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연 스트레이트뉴스 선임기자
이호연 스트레이트뉴스 선임기자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6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경영권 대물림과 무노조 경영의 포기가 골자다. 도대체 감흥이 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이 착각 속에 메신저를 읽은 데다 메시지 내용 마저도 부실한 데 따른다. 삼성에 애정과 관심을 가진 주변의 모든 이들은 기자회견 내용을 여러 차례 곱씹어 읽어봐도 뭔가 이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자신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최순실 뇌물 사건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 발생한 천문학적 규모의 회계부정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의 반성이나 사과 발언은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에 연루돼 애매하게 구속된 임직원에 대한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었고, 불법 승계로 피해를 입은 이해 당사자들에 대한 미안함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포함된 주장들이 타당한지 짚어보기로 하자. 

4세 경영권 승계 운운, 사리에 맞지 않아

삼성은 대한민국에 국적을 둔 법인이고,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다. 따라서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은 대한민국 법을 준수해야 한다. 아무리 억울한 생각이 들더라도 법은 준수해야 마땅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기지회견에서 자녀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얘기를 할 때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다"며 "제 자신이 제대로 평가받기도 전에 제 이후의 승계를 언급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설명할 때에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이 때 말을 잇지 못한 뒤에 잠시 숨을 크게 들이셨다고 한다. 

경영권이란 단어는 우리 현행법에 존재하지 않는다. 상법에 따르면,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되고, 대표이사는 이사회에서 선임된다. 통상적으로 경영권이란 이사회 결의사항을 대표이사를 통해 행사되는 권리를 의미한다. 과반수 이상의 비상장 법인 주식을 보유한 자가 주주총회에서 자신을 이사로 임명하고, 본인이 이사회 구성원의 자격으로 스스로를 대표이사에 임명했다면 회사의 경영과 관련해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주요 삼성계열사의 과반수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극소수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억지로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어 그룹사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소액주주를 포함한 여타 주주들은 정당한 권리가 행사될 수 없는 구조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우리가 체육관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 원칙과 괴리된 방식으로 대통령을 뽑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스스로가 삼성그룹사 전체에 경영권을 행사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사고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론적으로나 법적으로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세간의 눈을 찌푸리게 만든 형제간의 반목질시나 수 조원에 달하는 차명계좌를 통한 탈세사건은 아직도 마침표가 찍히질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아직 합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벌써 몇 년째 의식도 없이 병상에 누워있는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증여를 받은 것도 아니고, 상속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전환사채(CB)를 통한 재산 뻥튀기 사건, 이건희 회장의 천문학적 규모의 차명 주식을 통한 상속세 포탈 사건, 회계부정을 통한 부당한 합병 사건 등에 대해 용서를 하지 않았다. 본인의 경영권도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마당에 자식에 대한 경영권 승계 운운하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몇 십 년 후에 발생할 일을 대국민 사과의 소재로 들먹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실현이 가능한 일도 아니다. 

'무노조 포기', 상식 이하 발언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여러 차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삼성에 노조는 없다는 주장을 했다.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다. 북한의 3대에 걸친 핵무장 유훈통치와 다를 것이 없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기업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현행법을 준수하겠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이 대국민 사과문에 담겨야 할 내용은 아닐 것이다. 이러니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도 어쩐지 어색하게 들린다. 

기업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고, 소속 임직원도 총수 개인의 노예가 아니다. 아무리 그룹총수의 경영능력이 출중하더라도 소속 임직원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소비자인 국민의 성원은 오늘날 삼성의 절대적인 응원자다. 이들이 활동의 동반자라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직원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강제로 막을 권한을 가질 수 없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6일 경영권 대물림과  무노조 등의 포기를 선언한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6일 경영권 대물림과 무노조 등의 포기를 선언한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기업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삼성은 이미 오래 전에 글로벌 기업으로 등극했다. 글로벌 기업은 좋은 실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걸맞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도 갖추어야 한다. 자칫 한순간의 부도덕한 행동으로 끊임없는 나락으로 추락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만약 선진국에서 이런 사건들이 발생했다면, 과연 계속기업으로서 존속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우리가 과거 군사정권 시절로 돌아가 살 수 없는 것처럼 기업 경영도 개발독재 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과거의 정경유착을 통한 부정, 위법, 그리고, 탈세가 용납되는 세상이 아니다. 국민들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 눈에 LPGA 골프 우승이나, BTS의 글로벌 열풍,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등이 더 이상 어색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들의 의식 수준은 이미 선진국 청년들의 눈높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졌을 당시 이재용 부회장의 책임감은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선대 회장을 모시던 가신그룹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선친으로부터 경영 훈련을 받은 대로 실천을 했기 때문에 억울한 마음도 들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어야 했다. 선대 회장을 모시던 가신그룹의 시대착오적 권고를 과감하게 뿌리쳤어야 옳았을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바람직한 처신은?

기업 임직원들의 첫 번째 책무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지, 절대 기업 총수 개인의 부 극대화가 될 수 없다. 과거 제일모직은 관리의 사관학교라는 칭송을 받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총수 개인의 부 극대화를 위한 일사분란한 관리 조직체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이 하면, 모든 기업이 따랐다. 삼성의 임직원들은 퇴직을 해도 다른 기업들의 스카우트 최우선 순위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옳은 것은 아니었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총수 개인의 부 극대화를 위한 선단식 재벌체제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삼성의 조직 체계와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선단식 재벌 체제가 존재하고 있다. 이런 사유로 우리의 공정거래법은 재벌규제를 위한 불필요한 법 조항들로 누더기가 돼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모두 갖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복잡한 지분구조를 단순화시켜야 할 것이다. 자식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주장이 신뢰를 얻으려면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오로지 삼성만을 위해 존재하는 금산분리 예외 규정 등은 사라져야 한다. 더 이상 삼성 장학생들의 입과 손을 빌어 억측을 합법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진국 어느 나라에도 재벌 총수의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사례는 없다. 이재용 부회장이 솔선수범을 보인다면 우리 역사에 훌륭한 인물로 대대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어차피 멀지 않은 장래에 맞아야 할 매이고, 정상적인 상속을 하면서 경영권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면, 자식에게 무거운 짐을 남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보다 훨씬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어 모든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이 되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이재용 부회장은 병상에 누워있는 이건희 회장 재산의 사회환원 약속도 지켜져야 할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재산과 부채는 함께 상속받도록 규정돼 있다. 부친의 재산 사회환원 약속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빚이기 때문에 본인이 갚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최초의 그룹 총수로 기억되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진행 중인 소송사건에 성실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만의 하나 실형선고를 받더라도 억울하다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소 실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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