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미국 국채가 자산의 가격을 결정한다

채권왕 빌 그로스Bill Gross는 말했다. “채권시장이 막강한 이유는 모든 시장의 기본 토대이기 때문이다. 신용비용, 금리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주식과 주택을 포함한 모든 자산의 가치를 결정한다.”7 그의 말
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화폐가 빚debt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빚 그 자체인 채권이야말로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다. 달러는 미 연준이 발행한 어음이고 채권은 재무부가 발행한 어음이다. 차이가 있다면 재무부 어음, 즉 국채에는 만기가 있고 이자가 붙는다는 점이다. 화폐는 이자와 만기가 없는 독특한 형태의 부채다.

채권債券, bonds은 쉽게 말해서 빚 문서다. 모든 채권에는 ‘언제 빚을 갚고, 그때까지 매년 얼마의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이 명시되어 있다. 다시 말해 채권은 규격화된 차용증이다. 채권 발행자는 그 차용증을 불특정다수에게 판매함으로써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차용증을 국가가 발행하면 국채, 기업이 발행하면 회사채다. 국채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떼일 염려가 없다. 채권을 구입한 사람은 만기가 되기 전 언제라도 보유한 채권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다. 이때 채권 가격은 시장에서 정해지기 때문에 액면가보다 높거나 낮을 수 있다.

채권 발행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수록 높은 이자가 붙고 신뢰도가 오를수록 낮은 이자가 붙는다. 미국 국채나 일본 국채 같은 안전자산에 돈이 몰린다면 그만큼 시장이 불안하다는 의미다.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높은 수익률을 포기하는 대신 위험을 줄이는 전략이다. 2018년 1월 25일 현재 우리나라의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연 2.22퍼센트이고, 3년 만기 회사채 수익률은 연 2.75퍼센트다. 현금 1억 원을 국고채에 묻어두면 3년 후에 얼마가 되는지 계산해 보자.

100,000,000×(1+0.0222)³= 106,808,946

약 680만 원이 불어났다. 이런 식으로 이자에 이자가 붙는 채권을 ‘복리채’라고 한다. 국고채와 지방채 대부분이 복리채로 발행된다. 이자소득에 대한 세금을 빼면 수입은 더 줄어든다. 채권은 이자소득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만기가 되기 전에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팔았을 때 생기는 양도차익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국채라고 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처럼 휘청휘청하는 나라의 국채는 매우 위험한 자산이다. 따라서 금리가 높다. 돈(달러)은 필요하고, 차관을 얻자니 선뜻 빌려주려는 나라나 은행은 없다. 국가가 부도나면 국채 또한 휴지 조각이 되기 때문에 아무도 그 나라 국채를 사려 하지 않는다. 결국 높은 금리로 유혹하는 수밖에 없다.

채권의 수익률이 높아졌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액면가 10만 루블의 러시아 국채에 투자했다 치자. 만기는 5년이고 고정금리는 연 10퍼센트, 즉 1만 루블이다.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채 가격이 액면가와 같은 10만 루블이면 수익률은 연 10퍼센트다. 러시아의 경제 사정이 악화되어 러시아 국채의 시장가격이 9만 루블로 떨어지면 수익률은 어떻게 될까?

9만 루블을 투자하여 연 1만 루블의 이자소득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수익률은 11.1퍼센트로 증가한다. 만약 러시아 경제가 호전되어 국채 가격이 11만 루블로 상승하면 수익률은 9.1퍼센트로 하락한다. 국채 수익률이 하락한다는 것은 그 나라 정부와 국민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다.

위험이 크면 수익도 크다high risk, high return. 고스톱을 쳐 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고’를 계속 부르면 고박을 쓸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대신 점수가 날 경우에는 몇 배의 돈을 따게 된다. 이게 투자
의 매력이고, 패가망신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국채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어떻게 될까? 투자자들이 매력이 떨어진 채권을 내다 팔기 시작하면, 채권의 가격은 하락하고 수익률은 상승한다. 정부가 추가로 채권을 발행하려면 더 높은 이자를 약속해야 하고, 따라서 금융비용은 점점 커진다. 더 이상 금융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밖에 없다.

첫째, 채권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재정지출을 줄인다. 둘째, 세금을 올려서 적자 폭을 줄인다. 셋째, 채무불이행을 선언한다. 세 번째는 최악의 경우이고, 앞의 두 가지 방법도 유권자의 반발을 사기 때문에 결행하기가 쉽지 않다.

금융시장에는 수많은 종류의 채권이 흘러 다닌다. 이 세상의 모든 채권을 금리가 낮은 채권부터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으면 맨 밑바닥에 놓이는 것은 미국 국채다. 맨 꼭대기에는 망하기 직전의 회사채가 놓일 것이다. 꼭대기 근처에서 노는 채권을 정크본드junk bond라고 한다. ‘쓰레기’라는 뜻이다.

미국이 막대한 채무를 지고 있음에도 미국 국채가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미국 국채는 떼먹힐 염려가 없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인쇄기로 달러를 찍어서 갚으면 된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기축통화이고, 외환시장에서도 그럭저럭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수익률이 같으면 투자자는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쪽을 선택한다. 만약 미국 국채의 수익률과 브라질 국채의 수익률이 똑같다면 미국 국채 대신 브라질 국채를 보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국채의 수익률과 미국 기업의 회사채 수익률이 같은 경우에도 미국 국채를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채권은 미국 국채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시장에서 팔리기 때문이다.

그 말은 미국의 국채 수익률이 모든 금융자산의 가격을 산정하는 기준이라는 뜻이다. 바닥이 움직이면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이 흔들린다. 미국의 국채 수익률이 급격하게 상승하면 미국의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준다.

1979년 미국 재무부에서 발행한 1만 달러짜리 채권. 미국 국채는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꼽히며, 미국의 국채 수익률은 모든 금융자산의 가격을 산정하는 기준이 된다.
1979년 미국 재무부에서 발행한 1만 달러짜리 채권. 미국 국채는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꼽히며, 미국의 국채 수익률은 모든 금융자산의 가격을 산정하는 기준이 된다.

국가는 왜 채권을 발행할까? 세금만으로는 재정을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로와 항만을 건설하고, 군대를 유지하고, 무기를 사고, 각종 복지사업을 시행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 월급과 국회의원 세비도 정부 예산에서 지출한다. 대폭 감세와 함께 대규모 재정지출이 필요한 트럼프의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미국은 더 많은 채권을 발행해야 할 것이고, 미국의 금리는 꾸준히 오를 수밖에 없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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