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시의 적시공시 책임 인정한 기념비적 사례로 '주목'
투자자와 경영진간 정보 불균형 문제 해소의 첫걸음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사진=연합뉴스)

[스트레이트뉴스=이제항 선임기자] 법원이 지연 공시로 발생한 투자자의 손해를 한미약품 측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기업의 공시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인정한 사상 첫 판례라 향후 자본시장에 끼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판사 임기환)는 19일 원고 김00를 포함해 투자자 126명이 한미약품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형식상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126명의 소액주주가 청구한 총 청구금액 13억 8700만 원 중 99%에 해당하는 13억 7200만원에 대한 배상책임이 인정돼 법원이 사실상 소액주주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평이 나온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기업공시 제도의 의미와 목적을 명확히 한 사례라 법조계와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허위공시에 대한 책임을 묻는 판결은 있었으나 그 적용범위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번 판결은 기업 공시제도의 의미를 명확히 설시하면서, 지연공시를 이유로 기업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운 최초의 기념비적인 사례라는 평이다.

특히, 투자자와 주식회사 경영진 간 정보 불균형, 이른바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할 수단으로 상장기업에게 신속하고 투명한 공시의무를 부여한 셈이다.

해당 소송에서 투자자 측의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창천의 윤제선 대표 변호사는“상장기업의 공시가 기업의 자의가 아니라 공익과 투자자의 이익에 맞게 엄격하게 결정돼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기념비 적인 판결”이라면서 “주주자본주의와 공정한 시장질서 형성에 이정표가 될 만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미약품측의 고의 또는 과실로 미공개정보가 유출돼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부당이득으로 취득한 자들이 존재한다”면서 “금번 판결로 증권시장을 신뢰했다가 큰 손해를 입은 다수의 투자자들이 금전적으로라도 배상을 받게 됐다” 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이번 판결이 관련 사안을 다루고 있는 다른 소송에 끼칠 영향에도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투자자들이 한미약품을 대상으로 제기한 유사한 내용의 소송 2건이 현재 진행중이며, 각 2건의 소송은 각각 원고 202명이 청구금액 24억여원과 원고 45명, 청구금액 5억여원에 달하며, 두 건의 소송 모두 법무법인 창천이 투자자측의 변론을 맡고 있다.

해당 사안은 2016년 9월 29일 한미약품이 글로벌 빅 파마에 1조원대 기술수출을 달성했다고 공시한 이후, 바로 이튿날인 30일 오전 9시 30분 또다른 기술수출 계약 해지 사실을 공시한 사건이다. 29일 호재성 공시로 5%이상 올랐던 주가가 30일 계약해지 악재 공시 이후 18% 이상 급락하며 수많은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재판부에 따르면 한미약품 측은 이미 29일 계약해지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30일에 이르러서야 계약해지 사실을 뒤늦게 공시했다. 해당 건으로 큰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이후 30일 개장 전에 악재 공시를 했어야 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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