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2018)」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초유의 코로나19사태로 전세계가 고통으로 시름에 겨워하고 있다. 불황기에  경제 불공정과 불균형이 가속화한 탐욕의 자본주의 발전사에서 볼 때, 전세계에  코로나19 확산은 대부분의 인류에게 이중 삼중의 재앙이다.

2014년 미국의 『타임』 지는 높은 연봉을 자랑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다섯 직종을 선정했다.

① 의사(평균 15만 달러)
② 투자은행 애널리스트(기본급 7만 5,000달러, 고액의 보너스)
③ 영업 매니저(평균 12만 5,000달러)
④ 치과의사(평균 20만 달러)
⑤ 변호사(로펌 1년차 16만 달러)

이 직종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강도 높은 노동과 지속적인 성과 압박에 시달린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많고, 다른 전문직 종사자보다 자살률이 훨씬 높다.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도, 친구와 만날 시간도 부족하다. 한 의사는 “병원이 벌이는 돈의 전쟁에서 졸개가 된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고액 연봉을 받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불행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를 얻기 위해 혹은 성공하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기 때문이다. 부의 확장을 삶의 목표로 삼은 사람은 숫자로 가치를 측정하기 어려운 것들을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젊음, 건강, 휴식, 사랑, 우정 같은 기회비용은 한 번 지불하고 나면 나중에 되찾기가 어렵다.

남녀노소 모두가 사랑한 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은 은퇴 후 유니세프UNICEF 대사로 활동했다. 그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12개 나라를 방문하여 가뭄과 내전으로 고통받는 아이들과 아픔을 나누었다.

“죄 없는 어린이가 지옥과 다름없는 곳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편히 호텔에 앉아 페트병에 든 물을 마실 수 있겠어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이건 저의 희생이 아니라, 제가 편해질 수 있도록 어린이가 제게 준 선물입니다.”

오드리 헵번의 삶은 우리에게 부와 행복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직접 보여주었다. 잘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더 많은 부’가 아니라 ‘공감과 나눔’이었다.

“자유보다 평등을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 얻을 수 없다. 평등보다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 얻을 수 있다.” 이 말을 한 밀턴 프리드먼은 미국의 부동산거품이 절정이던 2006년 11월 16일에 죽었다. 그가 몇 해 더 살아서 2008년 금융위기를 목격했다면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자유가 힘을 얻었을 때, 그것은 폭력으로 바뀔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신자본주의라는 두 수레바퀴는 인류를 최악의 불평등사회로 이끌었다. 노동을 보상하지 않는 사회, 남의 노동 성과를 훔치고 뺏는 세상을 만들었다. 

부의 생산자가 갈수록 가난해지는 사회는 정의롭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미국뿐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노동자는 천덕꾸러기가된 지 오래다. 손아람 작가의  「망국望國선언문」은 이 나라 청년들의 깊은 좌절과 분노를 절절하게 전한다.

"언어로 달래는 처방전은 위약으로나마 효과를 다했습니다. 누워버린 말에게는 질책도 들지 않습니다. 청년들의 정신이 그 어느 시대보다 가난하므로, 사라진 것은 헝그리 정신이 아닙니다. 정작 사라진 것은 가난의 필요성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부유해지는 나라에서 더욱 가난하게 살기를 강요받는 국민이 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저 착각일까요?

이 나라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대기업 매출액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을 뿐 기업소득과 개인소득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OECD 최하위권에 머뭅니다. 오로지 기업만이 암세포처럼 무한히 자라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만 달러를 돌파하고, 세계 100대 기업 명단이 모두 대한민국으로 채워진들, 우리 각각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도 살 수 없는 높다란 탑을 쌓아올린 뒤 먼발치에서 그 웅장한 풍채를 감상하는 게 이 나라 경제의 목표였습니까?"

국가의 부가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려면 성장 지향의 경제에서 나눔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학 또한 ‘사람의 경제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