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임기 5년 단임 대통령이 70년 동안 지켜왔던 정통성을 거부하고 역사를 다시 쓰겠다고 한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이 이토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가?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제도개선’ 지시(2014.2.13)가 있은 후, 세월호 참극과 메르스 사태로 잠잠했던 새누리당과 KBS, 종편들이 전위부대처럼 나서서 국정교과서 편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전국에 설치했다가 시민들의 항의와 고발로 하루 만에 철거했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독이든 사과

김무성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현행 중·고교 역사교과서가 교묘하게 악마의 발톱을 감춘 형태로 만들어지고 표현돼 있다며 국정교과서를 옹호했다. 새누리당은 국정 역사교과서에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담론 투쟁에서 국민의 인식을 선점하고, 자신들이 짜놓은 프레임대로 국정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 조작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수시로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4대강 살리기’ ‘종북’ ‘공정해고(일반해고)’ 등과 같이 현실을 왜곡하는 상징 조작은 집권세력이 의도하는 정책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각인 시킨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는 ‘착한 화장’을 뒤집어쓴 국정 교과서는 마녀가 건네는 독이든 사과와 매한가지다. 정치적 폭력을 감춘 이 독 사과는 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고, 해방이후 지속적으로 정립되어 온 국가 정통성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사진제공=뉴시스]

사회과학적 역사연구를 기조로 하는 아날(Anal)학파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미슐레(Jules Michelet, 1798-1874)는 중세시대에 교회가 일방적으로 정하고 강요한 지식체계에 대항하여 현실의 민중적 삶속에서 마녀의 긍정적 역할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에 대한 작업이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도덕적 왜곡을 조장하고 있음을 고발했다. 또한 그는 이 작업 속에서 개인의 욕망이 보편성으로 전이되고, 또 이 보편성은 개인적 욕망이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폭로했다. 지금 박근혜 정부의 행태가 바로 중세 유럽에서 나타난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개인의 욕망과 역사인식을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빌미로 보편적 역사로 왜곡하고, 또 이 보편성의 획득이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는 결과로 귀착하는 역사의 불행을 모든 국민이 목격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적 역사인식과 욕망이 일부 친일 보수 세력과 야합하면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국민적 논의나 전문가들의 여론 수렴 과정이 무시된 채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올바른 역사라는 것이 무엇인가?

역사의 종언 - 매카시즘과 전체주의

박근혜 정부와 보수진영이 말하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근·현대사와 미래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자 하기 보다는 오히려 친일 가계, 개인사적 기득권 그리고 특정 종교의 도그마를 정당화하기 위한 과거 사실의 변조차원에서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첫째, 1919년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을 부정하고, 1948년을 건국절로 삼고자 한다. 이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함으로써 친일의 오욕을 벗겨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둘째, 해방이후 분단과정에서 남북한 책임에 관한 객관적 서술을 종북적 사고로 보고 남한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을 삭제할 것을 주장한다. 셋째,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남침을 분명하게 알릴 자료만을 실어야 한다고 주장 한다. 이는 전쟁에 대한 남북한 공동책임론이 대두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일성,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평가 부분이다. 이들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건국의 아버지와 근대화를 이끈 지도자로써 더욱 부각 시키고, 김일성에 관한 부분은 비판적으로 기술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기독교인이 건국의 아버지가 되고, 독재자가 근대화의 지도자가 되며, 철저한 반공주의로 역사를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까지도 보편타당하게 인정해온 역사적 객관성을 전복시키면서 까지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보수 이데올로기로 역사적 사실들을 재구성함으로써 현실에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역사성과 정통성 까지 부정하면서 역사를 정치공학 안으로 끌어들이고 종북 매카시즘의 덧을 씌고 있다. 과연 지금의 교과서로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는 것 일까? 또한 이들은 역사적 해석과 시각의 다양성을 말살하고 자신들이 의도하는 단일한 생각만을 주입하는 전체주의를 강요하고 있다.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북한 외에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국정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국민들은 전체주의와 유신으로의 회귀를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야만적은 권력의 횡포에 대하여 국민적 저항이 일고 있다. 연세대, 서울대 국사학과, 강원대, 전남대, 제주대, 이화여대, 서강대, 덕성여대, 성신여대, 한양대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국내 최대 역사 연구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가 국정 교과서 제작 과정에 어떤 형태로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보편성과 상식을 잃은 역사 서술, 역사적 객관성을 조작하여 권력 창출을 위한 희생 제물로 바치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종북 매카시즘과 전체주의적 역사관은 역사의 퇴행이 아니라 역사의 종언을 결과할 것이다. 특정 지배 세력들의 가계 이력과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역사는 국가나 민족, 공동체의 역사가 아니다. 공통의 역사를 잃어버린 공동체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역사의 회복

역사학자 루시앵 페브르(Febvre L.)는 역사 연구는 ‘사실’에서가 아니라 ‘문제’로부터 출발해야함을 강조한다. 역사적 글쓰기는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사실로 하고, 가르쳐야하는 가가 역사교육의 본질이 아니다. 사회 혹은 공동체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하는가 하는 역사적 소명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이를 위해 교과서가 기술돼야 한다.

근대 이후, 한국사회가 부딪히고 있는 기본 모순, 즉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모두 다 인정하는 바와 같이 친일 청산과 남북분단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긍정의 역사를 위해 역사는 어떻게 기술되어야 하나? 정치중심, 개인치적주의, 연대기라는 우상에 사로잡힌 역사 서술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시대정신과 민중적 삶에 대한 성찰로부터 출발하는 문제의식에서 기술되고 또 평가돼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근대사를 반공 이데올로기의 감옥에 가두고,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인물들을 그 중심에 세우며, 1948년 건국절이라는 연대기적 사건 중심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역사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이 과연 사회와 국가에 대하여 어떤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으며, 어떤 민족적 비전을 바라 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미슐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들을 떠받쳐 주고 길러 주는 땅, (프랑스)” “ 프랑스가 프랑스를 만들었다. --- 프랑스는 프랑스의 자유가 낳은 딸이다. 생명력은 인류 진보의 중요한 동력이다. 이 생명력은 바로 인간이다.”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는 역사적 글쓰기가 우리는 불가능 한 걸까?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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