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4·15 총선 앞두고 소상공인 '사탕발림' 유혹
간이과세대상은 축소 대상이지 확대 대상 아냐
무자료 탈세로 지하경제 키우고 자영업체의 매출 감소 불러

이호연 본보 선임기자
이호연 본보 선임기자

선거가 다가오긴 다가온 것 같다. 여야가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와 같이 공약을 남발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4·15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자영업 등 소상공인에 대한 간이과세 기준 확대 공약도 그 하나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자영업자의 세부담 등을 경감하기 위해 간이과세 기준금액의 대폭 상향하겠다고 한 데 이어 종로구에 출사표를 던진 이낙연 선대본부장도 20일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간이과세 기준금액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앞서 미래통합당은 지난달 20일 간이과세 기준금액을 연간 1억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코로나19사태에 힘겨워 하는 소상공인을 겨냥한 간이과세 기준의 상향조정 공약은 코앞 총선에서 표심을 사려는 대표적 포풀리즘이다. 선거철마다 내건 단골 메뉴의 하나로서 조세 투명성과 형평성 확보에 역행, 조세 체계의 근본을 흔드는 마약과 같은 공약이다.

간이과세범위를 확대하자는 정치권의 주장은 중소 상공인에게는 사탕발림의 달콤한 유혹이나 무자료 탈세로 지하경제를 키우고, 실질 저소득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을 어렵게 하면서 제대로 된 복지정책을 펼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간이과세제도의 현주소

간이과세제도란 연 매출액이 4800만원을 넘지 않는 사업자들에게 매출액의 0.5~3%에 해당하는 낮은 세율로 부가가치세를 납부하도록 허용한 제도이다.

간이과세자는 일반과세자와 달리 매출 거래 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아도 되고, 매입세금계산서를 교부받더라도 매입세액 공제를 받을 수 없다.

또한, 일반사업자처럼 매출액에서 매입액을 공제한 금액의 부가가치세 10%를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연 매출액이 2400만원에 미치지 못하면 납부면제자로 분류돼 아예 부가가치세 납부 의무도 없다.

‘2019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부가가치세 신고자 중 간이과세자는 약 156만명으로, 전체 부가가치세를 신고한 사업자 648만명 중 약 24%를 차지하고 있다.

간이과세자들은 일반과세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부가가치세를 납부하고, 부가가치세 신고나 납부 등과 관련된 납세협력비용 절감 혜택을 보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큰 탈세 우려한다

정치권은 현행 간이과세기준이 21년째 묶여 있다면서 적용대상의 확대를 외친다. 그러나 풀어서는 안되고 풀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간한 법률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간이과세 기준금액을 4,800만원 미만에서 1억원 미만으로 올릴 경우, 세수는 5년간 총 5조1,229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계했다. 연간 1조원 정도의 세수 감소효과에 불과하다.

모든 정책의 뒷면에는 부정적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간이과세범위 확대로 자칫 무자료 시장을 더 크게 만들어 놓쳐 버리는 세수가 훨씬 클 수도 있다.

소규모의 치킨집이나 김밥집을 창업해도 인테리어나 설비 등의 초기투자는 필수적이다. 간이과세자는 세금계산서를 받아도 매입세액 공제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무자료 거래를 원한다. 따라서 거래상대방인 인테리어 사업자는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로 인해, 국세청은 이들로부터 부가가치세는 물론 소득세나 법인세도 징수할 수 없다. 해마다 80만명 정도가 창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탈수 세액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오히려 놓치는 세수가 더 클 수 있다.

간이과세자들이 매출 한도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료발생을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흔히 현금거래로 유도해 가격을 깎아 주는 사례를 만나곤 하는데, 부가가치세 탈루를 통한 무자료 거래 규모의 확대는 세원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모자바꿔쓰기를 아시는가

오래전부터 간이과세자들은 관행적으로 ‘모자 바꿔쓰기’ 수법을 이용해 왔다. 간이과세자들이 국세청으로부터 일반과세자로의 전환 통보받으면 관할 세무서에 폐업신고를 하고, 부인이나 친척 명의로 사업자를 변경해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간이과세범위가 확대되면 이른바 ‘모자 바꿔 쓰기’ 수법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지 않아도 부풀려 있는 창업과 폐업자 통계를 더욱 왜곡시킬 우려가 높다.

재래시장,"더도 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자영업 등 소상공인에 대한 간이과세대상 확대는 눈먼 지하경제를 눈감아주는 현실성없는 공약으로 확대 시에는 자영업체의 매출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세청은 오래전부터 업종별 지역별로 신규사업자의 사업자등록 신청 시 간이과세자 신청 범위를 점점 축소시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런 노력을 통해 지하경제 규모가 상당 수준 줄어든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간이과세범위의 확대는 장기간에 걸친 국세청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간이과세자 매출 축소 후폭풍 우려

법인이나 개인사업자간의 회계처리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 법인카드나 사업용카드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직원 회식으로 교부받은 신용카드 전표상 합계금액의 110분의 10만큼을 회계프로그램이 자동적으로 부가가치세 매입세액 공제 처리하고 있다. 간이과세자로부터 제출받은 신용카드영수증이나 현금영수증에는 부가가치세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회계 처리는 세법을 어긴 것이다. 자칫 회계실무상 많은 혼란을 야기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법인카드나 사업용카드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이런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간이과세사업자가 운영하는 사업장 방문을 기피할 수도 있다. 결국, 간이과세자에게 약간의 세금 혜택을 주는 것보다 매출 감소로 인한 더 큰 피해를 안겨 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소득파악 부실로 복지형평성 왜곡 초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저소득층에 대한 현금성 복지예산은 상당히 늘어났다. 하지만, 복지예산 집행과 관련된 형평성 왜곡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실정이다. 주된 원인은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파악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근로장려세제가 시행되면서 저소득층 소득파악을 위한 인프라는 구축됐다. 일용근로자 등에 대한 소득파악에도 문제는 있지만, 영세자영업자 소득파악 문제는 심각하기 짝이 없다. 자영업자의 장부기장비율이 절반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영업자에 대한 근로장려금 지급 기준 소득을 추계로 산정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오래 전부터 자영업자 장부 기장비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결국 간이과세제도의 확대는 저소득층 소득파악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복지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형평성을 한층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 관련 정부 부처의 오랜 노력을 헛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탁상공론 간이과세확대 공약 '철회 마땅'

부가가치세는 최종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이지, 사업자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간이과세제도는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옳다. 국세청은 오래전부터 세제실과의 협력을 통해 간이과세자 기준을 엄격하게 관리해 간이과세자 수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정치권의 이런 무책임한 표풀리즘 공약은 세정당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고, 세법의 기본 원칙을 흔들어 투명 세정에 역행하는 것으로 철회돼야 마땅할 것이다.

간이과세자에 대한 부가가치세 신고 등의 납세협력비용 감축 등의 문제는 스크래핑 엔진 등의 IT 기술을 활용한 자동화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세제는 공정해야 하고, 세정은 투명해야 하며, 복지는 형평성을 유지해야 한다. 간이과세 범위 확대는 대충 넘어가자는 것인데, 세정에서 깜깜이 영역을 확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사람이 모이는 식당과 시장 등에 자영업체가 매출이 급격 하락, 벼랑길에 몰리고 있다. 궁지에 몰린 자영업체 등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전방위적인 지원대책의 마련이 긴요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탈루 소득이 뻔한 간이과세기준의 상향은 아니다. 국가경제의 초유의 비상상황에서 한시적 확대나 특단적 면제는 물론 검토해봐야 할 긴급 사안이다. 단 세무당국과 국민의 동의 속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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