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상식의 실패가 아닌 구조의 실패

뉴욕은 하루에 5조 달러의 금융상품이 거래되는 곳이다. 2008년 9월 15일(현지 시간),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 Holdings Inc.가 파산했다. 그날 뉴욕 월가에서는 단 1달러도 거래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배추값이 폭등해도 사람들은 김장을 하고, 한우 가격이 폭락해도 농부들은 송아지를 돌본다. 주머니 사정에 따라 씀씀이가 헤퍼지거나 허리띠를 조이는 일은 있어도, 남대문시장의 모든 가게가 한꺼번에 문을 닫지는 않는다. 자고 일어났더니 자산이 반 토막이 되었다든지 주식시장에서 하루아침에 수조 달러가 증발했다는 뉴스는 정신 나간 사람이 지어낸 헛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리먼브라더스는 1850년에 세워진 금융기업이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와 함께 미국의 4대 투자은행으로 꼽혔고, 2만 5,000명의 전문 트레이더를 거느린 금융계의 골리앗이었다. 2006년 총 자산규모는 5,040억 달러였고, 시장가치는 540억 달러였다.  그런 기업이 6,600억 달러의 부채를 끌어안고 쓰러졌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이었다.

리먼브라더스가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처분이 불가능한 모기지만 800억 달러였다. 당시 내부 보고에 의하면 자기자본 대 총자산 비율은 1대 44였다. 170억의 자본금으로 7,500억 달러의 금융상품과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이야기다.

2016년 미국 대통령후보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말은 리먼브라더스에 딱 들어맞는다. “망하기에 너무 크다면 존재하기에도 너무 크다.” 이명박 정부가 산업은행을 내세워 리먼브라더스 인수를 시도했던 것은 역사 속의 작은 해프닝이다. 한국 정부의 2008년도 예산은 250조 원(당시 환율로 약 1,670억 달러)이었다.

리먼브라더스의 부실채권·전환주식 거래담당 부사장이었던 로런스 G. 맥도널드Lawrence G. McDonald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상식의 실패Colossal Failure of Common Sense’라고 규정했다. 『상식의 실패』는 그가 쓴 회고록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맥도널드는 리먼브라더스가 누렸던 영광의 시대를 돌아보는 한편, 파산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딕 풀드Dick Fuld의 오만과 독선을 거칠게 비난했다.

반면에 딕 풀드는 금융위기의 원인을 정부 탓으로 돌렸다. 그는 한 강연에서 “정부가 무분별한 주택 소유를 방임했고, 저금리로 대출이 너무 쉽게 이뤄진 것이 위기를 초래한 복합적 원인 중 하나”라고 강변했다. 그가 강연을 마치며 던진 말은 많은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나도, 여러분도, 우리 모두 괜찮다. 인생을 즐겨라.”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꼽는 학자도 있다.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도덕 재무장이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지름길인가? 이런 식의 진단은 세계 경제를 뿌리째 흔든 대파국의 원인을 특정한 몇 사람의 오판 또는 과욕으로 제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인간의 탐욕, 오만, 독선은 인류가 등장한 이래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런데 금세기 들어 빈발하는 금융위기의 원인을 네로 황제나 진시황 때도 있었던 상식의 실패 혹은 도덕적 해이에 돌리는 것은 너무 안이한 분석 아닐까?

어쩌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구조의 실패’인지도 모른다. 만약 구조의 실패라면 경제학은 그 실패 경험을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가 재앙으로 여길 정도의 실패를 되풀이한다면, 이런 구조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서 그 대안까지 모색하지 않으면 경제학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레고리 맨큐가 쓴 『맨큐의 경제학』이라는 책을 훑어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이 책의 원제는 ‘경제의 기본 원리Principles of Economics’다). 총 996쪽에 달하는 이 책의 한국어판에는 ‘금융경제와 실물경제의 차이’를 설명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금융경제’, ‘금융자본주의’ 같은 용어도 나오지 않는다.

금융제도financial system, 금융시장financial market, 금융중개기관financial intermediary, 통화제도 등의 용어가 등장하지만 깊게 다루지는 않는다. 자금시장과 외환시장은 수요와 공급 측면에 국한되어 있고,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간략히 소개하고 넘어간다. 파생상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경제학에서 파생상품은 사소한 문제인가? 바로 얼마 전에 미국 경제를 사경에 몰아넣은 것이 파생상품 아니던가?

왜 하버드대학교 석좌교수가 저술한 경제학 교과서에서 파생상품을 다루지 않았을까? 파생상품 거래는 도박 그 자체다. 경제학을 자연과학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싶은 경제학자 입장에서 경제학이 도박의 전술로 전락하는 것을 용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맨큐는 2008년의 금융위기를 직접 겪고도 그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금융시장에 대한 맨큐의 정의에 동의할 수 없다. “금융시장은 저축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에게 자금을 직접 공급하는 시장이다.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이다.”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닌가? 나라면 이렇게 정의하겠다. “금융시장은 노동 없이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끼리 경쟁하면서 실물산업이 생산한 부를 재분배하는 시장이다.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생상품과 시세차익이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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