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유지 요청한 미국에 퇴짜 놓은 문재인 대통령
한국이 안보에 위협된다는 일본과는 군사정보 공유 못해
세계 동맹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하는 트럼프
과도한 증액 요구, 한국 정치권이 받을 가능성 거의 없어
거래로 변한 동맹의 가치, 미국 신뢰도와 한미동맹에 부정적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마크 에스퍼(Mark Esper) 국방장관과 해리 해리스(Harry Harris) 주한미국대사, 마크 밀리(Mark Milley) 미 합참의장을 접견하고 있다.(2019.11.15)(자료: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마크 에스퍼(Mark Esper) 국방장관과 해리 해리스(Harry Harris) 주한미국대사, 마크 밀리(Mark Milley) 미 합참의장을 접견하고 있다.(2019.11.15)(자료:청와대)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GSOMIA)가 오는 23일 0시를 기해 종료될 예정인 가운데, 지소미아 유지를 원하는 미국 측의 요청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거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500% 증액까지 요구하고 있어 향후 한미동맹의 방향에 대한 의구심까지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 미국의 지소미아 유지 요청 거부

“지소미아 종료로 득을 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이다.”

지난 15일, 미국 마크 에스퍼(Mark Esper) 국방장관이 서울에서 개최된 ‘제51차 한미안보협의회(SCM)’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날 오후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해 지소미아 유지를 강하게 요청했다. 그 자리에는 해리 해리스(Harry Harris) 주한미국대사와 마크 밀리(Mark Milley) 미 합참의장도 배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규제 해결을 선결요건으로 재차 강조하며 일본과 군사정보를 공유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일본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가 없다면 지소미아 종료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셈이다.

지소미아 사태의 진앙은 박근혜 정부 당시 일본이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한 합의금 10억 엔을 현 정부가 거부한 것이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TV 출연, 회의, 기자회견 등 가능한 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한국 정부의 결정을 비판해왔다.

이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나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삼권분립이 엄정히 지켜져야 함에도,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행정부 공격의 소재로 삼았다. 그 과정에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규제’ 승소 소식이 날아들었다.

일본 정부는 급기야 액체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터 등 반도체 관련 제품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섰다. 일부 제품이 한국으로부터 북한으로 넘어간 정황이 있어 국제평화와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일본은 한국의 화해치유재단 합의금 거부 등에 반발, 지난해 10월 제주에서 열린 관함식에 불참을 통보했다. 사진은 2015년 취역한 일본 헬기 항공모함 DDH-183 이즈모(Izumo)(자료:pgtyman.tistory.com/594)
일본은 한국의 화해치유재단 합의금 거부 등에 반발, 지난해 10월 제주에서 열린 관함식에 불참을 통보했다. 사진은 2015년 취역한 일본 헬기 항공모함 DDH-183 이즈모(Izumo)(자료:pgtyman.tistory.com/594)

우리 정부는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명분을 들어 수출규제조치를 취한 일본과 군사안보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소미아 종료를 선택한 배경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역내 군사적 환경을 오판한 결과라며 비판하지만, 수위는 낮다. 겉으로는 지소미아 종료와 수출규제를 전혀 다른 문제로 바라보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가 자국에 미치는 여파가 적기 때문이다. 바쁜 쪽은 미국이다.

전체적으로, 한국은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를 위해 미국이 압력을 행사하기를 원하지만, 미국은 ‘당사자 간 문제’라며 거리를 두고, 일본은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를 분리해 대응하는 모양새다. 23일 0시까지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없다면, 지소미아는 이대로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

지소미아 유지 총력전 펼치는 미국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 측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근본적으로 한일 간 문제라서 양국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런 표면적 입장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국방장관을 비롯한 행정부 관료들을 한국과 일본에 연이어 파견하는 등 지소미아 유지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미 의회도 나섰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미 하원 군사위원장은 “한국이 지소미아에 다시 전념하고, 일본과 지소미아 연장에 협력하기를 강하게 촉구한다”고 했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거론된 방안은 ‘결정을 연기하자’는 것이다. 지소미아 종료를 막고 시간을 더 벌 수 있는 방안이다. 청와대는 이 방안에 회의적이다.

두 번째 방안은 일단 지소미아를 종료한 후, 한일관계 회복의 제반 여건이 마련될 때 다시 체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다급한 쪽은 중국에 대응한 인도태평양전략과 북한에 대응한 한반도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미국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아베 신조 총리가 함부르크(Hamburg) 소재 미국 총영사관에서 열린 ‘동북아 안보만찬’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2017.07.06)(자료:AP by Evan Vucci/주한미국대사관)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아베 신조 총리가 함부르크(Hamburg) 소재 미국 총영사관에서 열린 ‘동북아 안보만찬’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2017.07.06)(자료:AP by Evan Vucci/주한미국대사관)

문 대통령이 에스퍼 미 국방장관의 요청을 거부한 것과 관련, 자유한국당은 원론 차원의 경고를 내놓았다. 김성원 대변인은 16일 논평에서 “북한 눈치를 보면서 일본과의 지소미아까지 파기 결정한 문재인 정권이 이제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하는 미국마저 거리를 두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안보 무임 승차’ 거론, 동맹 압박하는 트럼프

“미군의 보호를 받기 위해 부자 국가들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2019.10.18)-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무역뿐 아니라 동맹국과의 군사협력 분야, 특히 방위비 분담금에도 적용되고 있다. 명분은 ‘안보 무임 승차론’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캐나다는 2020년까지 1천억 달러(116조7,000억 원) 규모의 분담금 증액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4,000여 명의 미군이 주둔 중인 일본에도 지금보다 300%가량 증액된 80억 달러(9조3,360억 원)를 요구하고 있다(Foreign Policy, 2019.11.15).

28,500여 명의 미군이 주둔 중인 한국에는 지금보다 500%가량 증액된 50억 달러(5조8,350억 원)를 요구 중이다. 국방부 및 국무부 관계자들이 47억 달러(5조4,849억 원)로 낮췄다지만(CNN, 2019.11.15), 비이성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캐나다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2020년까지 1천억 달러(116조7,000억 원)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NATO 본부 앞에 게양돼 있는 29개 회원국 국기들(자료:NATO.int)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캐나다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2020년까지 1천억 달러(116조7,000억 원)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NATO 본부 앞에 게양돼 있는 29개 회원국 국기들(자료:NATO.int)

매 5년마다 열리던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이 지난해 종료됐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50% 증액을 요구했지만, 우리 정부는 2018년 대비 8% 증액 및 매년 재협상에 합의한 바 있다.

과도한 요구, 한국 정치권 받아들일 가능성 거의 없어

트럼프 대통령의 50억 달러 요구에 한국에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사실 전통적 동맹인 한국을 ‘안보 무임 승차국’으로 치부하는 시각은 한국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국이 전투기를 비롯한 미국 군사무기의 주요 구매국일 뿐 아니라,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와 인도태평양전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세계 최대 단일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USAG Humphreys)’ 건설에 상당 부분 기여한 사실도 무임 승차국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과는 거리가 멀다.

워싱턴 정가와 학계도 우려를 표했다. 그들의 입장은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아무런 근거 없는 증액 요구가 반미주의 촉발, 동맹 및 대북・대중 억지력 약화, 미국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 등으로 이어져 중국과 러시아, 북한에 이익을 준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정치권은 이런 우려를 “문재인 정부는 중국과 북한에 이익을 준다”는 문장으로 바꿔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권이 트럼프 대통령의 50억 원 증액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내년 4월 15일을 겨냥한 총선 레이스가 이미 시작돼 엄청난 국고 손실이 예상되는 사안에 무턱대고 찬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일 미군기지로는 세계 최대인 평택 캠프 험프리스(USAG Humphreys)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부터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트럼프 대통령, 정경두 합참의장,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 110억 달러(12조8,370억 원) 규모의 캠프 험프리스에는 쇼핑몰과 교회, 골프 코스, 그리고 심지어 고등학교 축구장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고, 미군과 일반인 42,000여 명이 생활할 수 있다.(2017.11.07)(자료:AP by Andrew Harnik)
단일 미군기지로는 세계 최대인 평택 캠프 험프리스(USAG Humphreys)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부터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트럼프 대통령, 정경두 합참의장,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 110억 달러(12조8,370억 원) 규모의 캠프 험프리스에는 쇼핑몰과 교회, 골프 코스, 그리고 심지어 고등학교 축구장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고, 미군과 일반인 42,000여 명이 생활할 수 있다.(2017.11.07)(자료:AP by Andrew Harnik)

미국의 신뢰도와 한미동맹, 향후 방향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일본 등 동맹국들과 공유해 온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 동맹의 이익과 전략이 가치 중심에서 이익 중심, 즉 거래관계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거래관계로 바꾸는 미국의 행보가 계속될 경우, 미국은 동맹국들과의 사이에서 이전보다 높은 긴장감을 대가로 받을 수 있다. 이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대치에 주력하는 미국의 전략에 맞지 않다. 동맹 약화는 결국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의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다.

기본적으로 튼튼한 한미동맹에도 부정적이다. 최근 북핵 이슈, 일본과의 지소미아 이슈 등에서 서울과 워싱턴의 접근방식이 한층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두 정부 간 전략에 균열이 가고 있어서다.

한국과 미국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된 우려가 흘러나오지만, 실제 철수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을 원한다 해도, 북핵 이슈가 줄어들지 않았고, 對중국 견제가 필수적인 마당이라 미 의회와 국방부, 국무부 등이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얼마나 공정하게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다.

이 지점에서 지소미아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연결돼 있다. 두 가지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여야 협력과 공조가 필요하다. 국회가 힘을 실어 준다면 국익 관점에서 이롭다.

오는 20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의 원내대표들이 도미한다. 지소미아와 방위비 분담금이 대화의 주제일 수밖에 없다.

그 전에 현실적인 지소미아 종료 대응방안을 공유하고, 국회에 이미 발의돼 있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공정 협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 지소미아든 방위비 분담금이든, 서울의 원내대표들이 워싱턴 정가를 향해 제각기 딴소리를 낼 수는 없으니 말이다.
bizlink@straightnews.co.kr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