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경제학

‘보이는 손’이 금리를 결정한다

그런데 금리가 시장에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즉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금리를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은 연준의 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FOMC에서 금리를 결정하고, 우리나라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결정한다. 국가의 금리결정권은 무서운 권리다. 금리 변동에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금리조절 버튼을 잘못 눌렀다가는 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고전주의 경제학에서 상품의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다. 자본도 사고파는 상품이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의 주장대로 시장에 맡기면 최적의 금리가 저절로 형성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입이 닳도록 부르짖는 구호가 무엇인가? ‘시장에 맡겨라’, ‘정부는 손 떼라’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금리를 시장에 맡기는 나라는 없다.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조차도 금리결정권을 연준이 쥐고 있다.

정부 또는 중앙은행이 정하는 금리를 ‘정책금리’ 또는 ‘기준금리’라 하고, 시장에서 결정되는 금리를 ‘시중금리’라고 한다. 사채社債 이자도 시중금리에 포함된다. 은행에서 돈 빌릴 길이 막막한 사람은 아는사람에게 손을 내밀거나 그도 안 되면 아주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하는 대부업체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한 대부업체 홈페이지에 이런 경고문이 적혀있다. “과도한 빚은 당신에게 큰 불행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고객을 배려하는 충고의 말 같지만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 빚은 목에 걸린 올가미와 흡사하다.

금리는 그 올가미가 목을 죄는 강도를 수치로 나타낸 값이다. 낮은 금리는 올가미가 느슨하다는 뜻이고, 반대로 높은 금리는 올가미가 팽팽하다는 뜻이다. 과도한 빚도 금리가 느슨하면 그런대로 견딜 만하고, 얼마 안 되는 빚이라고 겁 없이 빌렸다가 높은 금리를 매겨서 꽉 조이면 숨이 막혀 즉사할 수 있다.

1997년에 대한민국이 유례없는 외환위기를 겪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는 한국의 금융기관, 특히 저축은행이나 종합금융사 같은 제2금융권에서 벌인 위험한 돈놀이였다. 당시 일본의 금리는 매우 낮았고 동남아시아의 금리는 매우 높았다.

장사의 원리는 간단하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돈을 번다. 돈이라는 상품도 마찬가지다. 싸게 빌려서 비싸게 빌려주면 이익이 생긴다. 물론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이 있고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을 때에만 적용되는 원리다. 금융자본주의 기술과 노하우 측면에서 초보 수준이었던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일본에서 싼 이자로 돈을 빌린 다음 태국과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에 가서 비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었다. 아주 짭짤한 장사였다. 

문제는 일본에서 빌린 돈은 대부분 단기대출이었고 동남아시아에 빌려준 돈은 대부분 장기대출이었다는 점이다. 만기가 도래하여 빚을 갚아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엔화와 달러가 없었다. 한국 사람들이 은행에 저축한 그 많은 돈은 외채를 갚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빌린 돈을 갚으려면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초상이 박힌 돈이 필요했다. 빌려서 갚기, 시쳇말로 ‘돌려막기’를 하면 되지만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음을 눈치 챈 일본 은행들은 더 이상 한국에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겪은 대로다.

외환위기가 코앞에 닥친 1996년,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294억 달러에 불과했다. 1997년 1월에 미국 연준이 금리를 인상했다. 위험의 신호탄이 일찌감치 터졌지만 김영삼 정부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1997년 11월 5일, 『블룸버그Bloomberg통신』은 한국이 가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고가 20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그때 한국 정부가 과감히 원화를 절하했더라면 수출이 늘어서 달러 가뭄이 완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금융비용은 더욱 증가한다. 같은 100만 달러라도 환율이 높으면 환율이 낮을 때보다 많은 원화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원화로 세금을 낸다. 외채를 갚으려면 달러가 필요하다.

결국 원화를 달러로 바꾸어서 외채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환율이 상승하면 그만큼 세금이 더 들어간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국가의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 충분한 외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2017년 12월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약 3,900억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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