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미치 컬린 지음/ 백영미 옮김/ 황금가지 펴냄/ 344쪽/ 1만2000원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셜록 홈스’. 헌팅 캡을 쓰고 파이프 담배를 문 채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관찰력을 뽐내는 천재 탐정의 활약은 1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원작자인 아서 코난 도일은 홈스의 인기를 부담스러워한 나머지 그를 한 차례 죽였다가 독자들의 거센 항의에 못 이겨 다시 살려낸 뒤, 그가 온갖 모험을 거친 후 은퇴해 영국 서식스 지방에서 양봉을 한다는 암시로 소설 시리즈를 끝맺었다.

그 이후 노인 홈스는 어떻게 살았을까. 이 책은 ‘셜로키언(Sherlockian·셜록 홈스의 골수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질문에서 시작됐다. 저자 미치 컬린은 코난 도일이 봉한 홈스의 은퇴 후 삶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냈다.

컬린이 재창조한 홈스는 성냥을 못 찾아 불을 붙이지 못한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며 쌍지팡이를 짚은 93세 노인이다. 체력은 예전만 못하고 기억력은 쇠퇴해 건망증에 시달리지만,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통찰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 책은 추리가 아닌 인간 홈스의 내면에 집중한다. 냉혹한 범죄가 아닌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 홈스를 그린다.

책은 3가지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독자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첫 번째는 1947년 시골에서 양봉하며 소박한 일상을 보내는 홈스의 전원생활이다. 44년간 벌을 치며 일벌에 7816방 쏘였다고 말하거나 가정부 먼로 부인의 아들 로저에게 부성애를 느끼는 홈스는 낯설게 다가온다. 죽음의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은 연민마저 느끼게 한다.

두 번째는 홈스가 젊은 시절 수사했던 사건을 직접 집필한 미완의 원고 ‘글라스 하모니카 연주자’ 이야기다. 로저가 흥미롭게 읽는 것으로 소개되는 이 원고는 홈스가 젊은 시절 수사했지만 미제로 남은 앤 켈러 부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토머스 켈러는 아내 앤이 두 번의 유산으로 우울증에 걸리자 글라스 하모니카 연주 교습을 권한다. 앤은 마담 셔머에게 연주를 배우며 점점 나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날 토머스는 주문을 외우듯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연주하는 앤의 모습을 목격하고 당장 교습을 취소시킨다. 하지만 이후에도 앤은 산책한다는 핑계로 자주 외출을 했고, 자신 몰래 마담 셔머를 만난다고 의심한 토머스는 셔머의 집까지 쫓아간다. 그러나 앤의 흔적을 찾지 못한 토머스는 결국 홈스를 찾아온다.

죽은 아이를 부르는 주문과 기묘한 악기 연주가 얽힌 에피소드가 시선을 끌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앤 켈리에게 매혹적인 감정을 느끼는 홈스다. 짧지만 강렬한 만남을 묘사한 부분은 원작에는 없는 홈스의 로맨스를 상상케 한다.

마지막은 책 진행 시점 바로 직전 일본을 방문한 홈스의 여행기다. 홈스는 서신으로 ‘산초나무’에 대한 관심을 나누며 알게 된 우메자키의 초청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패배의 상흔이 오롯이 남아있는 일본을 찾는다. 그곳에서 원폭 당한 히로시마와 전쟁 후유증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목격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메자키가 홈스를 초청한 진짜 이유와 그들의 연결고리가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세 가지 이야기의 공통된 키워드는 ‘과거’다.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과거에 풀지 못한 사건을 회상하고, 또 과거에 얽혔던 문제의 결과를 마주하는 홈스의 모습은 책 제목인 ‘마지막 날들’에 걸맞게 그의 인생을 매듭짓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하는 홈스의 말도 인상 깊다.

“선생은 젊은 시절의 나의 오만함에 대해 말하고 있군요. 나는 이제 노인이고, 선생이 어렸을 적에 은퇴했소이다.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의 그 모든 헛된 추리가 부끄럽소. 정말이오. 아시겠지만 우린 중요한 많은 사건을 망쳐 버렸소. 애석하게도 말이오.”(108쪽)

우리가 생각한 ‘홈스’와 달라 당황스러울 수 있다. 또 탐정소설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홈스를 통해 또 다른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난 한 번도 사냥꾼 모자를 써 본 적이 없소이다. 또 큰 파이프 담배를 피운 적도 없고 말이오. 그건 삽화가가 나를 구별하기 위해, 그리고 아마도 잡지를 팔기 위해 덧붙인 장식에 불과하오”(82쪽) 등 곳곳에 원작 비틀기가 숨어있어 이를 찾는 것도 묘미다.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 ‘미스터 홈즈(Mr. Holmes)’는 지난 7월 미국에서 개봉했다. 국내는 내년 상반기 개봉예정이다.

 

◇마션…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600쪽/ 1만5000원

“엿새 전 그는 화성에 발을 디딘 최초의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젠 화성에서 죽을 최초의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지난 8일 개봉해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영화 ‘마션’의 원작 소설이다. 가까운 미래, 화성 탐사를 떠났다가 홀로 남은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가 주인공이다.

‘아레스 3 탐사’에 참여한 마크는 동료들과 함께 화성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후 본격적인 탐사에 나선다. 하지만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면서 임무는 중단되고, 우주비행사들은 서둘러 복귀에 나선다. 그 와중에 마크는 죽음의 위기를 겪고 홀로 고립된다. 마크의 생체 신호가 멈춘 것을 확인한 동료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화성을 떠난다. 홀로 남았지만 삶을 포기할 수 없는 마크는 과학자 고유의 감각으로 식량을 키우고, 지구와의 교신을 시도한다. 과연 마크는 살아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조적 유머가 섞인 입담으로 사건을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이 탁월하다. 15세에 미국 국립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천재작가’답게 궤도역학, 우주비행의 역사, 식물학 등 과학적 지식을 마음껏 뽐낸다.

책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애초에 이 소설은 저자가 취미 삼아 개인 블로그에 연재한 것이다. 독자들의 요청으로 자비 출판한 전자책이 출판사 눈에 띄어 정식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우먼 인 골드…앤 마리 오코너 지음/ 조한나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456쪽/ 1만7000원

200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세계 최고가인 1500억원에 팔린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금박 모자이크를 엮어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이 그림은 ‘레이디 인 골드’ 혹은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졌다. 이 걸작을 탄생시킨 클림트와 아델레의 운명적인 만남, 나치에게 유린당한 그림의 수난사, 아델레의 조카인 마리아 알트만이 오스트리아 정부를 대상으로 벌인 8년간의 반환소송 등을 생생하게 담은 실화소설이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에서 예술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클림프는 후원자 페르디난트 블로흐에게 그의 아내 아델레의 초상화를 부탁받는다. 클림프와 아델레는 화가와 후원자의 아내로 만났지만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호사가들의 관심을 받는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이 사망한 후 유럽은 나치의 공포에 빠진다. 오스트리아를 강제로 합병한 나치는 유대인을 탄압하고 그림 또한 그들의 손에 넘어간다. 그림의 상속자인 마리아는 미국으로 망명한 후 수십 년 동안 과거를 잊고 지낸다. 그러다 나치가 약탈한 예술품을 오스트리아 정부가 불법으로 취득했다는 폭로기사를 보고 그림을 되찾기 위한 긴 싸움을 시작한다. 예술과 역사, 미스터리가 합쳐진 이야기는 지식과 재미를 함께 준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우먼 인 골드’는 지난 7월 국내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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