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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송영길 등 ‘86그룹(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출신 두 원외 정치인의 복귀전이 야당가의 화제로 부상했다.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당과 구체적으로 협의한 상황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은평(을)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 출마는 일찌감치 마음을 굳혔고 지역구 서너 군데를 두고 고민하다가 은평(을)에 도전하기로 정했으며 당이 출마하라고 한다면 이를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15대 때부터 5선을 기록한 선거구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재선 도전에 실패한 송영길 前인천시장 역시 “내년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할지 여부를 올 연말까지 최종 결정하겠다.”라고 하면서도 “언론에서 새정치연합 후보로 천정배 의원의 지역구인 광주 서구(을)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는데 현재까지 결정된 사실이 없다. 더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 9월부터 친노와 비노를 넘어 통합의 흐름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든 ‘통합행동’에 박영선 민병두 김부겸 김영춘 등 전·현직 의원 8명과 함께 하고 있다.

한편 9월 23일 발표된 마지막 혁신위원회의 주요 '용퇴 명단'에서는 제외됐지만, 사실 새정치연합 안팎에서 학생운동권 출신 ‘86그룹’은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송영길(3선·원외), 김민석(재선·원외), 안희정(원외), 이인영(재선), 우상호(재선), 강기정(3선) 등 다수의 최고위원을 배출했고, 현직도 정청래(재선), 오영식(3선) 등 두 명이나 포진해 있다. 전·현직 광역단체장도 이광재 송영길 안희정 등 3명이다. 17~19대 내리 3선의원도 안민석 조정식 최재성 등 3명이었다.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인 임종석 부시장은 2000년 16대 총선 당시 만 34세의 나이로 처음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17대에 재선되었고 19대 총선을 준비하던 중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후 6월부터 2기 박원순 호의 정무부시장을 맡아 사실상 명예를 회복했다.

민주통합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임 부시장 쪽은 “정치 복귀에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오히려 야당 강세 지역이 아닌 은평(을)에 출사표를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그동안 양지만을 찾아다닌다고 비난받는 당내 ‘86그룹’을 향해 제기돼온 ‘험지 출마’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은평(을)은 겉으로 보면 여당 강세지역이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19대 비례대표 새누리당의 정당 득표율은 39.5%로 이웃한 종로구(42.6%)보다 훨씬 낮았다. 17~18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는 서울 강북 지역에서 여당 최약세지역인 강북구 수준과 엇비슷했다.

그동안 이재오 의원이 연승을 기록한 건 야당의 인물난과 전략 미스 때문이었다. 이재오 의원은 여당 열세지역이지만 철저하게 바닥을 훑는 전략으로 선거운동을 해왔다. 평소 지역구 관리에 철저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야당은 유리한 선거환경만을 믿고 계속해서 낙하산 공천을 해왔다. 문국현 前창조한국당 대표의 당선무효로 실시된 2010년 7·28 재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전략공천한 장상 후보가 41% 대 58.3%로 이재오 후보에게 대패했다. 19대 때도 고연호(여) 지역위원장이 표밭을 꾸준히 갈고 닦아왔으나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통합진보당 천호선 후보에게 밀렸고 천 후보는 단 1.14% 차이로 패배했다. 여론조사 방식으로 이루어진 야권단일후보 경선은 ‘노무현대통령 청와대 대변인’ 경력을 사용한 천호선 후보가 유리했으나 그는 은평(을)지역에는 낯선 낙하산이었다.

이에 반하여 지역을 닦아오며 상향식 경선을 거친 후보는 좋은 야당 밭을 십분 활용하여 낙승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경 의원의 보좌관 경력만으로 은평구청장 재선에 성공한 김우영 후보는 2010년 54.2%, 2014년 55.3%의 득표율로 아주 여유 있는 승리를 낚아냈다. 2012년 대선 때도 문재인 후보는 53.7%의 득표율로 45.9%에 그친 박근혜 후보를 가볍게 제쳤다. 따라서 은평(을) 지역은 임종석 부시장과 같은 새로운 ‘낙하산’이 아닌 바닥을 열심히 개척해온 지역밀착형 후보들이 필요하다. 마침 4년 전 고배를 마신 고연호 새정치연합 은평(을) 지역위원장이 설욕전을 벼르고 꾸준히 준비해 왔다. 지역 내 초·중·고교를 나온 강병원 前청와대행정관도 출전채비를 마친 상태이다. 그 역시 1994년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최근 선거 트렌드를 보면 낙하산 공천에 대해 반발이 뚜렷한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19대 총선 당시 경기 안산(갑)에 백혜련 변호사를 전략공천했으나 통합진보당 조성찬 후보에게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패배했다. 본선에서는 지역을 닦아온 기초의원 출신 새누리당 김명연 후보에게 승리가 돌아갔다. 이 선거구는 이전까지 천정배 의원이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야당의 아성이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해 7·30 재보선 때도 경기 수원(을)에 백혜련 변호사를 전략공천했다. 그러나 역시 수도권 6개 선거구 중에서 가장 큰 17.5% 차이로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수원(을)은 역대 전적 2승 1패로 야당 우세지역이었다. 따라서 20대 총선에 연고 없고 후보의 섣부른 이동 배치는 위험한 선거 전략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인천지역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송영길 前인천시장의 광주 서구(을) 출마 거론은 한 마디로 생뚱맞다. 전남 고흥 출신으로 광주 대동고를 졸업했으니 전혀 얼토당토 한 것은 아니지만, 18일 (가칭)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 천정배 의원의 ‘자객(刺客)’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한 때 야권의 대권주자로 기대를 모으며 광역단체장까지 당선됐던 그가 한낱 자객 신세로 전락한다면, 더군다나 수도권을 버리고 호남으로 내려간다면 이렇다 할 호남 출신 대권주자가 없는 현실에서 고향은 그를 환영할까?

호남 출신이지만 차세대를 꿈꾸는 송 前시장에게 신당의 천정배 의원은 적장이 아니다. 지금은 서로가 분열돼 있지만 호남에서 새누리당의 당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어 보인다. 그동안 꾸준하게 예산폭탄을 터트려온 이정현 의원조차 최근 역사교과서 발언 파동으로 재선이 힘들어진 게 사실이 아닌가?

지난 5월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서울대 조국 교수가 육참골단(肉斬骨斷)을 언급한 적이 있다. “나의 살을 내어주고 적의 뼈를 취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인데 4선 이상 중진 공천배제, 현역의원 교체율 40% 이상 실행 등 이른바 ‘물갈이’ 주장이었다.

지난 19대 총선 결과, 민주통합당은 42명의 3선 이상 중진 당선자를 냈는데 이중 과반수가 넘는 22명이 수도권 출신이었다. 4선 이상의 경우에는 15명 중 12명, 80%의 압도적인 비율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호남은 25명 당선자 중 9명이 3선 이상이었고, 4선 이상은 김성곤 의원 단 1명뿐이었다. 계속해서 호남 위주로 현역 물갈이를 해온 까닭이었다. 따라서 이제 정작 필요한 건 호남 물갈이가 아니라 수도권 물갈이다.

새누리당은 강창희 의원(6선), 이한구 의원(4선) 등 중진들이 이미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지난 8월에는 ‘86세대인 김태호 최고위원(재선)이 동참했다. 최근에는 초선인 김회선 의원까지 대열에 가세하며 그 바람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중진들은 혁신위원회의 용퇴 요구는커녕 사지 출마 요청에도 전혀 반응들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 당의 허리인 ‘86그룹’이 나서야 한다. 30년 전에는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떨쳐 일어섰고, 15년 전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에 응했으니 지금은 중진 퇴출, 즉 육참(肉斬)을 위해 나서야 할 때이다. 육참(肉斬)이 없으면 골단(骨斷)도 할 수가 없다. 내 살을 도려내지 않고서 어찌 적의 뼈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86그룹’의 대표주자인 임종석 부시장과 송영길 前시장은 육참(肉斬)의 자세로 당을 살리라.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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