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뉴시스]

통상 재·보궐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같은 민주정부나 김영삼·이명박 정부 등 보수정부 모두 재·보궐 선거를 치를 때마다 주로 여당이 의석을 잃고 야당은 의석을 늘렸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이 같은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재·보궐선거는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이전에는 국민들이 정권에 경고를 하는 투표 행태를 보였다. 그렇지만 현 정부는 오히려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재보선의 선택이 구원의 손길로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이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네 차례 실시됐다. 2013년 4·24재보선, 2013년 10·30재보선, 2014년 7·30재보선, 그리고 2015년 4·29재보선이 그것이다. 선거 결과는 각각 2 대 1, 2 대 0, 11 대 4, 4 대 0으로 새누리당이 모두 승리했다. 선거결과만 놓고 보면 19 대 5인 셈이다. 이제 국회 의석도 새누리당이 159석이며 규정에 의해 당적을 이탈한 정의화 국회의장, 비리 혐의로 탈당한 유승우 의원, 성추문으로 사퇴한 심학봉 前의원을 감안하면 총선 직후보다 10명이나 불어났다.

재·보궐선거는 그때그때마다 관전 포인트가 달랐다. 4·24재보선은 거물급 정치인의 복귀전이었다. 안철수 前새정치연합 대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그리고 이완구 前국무총리가 이때 재보선을 거쳐 국회에 입성 또는 복귀했다.

나머지 재·보궐선거는 정권심판의 성격을 띠고 여야가 격돌했다. 10·30재보선은 대선 당시 국정원의 대선개입 여부가 논란이 됐다. 야당은 정권심판론을 전면에 내걸고 경기 화성(갑)에서 사력을 다했지만 완패했다.

7·30재보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야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심판을 앞세우고 선거를 진행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특히 손학규, 김두관 등 거물까지 투입했지만 무명의 지역일꾼들에게 밀렸다. 국민들은 정권심판을 철저히 외면했다. 전남에서는 27년 만에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4·29재보선은 오히려 야당이 심판을 받았다. 성완종 스캔들이 터지며 대통령 측근들의 불법정치자금수수사건이 정국을 강타했다. 이완구 총리가 직에서 물러나고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오히려 선거 결과는 야당의 전패였다. 특히 전통적 야당 강세지역 3곳이 새누리당과 무소속에게 넘어갔다.

지난 10월 28일 실시된 재·보궐선거는 국회의원이 없는 지방 재보선이었지만 야당이 또 다시 완패했다. 이번에도 야당은 정부의 역사교사서 강행 추진이라는 호조건 속에서 선거를 맞이했지만, 24개 기초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 중 광역의원 단 2곳만을 건졌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국정화 추진 반대여론이 15% 이상 더 높은 가운데(한국갤럽 10월 넷째주 조사 기준, 찬성 35% : 반대 51%)에서도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재보선 사상 역대 최저 투표율을 경신한 이번 투표율(20.1%)은 수도권에서의 매우 저조한 투표율(14.04%)이 그 원인이다. 이 때문에 전통적 야당 강세지역인 수도권에서 무려 10곳이나 재보선이 실시됐으나 야당은 단 1승에 만족해야 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이제 5전 전패. 이처럼 정국을 가르는 주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재·보궐 선거가 있었지만 유권자들은 현 정부를 지지해왔다. 그동안 여당의 무덤이라고 불렸던 재보선의 법칙도 이제는 깨지는 것이 아닐까?

문재인의 혁신노선, 손학규의 통합노선

14대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정계를 은퇴하자 민주당의 당권을 물려받은 이는 이기택 대표였다. 그러나 그는 1993~94년 펼쳐진 4번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총 10명의 후보를 출전시켜 강릉과 경주 단 두 곳에서 승리했을 뿐이다. 당시 민주당은 오늘날 새정치연합처럼 계파 싸움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고 대여투쟁을 통한 정권교체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를 반전시킨 건 영국에서 귀국한 DJ였다. 1995년 지방선거 직후부터 야권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재·보궐선거에서 연전연승했다. 그것은 바로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힘이었다. 1996년 3번의 기초단체장 재보선은 야권 후보들이 4석 모두를 싹쓸이했다. 1997년에도 4번의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야권은 5석 대 1석으로 신한국당을 압도했다. 특히 1996년 9월 노원구청장 재선거부터 국민회의-자민련 연합공천 후보들은 6승 1패로 완승했다. 무려 85.7%라는 높은 승률이다. 이는 오로지 DJP 공조체제 구축을 통해 정권교체를 준비한 김대중 총재의 대폭 양보로 국민회의 후보가 단 2명만 출마하면서 이룬 쾌거였다. 즉, DJ는 정권교체라는 보다 높은 가치 실현을 위해 기초단체장이나 국회의원 후보 5명은 우당(友黨)인 자민련에게 과감하게 넘김으로써 신뢰를 다졌다.

민주정부 10년을 거치고 나서 다시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이 치른 첫 재·보궐선거는 2008년 6·4선거였다. 지방 재보선이었지만 기초단체장선거에서 민주당은 사실상 완승했다. 수도권 2곳을 포함, 3곳을 승리하고 민주당이 지원하는 무소속 후보 2명을 당선시켰다. 이에 반해 정부 출범 100일만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겨우 텃밭 경북 청도군수 1곳만을 건졌을 뿐이다. 특히 역대 재보선 사상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23.3%)과 인천 서구청장의 경우 이보다 낮은 19.8%였으나 민주당은 승리했다.

불과 6개월 전 대선에서 530만 표 차이로 참패를 당하고 두 달 전 총선에서는 과반수 가까운 의석이 81석으로 쪼그라든 민주당이었다. 승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성난 민심이 정부여당에 등을 돌린 탓이 가장 컸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 조건일 뿐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손학규·박상천 공동대표에 김효석 원내대표 체제였다. 4·9총선 당시 사지인 종로 출마를 결행하며 ‘버리는 리더십’을 보여준 손학규 대표는 비록 낙선은 했지만 당의 주된 지지층인 호남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다. 그는 박상천 대표·김효석 원내대표 등 호남 출신 지도부와 일치단결하여 쇠고기 재협상부터 하라는 촛불 민심 관철을 위해 스크럼을 단단히 짰다.

이후 손학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고서도 정세균 후임 대표에게 적극 협력했다. 특히 2009년 하반기 재보선에서 보여준 눈부신 헌신은 감동적이었다. 선거구 신설 이래 다섯 번의 선거에서 단 한 번밖에 이기지 못한 수원 장안구는 손학규가 아니었다면 승리할 수 없었다.

2010년 10월 다시 여의도로 복귀한 손학규 대표는 2011년 상반기 성남분당(을) 보궐선거에 직접 출마한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며 만류하는 측근들에게 그는 독배인줄 알면서도 ‘정치는 대의명분이다.’라며 또 한 번의 ‘버리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의 결단에 감명 받은 전국 당원들은 1~10명씩 연고자 명단을 보내주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끝내 당선의 영광을 안아들었다. 이후 손 대표는 최문순 강원지사부터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각종 재보선에서 승승장구한다. 그는 당대표이기는 했지만 집단지도체제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와 정동영·정세균·천정배·박주선·조배숙 등 5명의 호남 출신 최고위원들과 혼연일체를 이루어 승리를 일구어냈다. 그는 진정한 통합형 리더였다. 그에겐 박영선 정책위의장, 이용섭 대변인 등의 스텝들도 역대 최강이었다. 이들은 김진표 원내대표와 함께 2010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무상급식 이슈를 3무(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 1반(반값등록금) 정책으로 발전시켰다. 결코 정권심판론이라는 정치투쟁만으로 안주하지 않았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참사, 성완종 스캔들, 국정교과서 파동 등 잇단 호재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재보선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여당의 무덤으로 불리던 재보선 법칙마저 바꿔놓기 일보 직전이다. 가장 큰 이유는 친노-비노라고 불리는 계파 싸움이다. 외형적으로는 선거패배 때마다 지도부가 교체되고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미봉책까지 동원되지만 본질은 ‘공천권’을 둘러싼 사실상의 패싸움이다. 정권교체보다는 월급쟁이 정치인에 안주하는 제1야당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대선 후보 출신인 문재인 대표는 총선 공천권까지 움켜쥐고 있으니 ‘기득권’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 대표는 출향 호남인이 많이 거주하는 야당 강세 지역 수도권에서조차 지난 4·29 재보선에서 전패했고, 이번 10·28 재보선 때도 1승 9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따라서 문재인 대표는 뼈를 깎는 혁신도 좋지만 비호남 출신으로 당의 핵심 기반인 호남과 함께 하는 법을 잘 알고 실천했던 손학규의 통합 리더십을 우선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정권심판과 같은 정치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일자리, 연금, 세금, 노동개혁 등 다양한 민생문제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호남과 서민, 이 두 핵심지지층마저 등을 돌리는 정당이 무슨 총선 승리이고 무슨 정권교체인가?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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