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상식적이고 부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 국민의 시위행태는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

박근혜 대통령이 복면착용 시위자를 IS(이슬람국가/극단주의 무장단체)에 빗대며 엄단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즉 시위는 테러고 테러는 IS이라는 말이다.

이는 집회·시위를 테러와 연결시키고 남북 ‘특수관계’를 이용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안몰이’를 전면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제 반대하는 국민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발언이 있자마자 새누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복면금지법」과 「테러방지법」을 들고 나왔다. 「복면금지법」은 18대 국회에 제출되었다가 폐기된 복면시위처벌법안을 다시 제출한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 여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언급하고 있었던 「복면금지법」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가 시위를 벌이며 자신의 신원을 숨기기 위하여 마스크를 쓰는 것, 반전시위에서 해골마스크를 쓰는 것, 시위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공적 인물을 표현하는 가면을 쓰는 것, 그리고 2006년 경남 밀양시 감물리의 생수공장 허가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처럼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눈과 코만 드러낸 복면을 쓰는 것 등이 다 처벌된다.

여기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3년 이미 “주최자는 집회의 대상, 목적, 장소 및 시간에 관하여, 참가자는 참가의 형태와 정도,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여기서 '복장'에 '복면'이 포함됨은 당연하며 따라서「복면금지법」은 위헌이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독일 등 유럽에서도 「복면금지법」이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KKK와 같은 극악한 인종차별자들의 만행을 막기 위해 제정된 것이며, 유럽은 극우나치즘과 빈발한 테러예방이 그 목표였다. 하지만 그 나라들은 우리와 달리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안」 역시 미국의 9.11테러 직후 발의된 후 인권 침해 소지와 국정원의 권한 비대화 논란으로 15년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 대선개입 댓글은 물론 조작과 폭로, 해킹으로 얼룩진 국정원의 '의심가는 인물'에 대해 직접 IP 추적이나 감청 등을 무제한 허용하는 이 법안은 '제2의 국가보안법'이 될 위험이 크다.

국민을 잠재적 폭도로 규정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이 시위를 하게끔 유도한 원인 제공자는 바로 현 정부였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법 개악 강행 등에 분개해 시위에 나선 국민을 IS와 동일시하다니 정말 개탄할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탄핵까지도 가능한 발언이다.

이는 국민에 대한 존중, 사람에 대한 배려, 평화에 대한 호소를 무시하는 파시즘적 발상으로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게 아니라 간섭하고, 채찍질하고, 담금질해 길들여야 할 미숙아로 취급하는 행위다.

최근 이런 조짐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치평론가 황태순의 '위수령' 망언, 신지호 전 한나라당 의원의 시위대를 “테이저건 쏴가지고 요절을 시켜버려야 한다”라는 무시무시한 폭언 등은 국민을 향한 폭력적 공권력 남용을 부축이며 정당화하고 있다.

위수령이란 육군 부대가 한 지역에 계속 주둔하면서 그 지역의 경비, 육군의 질서 및 군기의 감시와 시설물 등을 보호할 것을 규정하는 대통령령이다. 과거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 분출되는 국민의 저항을 억누르는 폭압적 수단으로 악용됐다.

또한 새누리당의 김도흡 의원과 김진태 의원은 약간의 결은 다르지만, 지난 민중총궐기대회 때 “농민 백남기 씨를 위중하게 만든 건 경찰의 물대포가 아니라 백씨가 쓰러진 직후 달려든 빨간 우비를 입은 사람이 폭행을 가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남발하고도 자신들의 폭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와 정치인의 망발은 과거 곤봉과 방패로 내리찍고, 얼굴에 최루가스를 뿌려 사람을 죽여 놓고선 시위대에 깔려죽었다고 하는 천연덕스러움과 너무도 닮았다.

사람에게 직사 물대포를 쏴서 쓰러뜨린 것으로도 모자라 쓰러진 몸 위에, 급기야 엠블런스에 까지 물대포를 쏘아대고서는 단지 “실수였다”를 넘어, 적반하장 물대포가 아니라 시위대의 폭력 때문이었다고 떠들어대는 경찰과 정치인들의 후안무치는 ‘강기훈 유서대필조작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경찰의 살인적 폭력진압이 이미 동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변명할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됐고, 외신들도 한국의 폭력진압에 우려를 표하는 실정인데도 대통령이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한 폭행을 아예 외면하고, 대국민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발언을 한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대통령이라면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공권력으로 인해 생명이 위독하게 된 농민을 찾아가 쾌유를 빌고 사과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태까지의 종북타령으로는 부족한 것인가. IS까지 들먹이며 국민에 대한 적개심을 고양시키는 것이 마치 아버지인 박정희를 보는 것 같다.

헌법에 명시한 평화적 시위는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국민을 궁지에 몰아놓고 위헌차벽을 쌓아놓으면 격앙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힘으로 내리누르려는 대통령의 태도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회의 원활한 운영마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더 이상 「테러방지법안」과 「복면금지법」같은 야만적인 법 제정에 남은 임기를 낭비하지 말고, 제발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그만 멈춰줄 것을 촉구한다.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보편적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정당한 국민저항권을 막지 않는 등 정부가 비상식적이고 부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 국민의 시위행태는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김상환(전 양천신문/인천타임스 발행인)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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