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개선 8개안 중 7개안 합의, 4개안 이견으로 11차례 협의 결렬
책임자 처벌, 민주노총은 ‘즉시 파면’…마사회는 경찰 수사결과 따라
수사 길어져 안타깝지만, 불공정성 밝혀질 경우 엄중 조치 불가피
책임자 처벌・제도개선에다 부정경마와 극단 선택 방지 대책도 마련해야
사태 해결과 재발방지 위해 민주노총 측과 마지막까지 최선 다해야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한국마사회(회장 김낙순) 소속 기수가 유서를 남기고 기수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지 67일이 지났지만, 유족 측을 대변하고 나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한국마사회 간 교섭이 결렬되면서 사건이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기수 잃은 말. 미국 볼티모어 핌리코 트랙(Pimlico track)에서 열린 제144회 프리크니스 스테익스(2019 Preakness Stakes) 경주 선발전에서 기수(John Velazquez)를 잃고 달리는 경주마 보덱스프레스(Bodexpress)(2019.05)(자료:cbs8화면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
기수 잃은 말. 미국 볼티모어 핌리코 트랙(Pimlico track)에서 열린 제144회 프리크니스 스테익스(2019 Preakness Stakes) 경주 선발전에서 기수(John Velazquez)를 잃고 달리는 경주마 보덱스프레스(Bodexpress)(2019.05)(자료:cbs8화면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

합의 실패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한국마사회

지난해 11월 29일 새벽 5시 40분경, 마사회 부산경남공원 소속 문중원 기수(40)가 유서를 남긴 채 기수숙소 108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는 조교사 채용비리와 부정경마로 힘들어했던 정황이 담겨 있었다.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12일째인 지난 1월 10일, 민주노총 지도부는 마사회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협의에 합의했다. 민주노총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유족 보상’ 등 4개 사안에 대해 11개 과제를 제시했고, 양측(민주노총 4인, 마사회 4인)은 1월 13일부터 30일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집중 협의를 가졌다.

협의는 양측이 대부분의 제도개선안에 대해 합의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유족 보상 등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2개월여 진행된 양측의 협상은 경마를 건전한 국민레저스포츠로 자리잡고 활성화하기 위한 산통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마 전문가들은 마사회와 민주노총이 조교사와 기수를 포함한 경마 이해관계자들의 내부 갈등구조 봉합에 머물지 않고 차제에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제도개선을 전향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도개선, 8개안 중 7개안 합의 이르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마사회는 애초 제시된 8개 제도개선안 중 7개안에 대해 구두 합의에 이르렀다.

민주노총 측이 요구한 2017년 ‘말 관리사 관련 우선조치 협의사항’은 모두 이행됐다. 말 관리사를 고용하는 주체에 관한 문제도 마사회 측이 한 발 물러서 ‘조교사 개인’에서 ‘조교사 협의체’로 전환됐다.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 서울(서울경마공원) 본관 ⓒ스트레이트뉴스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 서울(서울경마공원) 본관 ⓒ스트레이트뉴스

남은 문제는 “미고용 말 관리사 5명이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민주노총 측의 주장. 마사회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다.

“민주노총 측이 언급한 미고용 말 관리사 다섯 분도 급여를 받고 계신다. 그분들이 소속된 조교사가 일시적으로 휴업을 했지만, 이제 그분들은 조교사 협회 소속 직원이기 때문이다. 미고용 상태에서 급여를 못 받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책임자 처벌, 시기 엇갈려

민주노총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고 문중원 기수가 남긴 3쪽짜리 유서의 요지는 “일부 조교사들의 부당한 (부정경마) 지시에 놀아나야만 했고,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하루빨리 조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죽기 살기로 준비해 조교사 면허를 받았지만, 면허를 딴 지 7년인데도 높으신 양반들과 친분이 없어 마방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해당 사안에서 고 문중원 기수가 제기한 문제는 ‘마사대부심사 부정’, 즉 ‘조교사 채용비리’다. 유서에는 처장, 형, 선배 등의 실명이 등장했고, ‘보이지 않는 힘’도 거론됐다. 가족과 부모님에게 죄송해 하는 마음도 실려 있었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본부는 사건 발생 사흘만인 1월 1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부산 강서경찰서는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현재 사건은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팀으로 이첩된 상태다.

고 문중원 기수가 남긴 유서 내용 중 일부(재작성) ⓒ스트레이트뉴스
고 문중원 기수가 남긴 유서 내용 중 일부(재작성) ⓒ스트레이트뉴스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달 1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입구에서 “한국마사회의 부정한 카르텔이 문중원 기수를 죽였다. 검찰은 엄정수사로 마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김낙순 회장 등 관계자 1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현재, 민주노총 측은 “경찰의 수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책임자 즉시 파면’ 등의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마사회 관계자는 “사건 발생 직후 우리가 먼저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수사 결과 위법사항이 확인될 경우, 내부 징계조치는 물론이고 사법처리까지 당연한 사항”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적정 유족 보상 금액은?

어느 정도의 금액이 오갔는지 알 수 없으나, 양측은 유족 보상에서도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있었던 11차 협상에서도 양측은 보상 금액에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협상단은 결국 협상 중단을 선언하고 회의장을 떠난 후 보도자료를 통해 ‘일방적인 협상결렬’ 입장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마사회 협상단 관계자는 “민주노총 측이 협상을 중단할 때, 한쪽의 요청이 있을 경우 협상을 재개한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일방적인 협상 결렬을 발표해 유감이다. 그렇지만 선후야 어떻든 우리는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마사회 관계자로부터 그간의 경과와 계획을 들었다.

야간경기가 치러지는 렛츠런파크 서울(서울경마공원) ⓒ스트레이트뉴스
야간경기가 치러지는 렛츠런파크 서울(서울경마공원) ⓒ스트레이트뉴스

고 문중원 기수 관련, 마사회 인터뷰

_경찰 수사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처음에 강서경찰서에서 초동수사를 개시할 때, 유족이 진술을 거부해 피해자 조사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수사가 길어지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부정경마를 지시했는지 여부에 대한 수사가 길어지다 보니 책임자 처벌이나 진상 규명, 유족 보상이 지연되고 있다. 안타깝다.”

_지난해 12월 11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기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58.6%의 기수들이 부당한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경찰 수사와 별개로, 마사회 차원에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일단 관계법령과 규정에 따라 조교사, 기수 등 경마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만약에 갑질을 했다거나 부정경마를 지시한 행위가 드러난다면,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위법성 관련 자료를 즉시 경찰에 제공할 계획이다.”

_수사 결과 조교사의 부정경마 지시나 조교사 개업 심사의 불공정성이 밝혀진다면?

“당연히 엄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자체 징계는 물론이고, 형사고발 등 제반 조치를 엄정하게 취할 예정이다. 불법에 관용은 없다.”

_부정경마는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마사회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도 벌써 일곱 번째다.

“가슴 아프다. 개인적으로 공공운수노조의 설문조사 결과에 유의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정경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차제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심리적, 정신적 원인까지도 파악해서 제반 조치를 강구해 나갈 생각이다.”

_협의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제도개선 면에서는 상당한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

“경쟁구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자는 것,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 등에서 성과가 있었다. 상생과 협력에 대한 문제라서 경마 관계자들 간 이해와 조정을 통해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민주노총 측과 합의한 사항들은 2020년 경마제도 개선사항에 추가로 반영해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_이번 사태를 보는 국민적 우려가 크다.

“먼저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민주노총 측과 협의한 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제도개선이나 재발방지 측면에서 일정 정도 성과를 만들어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말과 기수는 국민과 함께 달려야 한다. 아직 협의 중이니만큼, 이번 사태를 해결하고 또 교훈으로 삼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협의에 임할 생각이다. 고 문중원 기사의 유지를 받드는 길은 경마 프로세스의 합리적 개선에 있다. 경마가 건강한 레저스포츠로 활성화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는 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고 교훈이라는 점을 마사회는 명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실천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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