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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서울시당은 10일 최근 ‘팩스 입당’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김만복 前국정원장에 대하여 ‘탈당 권유’ 조치를 결정했다. 탈당 권유 처분을 받은 사람이 10일 이내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자동 제명되는 당헌·당규에 따라 사실상의 ‘제명’ 처분이다. 새누리당에 의하면 “김 前원장은 지난 10월28일 부산 해운대·기장(을)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연합 후보를 지지하는 중대한 해당 행위를 했다.”고 한다.

한편 김 前원장은 지난 8월 27일 팩스를 통해 새누리당에 입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내부 승진케이스로는 정보기관 사상 첫 수장에 올랐고 노무현 前대통령의 10·4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한 그는 대표적인 친노인사로 알려져 왔다. 지난 10월에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백종천 前청와대안보실장과 함께 10·4 남북정상선언을 중심으로 살펴본 책 <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그랬던 그의 180도 변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무척 의아하게 여기고 있다. 개인의 일탈인가, 아니면 영혼 없는 공무원의 일반적인 현상인가?

‘대통령제 하에서 관료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자신들의 입장을 변명하는 말로 흔히 ‘관료는 영혼이 없다’라는 말이 인용되고 있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일찍이 언급한 내용이다. 베버는 관료제가 개인감정을 갖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상하관계라는 합리적인 권위구조와 비인격적인 규칙과 절차에 따라 움직인다고 했다. 즉, 베버는 관료란 어느 정부에서나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을 해야 하는 게 그들의 숙명이라며 관료의 특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였다.

실제로 참여정부 당시 고위직에 근무했던 많은 관료 출신들이 10년 민주정부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말을 갈아타기 시작한다. 관료의 특성 그대로 새로 바뀐 대통령에 충성하기 위해서였다. 윤병세 현 외교부장관은 참여정부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출신이다. 김장수 주중대사는 참여정부 육군 참모총장에서 국방장관으로 직행한 케이스였으나 18대 한나라당 의원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의 초대 안보실장을 역임했다. 허준영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은 참여정부 경찰청장을 역임했지만,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으로 공천 신청 후 코레일 사장까지 지냈다.

2013년 10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선된 박명재 의원은 2006년부터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했다. 4회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경북지사 후보로 출마, 보은인사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따라서 그는 체질(?)이 여당이다. 이명박 정부 초대 김성호 국정원장도 참여정부 법무장관 출신이다. 윤진식 前의원은 참여정부 초대 산자부장관을 역임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으로 변신한다. 18~19대 새누리당 의원을 거쳐 지난해 충북지사에 도전했다. 이밖에도 수많은 고위직들이 카멜레온 같은 변신에 성공했으니 그 수효는 셀 수가 없다.

한편 김대중 정부라고 하여 관료들이 끝까지 의리(?)를 지키지는 않았다. 노무현 前대통령의 정권재창출로 인해 민주정부 5년이 더 연장됐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관료들 대부분은 말을 갈아탔다. 현정택 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대표적이다. 그는 국민의정부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으로 참여정부 때는 KDI원장을 역임했다. 한덕수 前국무총리는 4대 정부에 걸쳐 승승장구한 케이스다. 그는 국민의정부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으로 참여정부에서도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다시 주미 대사와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맡았고 최근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에 선임됐다.

정홍원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1998년 서울 남부지청장 근무 중 ‘국회 529호 사건(한나라당의 정보위 열람실 난입 사건)’을 지휘했다. 수사 도중 검사장(차관급)으로 승진하는 행운을 거머쥐었고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고등검사장과 장관급 중앙선관위원으로 영전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서도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역임했고, 19대 총선 때는 새누리당 공천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최종찬 건전재정포럼 공동대표 역시 변신을 거듭했다. 국민의정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거쳐 노무현 정부 초대 건설교통부 장관까지 지냈으나 18~19대 안양 동안(갑)에서 여당 후보로 출마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국민의정부 산자부장관을 지내고 17대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영입됐다. 그러나 그는 2007년 2월 열린우리당 1호 탈당을 기록하며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으로 충남 당진에 출마한다. 김하중 前주중대사 또한 국민의정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햇볕정책 예찬론자였으나, 참여정부 때까지 주중 대사를 맡았고 이후 이명박 정부 초대 통일부장관으로 변신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50년 만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완성되자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충성(?)하던 관료들이 다시 민주정부에 충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건 前국무총리이다. 그는 박정희 前대통령의 발탁으로 1975년 처음 차관급 전남도지사에 올랐고 이후 청와대 정무2수석을 지냈다. 5공 때는 교통·농림·내무장관과 민정당 의원을 역임했다. 노태우 정부 때 임명직 서울시장을 지냈고, 문민정부 때 처음 국무총리에 임명된다. 그는 참여정부 때 두 번째 국무총리를 맡았다. 이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직업이 장관’이라고 부른다.

전윤철 前감사원장은 이미 문민정부 당시 장관급이자 경제 검찰수장인 공정거래위원장에 올랐다. 그는 국민의정부에서 기획예산처장관·청와대 비서실장·경제부총리를 역임했고 참여정부에서는 감사원장으로 발탁됐다. 5공 당시 검찰총장을 지냈고 노태우 정부 때 법무장관에 임명된 이종남 변호사는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발탁, 감사원장으로 썼다. 문민정부에서 총무처장관을 지낸 김기재 한나라당 의원은 1992년 2월 국민회의 입당과 함께 행정자치부 장관에 임명됐다. 전형적인 철새(?) 행각이다. 1년 뒤 그는 새천년민주당 전국구로 재선에 성공했다. 문민정부에서 조달청장 등 3개의 차관(급) 보직을 거쳐 통상산업부 장관과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임창열 킨텍스 대표이사는 1998년 당시 여당인 국민회의에 입당,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이밖에도 고위관료들의 변신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관료보다 오히려 문제를 삼아야 할 것은 지식인의 변신, 아니 변절이다. 문용린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영삼 정부시절 대통령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한 대표적인 개혁성향의 교육학자였다. 이를 눈여겨 본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대통령 취임사 기초위원을 맡겼고, 2000년 1월 교육부장관으로 불렀다. 그러나 5.18 전날 광주에 갔다가 룸살롱 술자리 파문에 휩싸여 불명예 낙마하고 만다. 그랬던 그가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이번에는 180도 변신, 박근혜 후보의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입된다. 이어서 대선과 함께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재선거에서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보수진영 단일후보로 나서서 당당하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는 출마 이유로 어처구니없게도 “전교조 운동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의 국가관이 흔들린 것 같다.”라고 주장하였다. 문용린과 같은 보수 꼴통이 놀랍게도 진보진영 집권 청사진 작업에 참여한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의정부 최대 인사실패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그는 작년 서울시교육감 재선 도전에 보기 좋게 실패했다.

지난해 KBS 이사장에 선임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젊은 시절 서울대에서 러시아혁명사 등을 가르친 나름 합리적인 역사학자였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이 핀란드 대사를 제안하여 국내 1호 여성대사가 되었다. 1998년 국민의정부로 정권교체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4강대사인 러시아대사로 영전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조부인 이명세의 악질적인 친일행위가 드러나 대통령 직속기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파 704인 명단에 포함되는 과정에서 그의 입장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친일논란을 일으킨 ‘교과서포럼’ 인사들을 주축으로 2011년 설립된 ‘한국현대사학회’ 고문을 맡아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발간을 주도해 온 것이 그것이다. 김영삼 - 김대중 -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만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자리를 탐하는 이인호 이사장. 젊은 시절 이인호 교수는 온데 간 데가 없다.

친노동자적 성향이 강한 인물로 분류돼온 김대환 인하대 교수. 서울대와 옥스퍼드대에서 노동경제학을 전공했다.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등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참여형 학자였다. 경북 출신이지만 김대중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경제노동분과 위원장을 맡았으며, 참여정부 때는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를 거쳐 노동부장관에 기용됐다. 그랬던 그가 2013년부터 박근혜 정부의 노사정위원장을 맡아 정부 주도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사실상 총대를 메고 있다.

김태유 前서울대 교수. 그는 경복고 선배인 문희상 비서실장 추천으로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에 발탁됐다. 1년간의 청와대 근무를 마친 이후에도 외교부 에너지자원대사, 대통령직속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 등 참여정부는 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 19대 총선 때 뻔뻔하게도(?) 새누리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다. 물론 보기 좋게 탈락은 했지만 결국 노무현 정부 최대의 인사실패 본보기가 된 셈이다.

이상 대표적인 경우를 살펴봤지만 진보에서 보수로, 親李에서 親朴으로 정권과 정부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권력욕과 감투 욕심에 청와대 언저리를 헤매는 지식인이 진짜 문제이다. 그들은 더 이상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지도 않는다.

물론 관료라고 해도 ‘영혼’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지시한 일이 늘 합법적이라거나 성공 확률 100%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무조건적으로 복종한다면 영혼 없는 로봇이나 기계 부품에 다름없다. 양심을 팽개치는 행위이고 상식을 저버리는 일탈이다. 그렇다고 정부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하라는 뜻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임면권자의 지시를 거부하면 신분상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승진이나 보직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잘못하면 사표도 감수해야 한다. 당장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는데 그런 용기를 내기란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며 비굴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국민의 공복이라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잘못인 줄 알면서도 출세에 눈이 어두워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자처하는 공무원을 국민이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평생 양지만을 지향해온 김만복 前원장과 같은 영혼 없는 공무원만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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