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경제학

 

주식투자의 함정

신용으로 빚을 내어 투자하는 경우를 전문용어로 ‘레버리지를 활용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현금 1,000만 원을 담보로 10배의 레버리지를 활용한다면 자기자본 1,000만 원을 포함하여 총 1억 원을 투자할 수 있다. 미국의 증권거래소에서는 보통 20배의 레버리지가 허용되고, 2008년 금융위기 때 월가에서는 수십 배의 레버리지 투자가일반적이었다.

레버리지 비율=총 투자금액÷자기자본 

투자한 종목의 주가가 1년 만에 5퍼센트 오르면 1,000만 원의 밑천으로 500만 원의 수익을 올렸으니 연 수익률은 50퍼센트다. 입이 쩍 벌어질 만큼 굉장한 수익률이다. 그러나 거꾸로 주가가 5퍼센트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1억 원이 9,500만 원이 되었을 때 더 이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주식을 팔았다 치자. 이런 경우를 손절매損切賣, loss cut라고 한다. 빌린 돈 9,000만 원과 5퍼센트의 이자 450만 원을갚고 나면 통장의 끝줄에는 잔고 550만 원이 찍힌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전 한화증권 대표 주진형의 증언에 따르면 매매회전률 600퍼센트 이상 고객이 증권사 지점 영업이익의 80퍼센트를 벌어준다고 한다. 매매회전률 600퍼센트는 종목을 6회 갈아탄다는 뜻이다. 따라서 매수와 매도를 1년에 12회 하게 된다. 주식을 사거나 팔 때 증권사에 내는 수수료는 보통 0.5퍼센트 미만이다.

1회 거래시 수수료를 0.3퍼센트로 잡아도 12회면 수수료만 3.6퍼센트에 달한다. 1억 원의 3.6퍼센트면 360만 원. 통장에 찍힌 잔고는 190만 원으로 줄어든다. 증권거래세(상장 주식일 경우 총 판매금액의 0.3퍼센트)는 판매대금에 대해서만 부과된다. 6회에 걸쳐 주식을 팔면서 낸 세금 180만 원까지 제하고 나면 통장에는 달랑 10만 원이 남는다. 1,000만 원의 밑천이 10만 원으로 감소했으니 손실률은 99퍼센트다.

한강 둔치에 텐트를 치고 살거나 지하도 입구에 골판지를 깔고 앉은 사람 중에 주식 대박을 꿈꾸던 이가 몇은 있을 것이다. 깡통에 떨어진 돈에는 세금도 없고 수수료도 붙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다시 원래의 논점으로 돌아가자. 일하지 않는 자도 먹고살 수 있는가? 이런 말을 들으면 주식투자자는 물론이고 도박을 업으로 삼은 이가 화낼지도 모른다.

“불로소득이라니? 종일 시세 현황판을 들여다보느라 벌겋게 충혈한 눈이 보이지 않소? 주식투자는 고도의 전문지식과 남다른 감식력을 지닌 사람만 성공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정신노동이오.”

“도박은 아무나 하는 줄 아시오? 도박으로 돈 벌기가 쉽다면 왜 모두가 돈을 따려고 덤벼드는 판에서 대부분이 탈탈 털리겠소? 흔히들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말하지만 틀린 말이오. 판이 거듭될수록 운은 평균에 수렴하고, 결국 미세한 기술의 차이가 승부를 결정짓는 법이오. 앞으로 ‘타짜’라는 말 대신 ‘기술자’라고 불러 주시오.”

그렇다. ‘큰 수의 법칙’에 비추어 보면 시운時運은 모든 개인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조건이다. 그 조건을 어떻게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지는 투자자 개인의 능력에 달렸다. 3.1의 기와 2.9의 기, 그 작은 차이가 종국에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명암을 가르는 미세한 차이, 그것은 정보력이다. 금융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정보를 획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먹이사슬 내 위치를 결정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가가 기업의 현재가치 혹은 미래가치를 정확히 반영한다면 주식투자는 기업의 재무제표 따위를 꼼꼼하게 살피는 성실한 조사자에게 유리할 것이다. 어쩌면 신규 채용 규모와 신입사원들의 스펙을 검토하는 것만으로 그 기업의 성장가능성을 측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가의 가파른 등락은 기업의 잠재력과 무관한 경우가 적지 않다. 채권이나 부동산 투자에 매력을 잃은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주가를 끌어올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시장 간에 제로섬 게임이 작동한다.

시가총액의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경우는 어딘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주식시장에 비정상적으로 돈이 몰렸을 때 사람들은 ‘거품이 끼었다’고 말한다. 거품이 꺼지면서 하루아침에 수조 원이 날아가는 사태는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흔한 일이다.

주진형은 2015년 10월 국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주진형의 다섯 가지 고백’이란 제목으로 한국 주식시장의 치부를 폭로했다. 그가 지적한 증권사의 다섯 가지 폐단은 다음과 같다.

① 증권사는 모든 주식이 좋다고만 말한다.
② 증권사 전담직원이 특별 관리해주는 고객의 수익률이 더 나쁘다.
③ 투자보고서는 고객이 못 알아보게 쓴다.
④ 재벌 오너가 일감 몰아주기 식으로 영업을 한다.
⑤ 증권사가 큰손 고객을 역차별한다.

설마 이러랴 싶을 정도로 폐단이 심각하다. 그의 말을 곧이 믿는다면 한국의 주식시장은 도박판 못지않게 사술이 판치는 곳이다. 자, 이제 구걸과 도박과 주식투자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세 경우 모두 한 사람의 소득이 다른 사람의 소득으로 이전된다는 점에서 같다.

즉 돈이 (가) 지점에서 (나) 지점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가치도 생산되지 않는다. 이미 생산된 가치의 소유자가 바뀔 뿐이다. 밤새 도박판이 벌어져도 아침에 정산하고 나면 판돈의 총량은 똑같다. 개평을 떼고 나면 외려 판돈의 총량이 줄어드는 수도 있다. 

판돈이 커지는 경우는 누가 중간에 새로 참여할 때뿐이다. 주식시장의 개평꾼이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상장법인 1,975개 사의 주식투자자는 1,764만 명이다(2015년 12월 결산 기준). 이 가운데 중복 주주를 제외한 실질 주주는 475만 명이다. 이는 전년보다 33만 명(7.6퍼센트) 늘어난 수치다. 다시 말해 33만 명의 신규 투자자가 판돈을 키우는 데 동참한 것이다.

이들의 수익률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거래소의 자회사인 코스콤Koscom(구 한국증권전산)은 2016년 순매수 상위 10종목의 평균 수익률을 뽑아서 발표했다.

이 자료에 의하면 기관투자자의 수익률은 28.7퍼센트, 외국인투자자의 수익률은 14.2퍼센트, 개인투자자의 수익률은 -26.6퍼센트를 기록했다. 개미투자자들이 기관과 외국인을 먹여살렸다는 이야기다. 한미약품 한 종목만 놓고 보면 1년 수익률은 무려 -57.75퍼센트까지 떨어진다.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종목은 31.9퍼센트의 KB금융이었다.

나는 도박꾼이든 주식투자자든, 하다못해 거지라 할지라도 놀고먹는다고 비난할 생각이 없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놀고먹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무엇을 하든지 어떤 식으로든 몸을 움직이고 정신을 소모하게 되어 있다.

다만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그 노동이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했는지,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일에 이토록 많은 인력과 자금이 몰리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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