가 담겼다. 세종대왕이 왜 한글을 창제했으며, 양반사대부들은 정말 한글에 반대했는지, 또 훈민정음이 400년 넘게 비주류 문자로 어떻게 발전해나갔는지를 밝혔다.

2부는 책 이야기다. 해례본의 구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도형과 그림으로 쉽게 설명했다. 또 원본의 발견과정을 총체적으로 밝혔으며, 해례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내용의 실체는 무엇인지를 두루 살폈다. 김슬옹 교수는 "그동안 학자마다 다른 의견이 많았던 사성점과 권점을 완벽하게 밝히고 정확히 표시했다"고 강조했다.

3부에서는 번역을 했다. 김 교수는 "해례본을 현대 활자본으로 구현함으로써 교육 자료는 물론 대중의 교양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식의 기반을 세웠다"며 "무엇보다 온 백성과 우리말을 나누고자 한 세종대왕의 문자사상과 꿈을 담았다"고 알렸다.

복간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다. 허균 편집장은 "원본에 낙서가 많아서 낙서를 둔 채로 복간할지 낙서를 지우고 최대한 세종대왕의 뜻을 많이 보여줄지 고민했다"며 "원본을 최대한 복원하려고 한지를 사용했는데, 한지의 보풀이 인쇄기에 끼어서 4차례나 고장 났다. 또 제작단가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책값의 50% 이상이 제작비로 들어갔다"며 "3000부를 초판으로 찍었는데, 25만원이어서 일반인들이 구매하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 편하게 볼 수 있는 보급판을 만드는 것도 고민 중이고, 해설서도 따로 발매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총 44쪽에 걸친 낙서는 간송이 습득하기 전 소장자가 한지의 빈 공간에 공부를 한 흔적인 것으로 추측됐다. 전인건 사무국장은 "고서는 한지를 루프 형태로 제작했는데 그 한지의 중간을 자르면 안쪽이 백지"라며 "소장자 중의 한 분이 그 빈 부분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김슬옹 교수는 "얼핏 사서삼경 가운데 대학의 내용으로 보였는데, 소장자가 알뜰살뜰 공부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낙서에 대한 후속연구를 진행 중인데, 내년에 낙서를 판독해 공개할 예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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