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산림청 제공
숲. 산림청 제공

‘숲의 품에 안겨라"

힐링의 그루인 이시형 박사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최적의 공간으로 '숲'만한 곳이 이 세상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 박사는 “산의 품에 안기면 마음이 절로 편안, 힐링이 절로 된다'며 숲 예찬론을 펼친다. 멍때려도, 굼벵이처럼 느려도, 소소한 삶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숲의 여행은 치유이며 힐링이다.

스웨덴의 작은 통나무집에서 이웃들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며 일상의 소중함을 일구는 숲 여행. 숲 나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 하나하나에 생활이 단조로우나 여유를 가득 담은 숲속. 새와 벌레, 바람, 물의 소리가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로 잠이 절로 오는 숲. 어디 청각뿐이겠는가? 빛과 내음, 맛, 온몸으로 스치는 오감만족에서 느림보가 머무는 숲은 우리가 가장 펴한 잠과 같다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있다. ‘숲과 잠’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이 말을 조금 현실적으로 바꾸어보자면 주저라는 말이 더 어울릴듯하다. 주저의 순간,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에 고심하고, 또 이치를 따져보느라 머뭇거리는 일. 우리의 선택은 대게 굳은 결심이 아닌 망설이다 끝내 수긍하고야 마는 타협에 가깝지 않나. 그것이 우리가 일상이라는 현재에 매여 쉬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일까. 때문에, 일상이 그저 그런 반복적이고 지루하기만 한 도처에 깔린 흔한 시간처럼 여겨지는 걸까.

삶의 무게를 더는 숲 

'숲과 잠‘은 우리가 그토록 몸서리치던 일상에 가려진 느리고 충만한 날들을 넌지시 보여준다. 피로해져 무뎌진 후각처럼, 이제껏 잊고 있던 하루하루의 시간의 결을 감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일까. 책의 낱장을 넘길 때마다 여행길에 오르고 싶은 미음이 든다. 이야기는 한 여름, 스웨덴의 어느 한 호숫가에 위치한 오두막집에서 시작된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한없이 단조롭기만 한 숲속에서 저자는 고요히 시간을 보낸다.

최상희 '숲과 잠'
최상희 '숲과 잠'

아는 사람도 없다.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 몇 권의 책을 넣은 작은 가방이 전부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이처럼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마음가짐으로 가볍게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삶의 무게를 조금 더는 일이다. 동네 한 바퀴를 느릿느릿 걸으며 마주치는 풍경들을 눈에 담고, 하루 분의 장을 보고,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한다. 한껏 헝클어진 시간을 보낸다.

저자는 타지에서 이국인으로 살며 여러 모습으로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평범한 행인으로, 아니면 자꾸 같은 골목을 헤매는 길치, 자꾸 같은 골목에 가는데도 웃는 이상한 여자, 식당에서 매일같이 1인분의 음식을 주문하는 손님 등으로 기억된다. 의외로 모든 역할을 대신하는 말인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의외로, 사림들은 낯선 이방인에게 상냥하다. 저자는 종종  타지의 사람들이 건네는 사소한 친절과 마주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맡을 반복하는 안내소 직원이 더없이 상당하고 싹싹한 말투로 그녀에게 길을 일러주는가 하면 청어튀김을 즐기는 그녀를 훼방꾼으로부터 구해내는 가게주인, 못난 복숭아들 사이에서 제일 예쁜 것을 골라 건네는 옆집 아웃. 그야말로, 어떠한 대가도 의심도 없는 친절이다. 관심이나 배려도 전부 평가이고 지적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이토록 의심도 연유도 없이 불쑥 내미는 친절 앞에서 괜스레 마음이 허물어진다.

게으름 속 여유

잠을 자고 싶을 때, 마음껏 잘 수 있다는 것. 먹고 싶을 때 먹고 걷고 심을 때 걷는 것, 이처럼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겨우 제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되는 듯하다. 여행이 삶에 꼭 필요한 이유다. 저자는 스웨덴에 잠시 머물며 한껏 게으른 나날을 보낸다.

낮과 밤에 상관없이, 때로는 밤에 혼자 깨어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가 하면, 시간과 시간 사이를 유목민처럼 떠돌다 늦은 잠을 자기도 한다. 하루하루의 시간은 되는 대로, 그러나 성실하게 흐른다. 서두를 것도, 조바심 낼 것도 없다. 평소 일상에서 겪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게 정해진 계획에 따라, 여러 상황과 이해관계에 맞물려 살아온 일상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함으로써 그가 무뎌졌던 일상을, 얽히고설켜 복잡해진 시간은 다시금 돌이켜 보게 된다. 1분 1초가 귀중해지는 요즘, 시민은 곧 노동이라는 단위로 환산되고, 근면이라는 성실함으로 시간의 가치기 엄정하게 판단되는 시대에, 우리는 게으름을 통해 시간의 효용성에 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이런저런 걱정이나 두려움으로 뒤척이는 일 없이 순식간에 잠이 드는, 그런 시간들, 흔히 무용하다고 여기는 시간들로부터 저자는 삶의 활력을 얻고 소소한 위로를 전해 받는다. 우리는 종종 거창한 삶의 목적론으로부터 일을 침해받는다. 하지만, 전혀 그럴 필요 없다. 우리가 원하는 삶은 대게 우리가 살고 싶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니까. 그러니, 게으름이라는 낭만을 즐기자, 숲에 머물고, 늦잠을 청하는 그녀처럼.

알지 못하는 곳, 아낌없는 나날

가위로 잘라낸 듯 정교하게 짜인 시간이 아닌 조금 동떨어져 자신의 속도로 사는 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살며 매일 매일이 기념일인 듯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일. 저자는 그 순간, 이제껏 바라왔던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먼 옛날 언젠가와 먼 훗날 언젠가의 꿈을 함께 살아보는 순간, 그것이 바로 여행이라고. 이러한 여행 속 마주친 흔하고도 예쁜 일상들이 「숨과 잠」에 다소곳이 담겨 있다.

꼭 먼 이국이 아니더라도 좋다. 근처 숲에 들러 하루 분의 휴식을 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처럼 한가로이 읽을 책 한 권을 들고 숲에서 읽거나 좀 졸기도, 또 숲의 상냥한 말들을 주워듣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보자. 그렇게 눈가를 퍼렇게 물들이는 숲에서 느리고 충만한 하루를 삶으로서, 살아갈 힘을 다시 회복해보자. (산림청, 매거진숲에서)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