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을 대하는 야당 원내대표의 틀이 이렇게 협소해서야」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먹거리 전쟁」
「TPP, 한국과 중국에는 위협, 일본에는 절호의 기회」
「TPP를 두고 한국을 농단하려는 일본」

김태현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청소년 인적교류와 한일 경제협력, LNG 수입에 대한 공동대응, 북핵문제는 모두 곁가지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원점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언론도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인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대해 깊이 다루지 않았다. 우리가 얻어냈어야 하는 실과가 이 문제에 있는데도 말이다.

사고의 틀 유감

한일 정상회담에 관해,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무라야마 담화가 정상회담의 머리말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과거사 부정’ 문제와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고 했다. 한・중・일의 역사와 영토 분쟁을 제쳐놓고 안보와 무역, 경제 관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도 했다.

안보와 무역, 경제 관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언급은 그나마 절반 정도 점수를 줄 수 있지만, 과거사와 자위대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는 발언은 거의 낙제점에 가깝다. 외교를 국내 문제로 끌어들이려는 억지 또는 ‘세밀하지 못함’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을 대하는 야당 원내대표의 사고틀이 이처럼 곁가지만 들먹일 정도로 협소하다니, 아베 신조 총리의 이번 방문이 국빈이나 공식 방문이 아닌 실무 방문임을 감안하더라도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은 역사 문제와 남중국해 센카쿠 열도 문제로 시끄럽다. 우리와 일본 역시 과거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독도 영유권, 자위대 한반도 진출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그럼에도 만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한중일 정상회담에 이어 한일 정상회담까지 갖게 된 것이다.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 한 가지, ‘먹거리’밖에 없다. 먹거리 전쟁이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피 흘리지 않고 싸우는 방식 개발에 나섰다. 브레튼우즈에서 시작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창설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창설,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창설이 그렇고, 유럽연합EU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북미자유협정NAFTA, 브릭스BRICS 등으로 대변되는 경제블록economic bloc이 그렇고, 관세와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으로부터 시작되어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UR로, 다시 세계무역기구WTO로,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과 메가FTA로 발전해온 교역시스템이 그렇다.

▲ 세계의 주요 경제블록economic bloc

TPP의 위력

한국이 그동안 일본에 요구해온 주요 현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독도 영유권 문제, 그리고 평화헌법에 이은 자위대 한반도 진입 문제, 이 세 가지다. 일본이 그동안 한국에 줄기차게 요구해온 현안 중 가장 큰 것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제한 철폐 문제다.

독자 제위께서도 잘 알다시피, 위의 모든 문제는 양국의 국내 여론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한일 양국 모두 3년 6개월 동안 어떤 대응책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이 그동안 계속 지켜봐왔던 ‘경제적 위협’이 현실로 드러났다. 지난 10월 6일, 태평양 연안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고강도 메가FTA,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Trans 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이 협상 개시 선언 6년 만에 타결되었던 것이다. 참여국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멕시코,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그리고 일본이다.

2013년 기준, 이 경제블록 소속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37%를 넘어섰고, 교역량은 30%에 육박한다. 경제 규모도 문제지만, 정작 큰 문제는 이 블록의 결합 강도가 ‘고강도’라는 데 있다. 두 가지 사례만으로도 TPP의 강력한 결합 강도를 판단할 수 있다.

먼저, 한미FTA에서 우리가 괜찮은 협상이라고 자평했던 자동차 분야를 보자. 일본산 자동차의 경우, TPP 역내 부품이 45% 이상이면 미국에 무관세로 들어갈 수 있다. 이를 ‘누적원산지 규정’이라 하는데, 베트남 산 철강과 칠레 산 타이어, 페루 산 시트를 멕시코에서 조립해 완성한 혼다 승용차는 세금 한 푼 안 내고 미국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 현대와 혼다의 TPP, 자동차 대전의 전주곡

우리는? 북한에서 조립한 제품이 한국 산인지 아닌지를 갖고 미국 의회에서 테러국이니 아니니 하고 따지고 있는 형편이다. 한미FTA 부속서 22-나 ‘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제3항을 보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부속서 22-나 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3. 위원회는 역외가공지역들로 지정될 수 있는 지리적 구역들을 결정한다. 위원 회는 역외가공지역으로부터의 상품이 이 협정의 목적상 원산지 상품으로 간주될 수 있기 전에 충족되어야 하는 기준을 수립한다. 그 기준은 다음을 포함하나 이 에 한정되지 아니한다.

-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진전
- 역외가공지역들이 남북한 관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 그 역외가공지역에서 일반적인 환경 기준, 노동 기준 및 관행, 임금 관행과 영업 및 경영 관행, 이 경우 현지 경제의 그 밖의 곳에서 일반적인 상황 및 관련 국제규범을 적절하게 참고한다.

이런 지경이니 무슨 경쟁이 되겠는가. TPP 하에서는 멕시코에 있는 현대자동차와 혼다자동차가 동일한 베트남 산 철강과 칠레 산 타이어를 쓴다 해도 가격 경쟁력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의약품 분야, 그중에 특히 불치・난치병 환자들의 생명이 걸려 있는 신약 특허기간이다. 12년을 주장한 미국과 5년을 주장한 여타 TPP 국가들은 치열한 협상을 벌인 끝에 사실상 8년으로 결정지었다.

우리는? 한미FTA 제18.9조 5항에는, 특허권자의 동의 또는 묵인 없이는 후발 신청자의 제품이 판매될 수 없도록 허가단계에서부터 조치를 취하는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명시되어 있다. 환자들이 보다 싼 가격에 제네릭(복제약)을 이용할 기회가 ‘지적재산권’이라는 이름으로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한・중・미・일의 역학 구도

물론 각국 정상의 서명과 각국 의회의 비준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TPP 시행은 기정사실이다. TPP는 원래 2005년에 싱가포르와 뉴질랜드, 칠레, 브루나이 등 4개국이 시작했지만, 중국 견제를 노리는 미국이 2008년에 뛰어들면서 규모가 급격하게 커진 메가FTA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TPP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 미국, 일본의 역학 구도는 어떨까?

“세계 경제의 질서는 중국이 아닌 미국이 주도해야 한다”던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중국의 경제 규칙이 아시아 국가로 파급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은 TPP가 미칠 영향에 큰 걱정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세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 및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 타결을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총리가 미 항모에 오르는 등 미국과의 관계에서 밀월을 넘어 거의 혼수상태에 빠져 있고,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 제스처를 취하면서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도 관여하고 있다. 이런 것을 ‘등거리외교’라고 불러야 할지 ‘양다리 걸치기’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중간선을 타고 있는 모양새다.

한중일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린 이유, 그리고 두 번의 회담에서 센카쿠도, 위안부 피해자도, 독도도, 자위대 한반도 진입도, 모두 중심 의제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바로 이런 역학 구도 때문이다. 그런데 이종걸 원내대표는 곁가지를 들고 설치고 있다니... 웩더독wag the dog, 즉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따로 없다.

TPP 가입? 누구 맘대로?

지난 4월,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TPP 1라운드가 타결되면 바로 협상에 나서겠다”고 했다. 방관에서 참여로 기울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자동차업계와 기계업계, 부품소재 업계의 득실을 따져 본 결과 내린 결론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희망대로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TPP의 일원이 되기에는 내줄 것이 너무도 많다.

▲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의 12개 참여국

TPP 참여국들이 한국의 참여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과 별도로, TPP는 참여하고 싶다고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12개국이 이미 벌여놓은 판에 가입하려면 12개국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절차는 다음과 같다.

한국의 관심 표명 → 예비 양자협의 → 공식 양자협의(12개국 모두와 협의) →
참여 승인(12개국 모두의 승인) → 미무역대표부USTR의 의회 통보

한국은 이미 합의된 협상안을 바꿀 수 있는 어떠한 힘도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12개국 모두 한국과의 협상에서 무엇인가를 바랄 것이기 때문에 불리해도 이만저만 불리한 게 아니다.

미국만 해도 한국의 TPP 가입에 대놓고 입장료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가 많은 유기농 상호인증, 중소기업 적합업종제, 원산지증명 등을 해결해 한미FTA를 완전히 이행하라는 것이다. 쇠고기 문제가 걸려 있는 호주와 캐나다, 그리고 뉴질랜드 등도 ‘농축산물의 대대적인 개방’을 요구해 올 것이 자명하다.

그렇지만 무서운 적은 따로 있다. 바로 일본이다. 한국은 TPP에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과 이미 FTA를 체결했거나 협상을 진행 중인 상태다. 그중 한국과 일본의 FTA협상은 10년 내내 답보상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TPP 참여는 사실상 한일FTA, 즉 대 일본 시장개방이고, 그렇기에 지금으로서는 일본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과의 협상은 쉽지 않다. 일본 자동차 및 기계 산업, 부품소재 산업이 밀려들어올 것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본이 내걸 조건들이 우리 국민의 정서와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자위대 한반도 진입 문제도 걸려 있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이 일본 산 수산물 수입제한 철폐다. 이 문제가 일본에 얼마나 큰 문제인가는 일본이 지난 8월에 수입제한 조치가 부당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 산 수산물 수입제한이 철폐된다면, 우리네 어머니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이처럼 한국은 매우 불리한 조건 하에서 일본과의 협상에 나서야 한다.

TPP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일본이 수산물 수입제한 철폐를 강하게 들고 나온다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이쯤에서 덮자고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위대 한반도 진입을 허용하지 않으면 TPP 참여는 꿈도 꾸지 말라고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TPP 참여에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기획재정부 장관과 야당의 원내대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들 있는가?

“TPP 1라운드가 타결되면 바로 협상에 나서겠다”
“무라야마 담화가 정상회담의 머리말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 회담에서 과거사 부정 문제와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정부가 TPP 참여를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니, 기획재정부 장관이 1 대 12의 싸움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어떤 국익을 포기해 가는지, 포기의 당위를 어떤 궤변으로 둘러댈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그가 장관직 대신 총선 출마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야당의 원내대표...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도 어떻게 이처럼 작은 준거의 틀을 기준으로 흔드는가. 몸통이 어려워질 때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무리도 나쁘지만, 몸통의 심각성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떨어져라 흔들어대는 꼬리, 그런 꼬리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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