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2018)」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식량은 공공재다

“결국 저는 농산품도 상품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상품이 아니라고 해도, 결과는 상품으로밖에 안 되게 되어 있고, 다른 상품과 현저히 다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그래서 상품으로서 경쟁력이 없다면 농사를 더 못 짓게 되는 것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상이 타결되던 2007년 4월 2일, 당시 국정의 최고 책임자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석유와 식량이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고 주장했다. 기름은 수입할 수밖에 없지만 식량은 자급률을 높일 수 있다. 유가가 크게 오르면 고통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식량이 바닥나면 다 굶어 죽는다. 어떻게 두 재화가 같다는 말인가?

나는 노무현이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지만, 그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식량은 상품이라기보다 공공재에 가깝다. 공공재란, 어떤 주체에 의해서 생산이 이루어지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 농민이 쌀을 생산하면 사실상 국민 전체가 그 쌀을 소비한다. 맛있고 저렴한 쌀이 생산되면 국민 전체가 그 혜택을 누린다.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문제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공공재의 특성은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이다. 소비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식량처럼 특별한 재화를 전적으로 상품시장에 맡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공급이 줄거나 가격이 오르면 경합성과 배제성이 매우 높아진다.

특히 가격이 폭등할 경우 소비에서 배제되어 굶는 사람이 속출한다. 그래서 식량은 매우 특별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애덤 스미스가 규정한 국가(왕)의 의무에 한 가지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정부)는 식량의 안정적 수급구조를 유지하고 관리할 책무가 있다.”

농업을 국유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산과 유통을 시장의 자율에 맡기되, 농업의 생산기반을 최대한 보호하여 경합성과 배제성이 높아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농수산품에도 송이버섯이나 캐비아(철갑상어 알) 같은 사치품이 있다. 그런 품목은 전적으로 시장에 맡기면 된다.

김준영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는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이미 농업과 식량 정책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특히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공산당 중앙의 ‘1호 문건’에는 농민, 농업, 농촌의 ‘삼농三農’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고, 2014년에는 ‘식량안전보장 시스템 확보’가 추가되었다.

이 문건은 “새로운 정세에서 중국은 식량안보 전략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자기 밥그릇은 자기 손으로 받들고 있어야 하는 것은 치국治國의 기본 개념이다”라고 식량안전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 자원환경과 식량 수급구조, 국제 무역환경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자급자족의 원칙하에 식량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적정 수준의 수입 및 관련 기술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식량의 증권화는 식량안전보장Food security에 매우 위협적인 요소다. 땟거리를 금융도박에 맡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재기와 투매의 가능성이 상존하게 된다. 둘 다 실물시장을 교란하거나 일거에 생산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농업의 생산기반은 한 번 무너지면 복구하기가 매우 힘들다. 한때 식량 수출국이었던 멕시코, 필리핀, 인도의 농업 현실이 그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국방이라는 공공재도 상품화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돈을 주고 외국인 용병을 고용하면 된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국방을 용병에게 맡겼다가 로마에게 모든 것을 잃었다.

로마 역시 게르만 용병에게 의존했다가 창끝을 돌린 게르만족에 멸망당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방을 비용으로 인식하면 병사의 급여를 어떻게든 깎을 생각만 하게 되듯이, 식량을 상품으로 인식하면 목숨을 걸고 돈놀이를 하게 된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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