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이재용 2.5년에 법정구속 '부패 종식 기대'

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스트레이트뉴스 이호연 선임기자] 사법부가 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법정구속했다. 사법부의 판결은 헌법과 법률에 따르지 않는 최고 권력인 대통령과 최고의 재력인 삼성 총수 간의 정경유착 흑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큰 의미를 지닌다.

사실 우리는 헌법과 법률을 심각하게 위반한 범죄행위에 대해 왕왕 지나치거나 무심하게 지나친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부정과 부패의 만연 속에 지나쳐버린 불감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1980년 초 전두환 군부세력은 밀실에서 제5공화국 출범을 획책했다. 이 무렵 미국의 상하 양원은 한국의 비상상황에 관한 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 의원이 주한 미군 사령관 존 위컴 대장을 상대로, “전두환 소장이 지도자가 될 경우, 한국 국민이 과연 그를 인정하고 따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위컴 대장은,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레밍의 근성’을 갖고 있어, 누가 지도자가 되던지 권력을 잡은 사람을 따르게 돼 있다”고 답변했다.

권력 기생층의 들쥐 근성

한국인의 국민성은 상대가 누구이든, 권력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굴종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어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었다. 청문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그의 한국인에 대한 치욕적인 조롱은 당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적중하는 듯했다. 그러나 민주화를 끊임없이 추구한 우리 국민만은 위컴의 발언이 역사적 무지와 오만, 편견의 소산이었음을 전세계에게 알렸다.

레밍(lemming)은 ‘나그네 쥐’라고도 불리는데, 북극지방에 서식하는 작은 ‘들쥐’로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을 갖고 있다. 힘센 놈이 맨 앞장을 서면, 그 뒤를 따라 수천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광활한 들판을 몰려다닌다고 한다. 그런데, 레밍 떼는 지도자를 따라 직선으로만 이동하다가 절벽에 다다르면 한꺼번에 바다로 뛰어내려 집단자살을 한다고 한다.

사실 2016년과 2017년 한겨울에 연인원 1700만 명이 촛불시위로서 박근혜 정권의 부도덕하고 무능함에 철퇴를 가한 촛불혁명은 그가 목도했던 5·18 항쟁과 그 20년 전 4·19 혁명의 연장선이었음을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인지할 수도 없었거니와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컴이 말한 ‘들쥐 근성’이 한국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것일까?

현 정치 상황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권력층과 기득권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호가호위하는 자들에게서 들쥐 근성이 작동되고 있는 징후가 역력하다. 300명 국회의원 개개인은 독립된 헌법상 기관일진데, 리더가 정한 당론을 따라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기가 찰 정도다. 아닌 줄 알면서도, 현란하게 세 치 혀를 놀려 그럴듯하게 둘러대는 말솜씨도 가관이다.

재벌 총수 앞 절대 복종 ‘들쥐 근성’ 

재벌기업 회장 직속으로 설치된 비서실, 기획조정실, 종합조정실, 구조조정본부 또는 미래전략실 등 조직의 주된 목표는 재벌 총수 개인의 부축척 극대화이지,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 활동하는 조직이 아니다. 재벌 총수를 위한 가신 집단이다.

특정 개인을 위해 활동하는 가신그룹이라면 봉급은 당연히 재벌총수로부터 받아야 한다. 가신그룹에 지급되는 봉급, 활동비, 그리고, 복리후생비 등은 법인세법상 손비처리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세청은 해당 기업에 법인세를 추징해야 하고, 해당 비용만큼은 재벌 총수에게 상여처분을 해 가산세와 가산금을 포함해 소득세를 추징해야 한다. 하지만, 국세청이 이러한 과세를 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현실적으로 세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불가피한 경영상의 이유’ 또는 ‘글로벌 경쟁에서의 우위 확보’라는 명분과는 거리가 멀다. 재벌 기업 간 나타나는 대다수의 기업분할이나 합병거래는 상당 부분 조세회피 또는 경영권 대물림과 맞물려 있고, 궁극적으로는 총수 개인의 이익과 관련돼 있다. 이런 작업은 재벌총수의 지휘하에 가신그룹이 수행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뇌물공여 등 혐의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마필 '라우싱' 몰수를 명령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이 부회장은 이날 영장이 발부돼 법정에서 구속됐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뇌물공여 등 혐의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마필 '라우싱' 몰수를 명령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이 부회장은 이날 영장이 발부돼 법정에서 구속됐다 (연합뉴스)

재벌소속 기업들의 이사진은 기업가치 극대화가 아닌 재벌총수 부의 극대화를 위한 조직변경 등의 거래에 관한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상법 정신에 반영된 주주 민주주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행위를 했다면 명백하게 배임이라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런 부조리 현상에 무감각해져 있고, 사법기관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우리 모두 ‘들쥐 근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재벌소속 기업의 사장이나 이사진 또는 감사가 총수 사익과 관련된 거래에 대해 반대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까? 항간에는 재벌기업 사장단 회의 자리에서 재떨이나 날아다니고 험악한 육두문자 욕설이 난무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법과 원칙이 제대로 작동될 리 없다. 아무리 유능한 경영자일지라도 총수 개인의 이익과 상충되는 의사결정이나 행동을 하는 순간 사표를 써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결국, 능력보다는 총수 개인에 대한 충성심이 인사고과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경영인들이 힘을 합해 그릇된 점을 바로잡으려 들지 않고, 관행이라는 핑계로 부조리와 적당히 타협하는 것도 ‘들쥐 근성’의 다름이 아닐 것이다.

회계 투명성 최하위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발표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회계 투명성 순위는 63개국 중 62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부적절한 회계 처리와 부실한 회계감사가 맞물려 기업의 재무제표가 경영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국제적 평가이다.

일각에서는 감사인들의 독립성 부족과 기업들의 낮은 관심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부회계관리제도를 포함한 내부통제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내부통제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기업의 재산 보호(Safe-guarding of Asset)이다. 재벌 총수 개인의 부 극대화를 위해 기업가치가 훼손되었다면 분명히 재무제표는 왜곡 표현된 것이다. 그 이유는 기업의 내부통제가 부실하게 작동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이면에는 오너리스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9년 사업연도부터 자산총액에 따라 단계적으로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재벌 소속 기업 회계감사 보고서에 내부회계관리제도와 관련해 비적정 의견이 표명된 회계감사보고서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회계감사 제도와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비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재벌총수 일가의 제왕적 경영행태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 증권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은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의 흑역사의 종식을 외친 2016년 12월 광화문 촛불집회. (스트레이트뉴스 DB)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의 흑역사의 종식을 외친 2016년 12월 광화문 촛불집회. (스트레이트뉴스 DB)

황금만능주의와 맞물린 ‘들쥐 근성’

2019년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TI)는 우리나라가 국가 청렴도 조사 결과 59점을 받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에서는 27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평가대상 국가 중 공동 1위는 덴마크와 뉴질랜드(87점)가 차지했고, 이어 핀란드(86점), 싱가포르·스웨덴·스위스(85점)가 뒤를 이었다. 같은 유교권 아시아 국가인 싱가포르(85점), 홍콩(76점), 일본(73점)과 비교해도 우리나라는 한참 뒤 쳐진다.

2013년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가 서울·경기 지역의 초·중·고교 학생 6천명을 대상으로 윤리의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44%가 ‘10억 원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가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생 28%, 초등학생 12%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섬뜩해 소름이 돋는다. 고학년이 될수록 윤리의식은 점점 더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니, 성인들의 의식 수준은 얼마나 심각할지 궁금하다.

재벌 총수 일가에 만연해 있는 불법적 경영권 승계, 탈세, 마약, 폭력 등의 위법 사건 뉴스는 일상화돼 있다. 일각에서는 어려서부터 황제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언제나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있어, 이들은 ‘유전무죄’가 만고불변의 진리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재범 가능성이 농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이 최순실에 대한 말 로비 사건 사례를 보면, 대장 들쥐까지도 돈을 주면 국가 원수의 통치행위까지도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삼성 총수 일가가 4조 5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해 상속세를 포탈했다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었지만, 벌써 우리는 까맣게 잊고 살고 있다. 우리가 부정부패와 부조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그 이면에 잠재된 황금만능주의와 ‘들쥐 근성’을 용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18일 사법부가 재벌총수에게 내린 판결은 정치권력과 재벌금력에 횡행하는 들쥐 근성에 경종을 울리고 철퇴를 내리는 쾌거다. 민주화 염원이 깃든 촛불혁명이 있었기에 이끌어낼 수 있었다.

삼성 X파일 규명에 앞장선 노회찬은 ‘법 앞에 만인만이 평등한 세상’이라고 질타, 촛불혁명에도 앞장섰으나 이후 이승을 하직했다. 제왕적 대통령과 입법부, 재벌, 검찰 간의 공고한 유착의 근절을 외친 그가 하늘에서 이번 사법부의 판결에 본인의 말을 바꾸게 될지, 새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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