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도카인 사건’으로 재점화된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 이슈
핵심 쟁점은 의사・치과의사 있지만 한의사 빠진 약사법 제23조 3항
의・약 갈등과 한・약 분쟁 거친 한국 의약분업의 최종 승자는 약사들
2000년 약사 우위 의약분업 시행 이후 진보 정권에 등 돌린 의료계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 다툼에 엄청난 사회적 기회비용 지불돼
계류법안 1,345건에 예산안 심사까지, 시간 넉넉지 않은 보건복지위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정기국회 개회 후 각 상임위별 국정감사 일정이 정해진 가운데, 2019년 보건복지위원회 마지막 국정감사에서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둘러싼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 이하 의협)와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최혁용, 이하 한의협)의 줄다리기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과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 김현숙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과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 김현숙

20년 계속된 전문의약품 다툼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과 관련, 20년째 계속된 양측의 대립이 또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건 국소마취제 ‘리도카인(lidocaine)’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2017년 오산의 한 한의원에서 리도카인 1cc가 혼합된 왕도약침을 경추부위에 맞은 환자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사망에 이른 사건이다.

해당 한의사는 무면허 의료행위로 기소돼 벌금 700만 원(의료법 위반) 처분을 받았다. 의협은 해당 한의사뿐 아니라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을 판매한 공급업체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판단, H제약을 ‘의료법 위반교사 및 방조’ 혐의로 수원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그러나 수원지검은 2017년 12월 28일 H제약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의협은 항고했고, 2019년 2월 대검찰청은 의협의 항고를 받아들여 재기수사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재수사에 임한 수원지검은 지난달 8일 또다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유는 ▲약사법에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을 처방하거나 치료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금지규정이 없는 점, ▲통증이 수반되는 한방치료 과정에 통증 경감을 위해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함께 사용할 필요가 있는 점, ▲현행 약사법상 의약품 공급업체가 한의원에 전문의약품을 납품하는 것을 제한할 마땅한 규정이 없는 점 등이었다.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둘러싼 의사들과 한의사들의 입장 차이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둘러싼 의사들과 한의사들의 입장 차이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수원지검의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직후, 한의협 최혁용 회장은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이번 불기소 결정은 전문의약품을 한의의료행위에 사용하더라도 범법행위가 되지 않음을 확인한 결정”이라며 “앞으로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즉각 “한의협 회장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의협은 성명서를 내고 “검찰의 이번 처분은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에 대한 처분이 아니라, 한의원에 전문의약품을 공급하는 업체에 대한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 및 방조’에 대한 처분임에도, 한의협 최혁용 회장은 마치 검찰이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인정한 것처럼 허위의 사실을 알리고 있다”고 성토했다.

의협과 한의협이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두고 다툰 지 20년,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답은 ‘입법불비(立法不備, 법으로 정하지 않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있고, 구체적으로 문제가 되는 조항은 ‘약사법 제23조 제3항’이다.

의사와 치과의사는 있지만 한의사가 명시되지 않아 입법불비(立法不備) 논란을 낳으며 지난한 의협・한의협 다툼의 원인으로 작용해 온 약사법 제23조 제3항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의사와 치과의사는 있지만 한의사가 명시되지 않아 입법불비(立法不備) 논란을 낳으며 지난한 의협・한의협 다툼의 원인으로 작용해 온 약사법 제23조 제3항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전문의약품을 둘러싼 의협과 한의협의 다툼은 이 조항에서 출발하고, 의약분업의 역사와 관계가 깊다.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들어가 보자.

1960년대 이전 - 1차의료기관 역할 수행한 약국

우리나라 전통 의료제도는 한의학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탓에 의・약을 분리하는 관습이나 의사가 발행하는 처방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한약을 짓기 위한 약방문(藥方文)이면 충분했다. 1960년대 이전에도 의사의 진료와 약사의 약 지급이 한 곳에서 이뤄졌다. 약사가 없는 병・의원에서는 간호사가 약을 포장해 환자에게 건넸다.

감기몸살 정도는 동네약국에 가면 약사가 임의로 조제하는 약이나 제약회사가 제조한 기성품 약을 사먹을 수 있었다. 의학을 전공한 의사는 물론, 의료기관이 절대 부족하던 시절, 1차의료기관의 역할을 한 것은 약국이었다.

1960년대 이후 - 위기에 빠진 약사들

이후 의사와 의료기관 수가 증가하면서 ‘마이신(mycin)’으로 통칭되는 항생제와 스테로이드(steroid)제제 등 전문의약품 오남용 문제가 제기됐다. 의사들은 “약국은 전문의약품을 판매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약사들은 “의약분업이 답”이라고 응수했다. 의・약 갈등의 시작이었다.

1960년대 약국 풍경과 제약사 광고(자료:서울역사박물관/crescend.tistory.com/헤럴드경제)
1960년대 약국 풍경과 제약사 광고(자료:서울역사박물관/crescend.tistory.com/헤럴드경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약사들의 전문의약품 판매에 제동이 걸리자, 의・약 갈등은 엉뚱하게도 한・약 분쟁, 즉 한의사들과 약사들의 다툼으로 번졌다. 전국의 약사들이 한약 조제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한의사들이 즉각 반발했고, 그 반발은 10년이 넘는 치열한 충돌로 이어졌다.

의사들에게 밀려 전문의약품을 팔 수 없게 된 약사들은 한의사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버텼지만, 의료보험이 전국적으로 시행된 1989년을 기점으로 50%에 육박하는 약사들이 극심한 경영난에 빠져들거나 약국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 - 한・약 분쟁에 이은 의약분업의 시대

한・약 분쟁이 첨예화되던 1993~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1999년 7월 7일 이전 의약분업 실시’ 및 ‘이후 3년 이내 한방의약분업 실시’를 약속하고 약사법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한약조제권을 담당하는 한약사제도가 탄생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약 분쟁을 지켜보기만 하던 의사들이 발끈하고 나서면서 의약분업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한・약 분쟁이 의약분업 논의에 불을 지폈던 것이다.

1995년, 의협과 약사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이 의약분업 합의안을 만들자, 정부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 구성된 ‘의약분업실행위원회’를 꾸렸다. 당시 도출된 의약분업 합의안에는 의사들의 요구가 강하게 반영돼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의약분업 합의안은 약사들의 요구가 대폭 수용된 합의안으로 바뀌었고, 그 안이 개정약사법에 반영되면서 1999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의사들은 약사들의 입장이 강하게 수용된 의약분업안에 반발, “이대로 의약분업이 강행될 경우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며 대규모 시위에 돌입하는 한편, 응급실을 제외한 전국 병・의원 단체 휴진, 의대 수업거부와 같은 집단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은 2000년 8월 본격 시행됐다.

김영삼 정권에서 촉발된 한・약 분쟁 당시의 모습(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약사법개정 시안에 반발해 집회를 여는 한의사들(1993.09.03), ▲한약조제권 분쟁조정위원회 결성(1993.09.16), ▲한・약분쟁 정부종합대책에 반발한 한의사 측과 약사 측의 주장, ▲한・약분쟁 타결을 발표하는 허창회 한의사협회장, 권경곤 약사회장, 주경식 보사부 차관(1993.09.20)(자료:MBC뉴스 화면 갈무리)
김영삼 정권에서 촉발된 한・약 분쟁 당시의 모습(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약사법개정 시안에 반발해 집회를 여는 한의사들(1993.09.03), ▲한약조제권 분쟁조정위원회 결성(1993.09.16), ▲한・약분쟁 정부종합대책에 반발한 한의사 측과 약사 측의 주장, ▲한・약분쟁 타결을 발표하는 허창회 한의사협회장, 권경곤 약사회장, 주경식 보사부 차관(1993.09.20)(자료:MBC뉴스 화면 갈무리)

2000년대 - 극적 반전 이룬 약사회

의약분업의 최종 승자는 약사들이었다. 의약분업 이전 의사들이 처방하던 모든 약을 약국으로 유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약분업 직전인 1998년과 직후인 2001년의 약국 및 의원 수입을 비교해 보면 이런 사실이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보건행정학회지 14권에 실린 <의약분업이 의원 및 약국의 영업이익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는 해당 기간 동안 의원의 수입이 32.5% 증가한 반면, 약국의 수입은 최소 86.6%에서 최대 343%까지 폭증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후에도 의사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의료수가 인상을 단행했다. 그러나 정부의 선심성 수가인상정책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의사들이 의약분업 직전에 주장한 대로, 2001년 들어서자 국민건강보험의 적자규모가 4조 원을 넘어서면서 재정 파산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인상된 수가를 곧바로 원상복귀 시켰다. 원상복귀 된 수가가 다시 회복되는 데는 10여 년이 걸렸고, 그 사이 10% 가까운 동네의원들이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약사회의 요구가 대폭 수용된 의약분업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 시기는 진보 진영을 향한 의사들의 반발이 고조된 시기와 맞물린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바라보는 의사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다.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 중인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과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 중인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과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약사법 제23조 제3항 해석의 차이

오산의 한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을 환자에게 주사해 사망한 사건을 바라보는 의협과 한의협의 시각 차이는 극명하다.

의협은 “약사법 제23조 제3항은 전문의약품 처방 권한을 의사와 치과의사로 국한하고 있으므로 한의사가 한약이나 한약제제가 아닌 전문의약품을 사용하는 행위는 명백한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검찰과 법원이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불법으로 판단한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2013년 대구지법 김천지원 및 항소심이 리도카인을 주사기에 섞어 사용한 행위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단한 사례(대구지법2013고정230, 2013노1982), ▲2017년 7월 서울중앙지법이 “한의사는 한약 및 한약제제를 조제하거나 한약을 처방할 수 있을 뿐,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을 처방하거나 조제할 권한이 없음이 명백하다”고 판시한 사례(서울중앙지법2016나54482), ▲2019년 4월 식약처가 전문의약품인 덱사메타손(dexamethasone) 성분이 함유된 한약을 판매한 한의사에 대해 약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사례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에 반해 한의협은 “약사법 제23조 제3항은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조제라는 의약분업 원칙을 규정한 것으로,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의협은 주장을 입증하는 사례로 ▲의약분업이 논의되고 시행될 당시 의사와 치과의사는 참여했으나, 한의사는 의약분업 제외 직종이라 참여할 수 없었고, 그래서 개정약사법에도 의사와 치과의사만 적시된 점, ▲2019년 수원지방검찰청이 환자가 사망한 오산 한의원에 리도카인을 판매한 H제약을 불기소 처분한 사례, ▲2011년 이후 천연물신약 및 천연물을 기반으로 한 의약품과 생리식염수, 아나필락시스쇼코 등 전문의약품 사용운동을 추진해 온 사실 등을 제시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 중인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2019.07.12)과 2017년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2017.10.12)(자료:의협신문 by 김선경/연합뉴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 중인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2019.07.12)과 2017년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2017.10.12)(자료:의협신문 by 김선경/연합뉴스)

‘한의사 전문의약품 사용’ 둘러싼 22년 밥그릇다툼, 이제 끝낼 때

의협과 한의협 중 어느 측 해석이 맞을까? 의・약 갈등으로 시작돼 한・약 분쟁을 거쳐 온 우리나라 의약분업의 역사를 보면, 한의협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비춰 보면 의협의 주장이 옳아 보인다.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양대 축, 즉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가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두고 싸워오는 동안, 우리 국민이 엄청난 사회적 기회비용을 지출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한의사가 어떤 전문의약품을 어디까지 쓸 수 있고, 어디까지 쓸 수 없는지에 대해 명확한 선을 그어주지 않은 채, 개별 사안 별로 임기응변식 대처를 해 온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야는 이미 2019년 보건복지위원회 마지막 국정감사 일정을 확정해 놓았다. 오는 10월 2일 보건복지부를 시작으로 10월 18일 전체기관 종합감사까지,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각 기관들을 감사할 예정이다.

이번 정기국회는 내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마지막 현안 감사 기회다. 그러나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인 법안이 1,345건이나 되고, 내년도 예산안 심의까지 있어 현안을 다룰 시간이 넉넉지 않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주장하며 보이콧이라도 선언해 국회 파행이 현실화될 경우,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의약분업 20년이다. 보건복지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9인(기동민, 김상희, 오제세, 윤일규, 인재근, 남인순, 맹성규, 정춘숙, 진선미 의원), 자유한국당 8인(김세연, 김순례, 김승희, 윤종필, 이명수, 김명연, 신상진, 유재중 의원), 바른미래당 2인(장정숙, 최도자 의원), 비교섭단체 3인(김광수, 손혜원, 윤소하 의원) 등 총 22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어떤 의원은 대한한의사협회에 우호적이고, 어떤 의원은 대한의사협회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챙긴다. 또 직능단체 간의 다툼에 개입하기를 꺼려하는 의원도 있다. 의원마다 제각기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국정감사는 선호하는 직능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다툼이 싫어 빠지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정부를 채찍질하고 잘못된 정책의 궤도를 수정해 내는 자리다.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둘러싼 의협과 한의협 20년 싸움의 해법이 22인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 국민이 진절머리 나도록 봐 온 양측의 밥그릇다툼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 할 순간이 임박했다.
bizlink@straigh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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