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구제금융의 원천은 특별인출권(SDR)」
「선진 제국의 경제적 폭력은 대항마를 불러와」
「달러화를 향해 던진 위안화의 도전장」
「민비인가 흥선대원군인가, 당정을 택할 것인가 야당을 택할 것인가」

김태현

 

특별인출권 드림(dream)

1997년, 외환위기로 몸살을 앓던 우리나라에 각종 무리한 요구를 들이대며 돈을 빌려준 기관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 Monetary Fund)이라는 곳이다.

당시 IMF가 제공해준 ‘구제금융’의 원천은 특별인출권이라 불리는 SDR(Special Drawing Right)이다. SDR이란, IMF 회원국의 재정이 악화되었을 때, IMF로부터 무담보로 자금을 인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브레튼우즈 체제든 뭐든, 금이든 은이든, 태환제가 종이화폐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형편이니, 그 권리는 당연히 가상화폐를 의미한다.

그런데 SDR 바스켓이라 불리는 통화, 즉 SDR을 구성하고 있는 통화는 US달러와 유로, 파운드, 엔, 단 네 통화뿐이고, 구성비는 US달러화 41.9%, 유로화 37.4%, 파운드화 11.3%, 엔화 9.4%이다.

한 국가의 통화가 IMF의 SDR 바스켓에 편입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나라의 원화를 예로 들어보자.

먼저, 한국의 SDR 바스켓 편입은 원화가 국제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화가 국제화된다는 것은 세계 각국이 원화를 달러화,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등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외환보유 자산에 포함시킨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각국의 중앙은행이 원화 표시 채권의 비중을 늘린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국이 발행하는 채권에 대한 해외투자 비중이 폭증한다. 당연히 세계 각지로부터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어 우리나라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의 규모가 훨씬 커진다. 그런 반면 리스크는 더 낮아지고 수익성은 높아진다. 안전한 돈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역시장에서 원화의 직접 결제비중도 늘어난다. 한국의 기업들이 달러를 통하지 않고 무역을 할 수 있게 되어 환차손 비용과 리스크가 현저히 줄어든다.

또한 한국 정부와 기업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원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것도 쉬워지고, 원화 표시 채권에 대한 수요가 확대됨에 따라 한국 내 자산 가치 역시 상승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또다시 경제위기로 인한 유동성 부족과 맞닥뜨릴 경우,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자금을 빌리는 대신, 원화 표시 채권을 발행해서 유동성을 확대하거나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인즉슨, 돈을 찍어서 온 세상에다 대고 뿌릴 수 있다는 얘기다. 마치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2008년 세계 경제위기recession 이후 달러를 마구 찍어서 뿌려댔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었지만, 정말 환상적인 스토리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에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백일몽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상황을 오랫동안 꿈꿔왔고, 이제 목전에 둔 나라가 있다. 독자제위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중국이다.

경제에 예속되는 정치

개인이나 국가가 처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안 중에 가장 폭력적인 게 있다.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부당한 조건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천만 원을 빌려줄 테니, 오백만 원짜리 땅을 백만 원에 팔아라”, “천억 달러를 빌려줄 테니, 오백억 달러를 유통할 수 있도록 증시의 규제를 풀어라”...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에게 닥쳐왔던 시련이 그런 것들이었다. 그중 론스타 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이 난망한 상태다. 아니, 난망한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일국의 사법주권까지 거덜내버린 ‘졸속’ 한미FTA라는 괴물이 상륙한 탓에 거액의 혈세까지 빼앗길 지경에 이르러 있다.

돈 빌린 이는 죄인이라 했던가...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통화기금(IMF), 유럽부흥개발(EBRD), 이 모두가 돈 빌린 국가를 죄인으로 만드는 선진 제국의 도구다. 미국은 물론, 유럽 일부 국가들과 일본도 이 기구들에 ‘개발’ 및 ‘구제’라는 명목으로 상당 부분 공헌하고 있다.

시중은행이 돈 빌린 개인에게 주로 부과하는 것은 이자이지만, 국제적인 금융기관이 돈 빌린 국가에 부과하는 것은 ‘경제 개방’이다. 그리고 그들의 개방 압력은 그 국가가 처한 상황과 무관하게 가해진다. 그 나라 국민들이 겪을 고통은 안중에도 없을 만큼 야멸차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돈 빌린 국가를 ‘유효한 시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점잖은 수탈이고, 비폭력을 가장한 폭력이며 압거다.

그린백(greenback) vs 레드백(redback)

대항마의 출현은 필연

굳이 헤겔의 정반합을 들먹일 필요도, 맑스의 ‘대립물 통합의 법칙’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비굴할 수밖에 없는 ‘유효한 시장’의 증대는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으며, 불합리한 폭력과 압거에 대한 반발은 필연적이다.

그런 반발의 선봉에 IMF SDR 바스켓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후강퉁(상하이증시와 홍콩증시 간 교차거래), 선강퉁(선전증시와 홍콩증시 간 교차거래), 후룬퉁(상하이증시와 런던증시 간, 상하이증시와 파리증시 간 교차거래), 국제거래소 합작설립,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있다. 놀랍게도 이 모두가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 금융질서 ‘새판짜기’의 도구들이다. 돈을 앞세운 폭력과 압거를 향한 대항마들이다.

크리스틴 리가르드 IMF 총재가 성명에서 밝혔듯이, 오는 11월 30일이면 위안화가 (순위에서 일본을 제치고) IMF의 SDR에 편입될 예정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초대 총재 지명자 진리췬은 “중국이 세계경제 질서를 쓰게 할 수는 없다”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향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문은 미국에도 활짝 열려 있다.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크리스틴 리가르드 IMF 총재

중국이 미국의 글로벌 경제 패권에 던진 도전장. 영국, 프랑스 등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이미 가입했거나 가입의사를 표명했다. 유럽 선진국들의 잇따른 호응 덕에 중국의 IMF SDR 편입은 물론, 현재 57개국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회원국도 머지않아 70여 개 국으로 늘어날 전망이고, 중국의 TPP 가입 역시 그런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논의될 것이 자명하다.

넛 크래커는 어디로?

위에 나열한 것들은 중국의 각종 전술에 불과하고, 그들이 최종적으로 노리는 목표는 미국에 필적하는 ‘기축통화’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그간 지켜왔던 위안화의 시장 환율 변동폭을 전격적으로 확대했고, 기준금리를 인하했으며, 금리자유화를 단행했다. 모두 IMF가 끈질기게 주문해왔던 금융개혁 조치들이었다.

중국이 IMF SDR 편입을 위해 해결해야 했던 마지막 문제는 ‘통화의 사용 편의성’, 즉 위안화가 세계적으로 자유롭게 사용되고 있는지 여부였지만, 이 역시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위안화가 교역시장의 결제통화로써 차지하는 비중이 US달러화, 유로화, 파운드화에 이어 세계 4위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기축통화를 향한 중국의 항해는 순조롭고, 이제 어느 국가도 위안화의 IMF SDR 편입 및 금융확대정책의 실패를 의심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이 가져올 세계 금융시장의 지각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선진 제국들은 후강퉁, 선강퉁, 후룬퉁이 자국에 미칠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은 중국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한때, ‘넛 크래커’라는 용어가 회자된 적이 있다. 무섭게 추격해오는 중국과 추격해가야 하는 일본 사이에 넛 크래커처럼 끼어 있는 한국을 빗댄 말이다. 녹색 바탕에 인쇄된 미국 돈 그린백(greenback)과 벌건 바탕에 인쇄된 중국 돈 레드백(redback) 사이에서, ‘덜 익은’ 배추색 바탕에 인쇄된 세종대왕은 어디로 가야 할까?

민비의 전철을 밟아야 할까, 흥선대원군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정부와 새누리당의 노선을 칭찬하는 게 옳을까,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의 정책에 귀를 기울이는 게 옳을까?

엇...? 그러고 보니 질문이 잘못 된 것 같다. 전 세계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제3차 세계 화폐대전은 뒷전에 둔 채, 교과서를 국정화 하느니 마니, 당을 깨니 마니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넛 크래커는 ‘여당과 야당’이라는 와플, ‘친박 대 비박’이나 ‘친노 대 반노’라는 햄버거, ‘정부 대 국민’이라는 샌드위치 안으로나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급변하는 세계 경제 정세가 우리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지금, 또 다른 미네르바의 출현이라도 기다려야 하나...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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