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그룹, 논란 속 합병 비율 변경에도 ‘불씨’ 여전
소액주주 등 거센 비판에 합병비율 재산정 오너일가, 합병 지주사 영향력 축소되기도 "연결재무제표상 순자산가치 반영해야"…반발
동원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면서 지주회사 동원엔터프라이즈와 중간지주사 격 계열사 동원산업의 합병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와 투자업계·정치권 등이 양사 간 합병비율이 오너 일가에만 유리하게 산정됐다고 반발했다. 예상치 못한 큰 반발에 동원그룹은 합병비율을 재산정하며 물러난 모양새다.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동원그룹 산하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는 지난 18일 이사회를 각각 열고 양사의 합병 비율을 기존의 1: 3.8385530에서 1: 2.7023475로 변경했다. 양사 이사회는 동원산업의 합병가액을 기준시가가 아닌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해서 종전 24만 8961원에서 38만 2140원으로 53.5%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앞서 동원그룹은 지난 4월에 상장사인 동원산업과 비상장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을 추진하기 위한 ‘우회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한국거래소에 제출했다. 합병이 이뤄지면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가 동원산업에 흡수되고 동원산업이 동원그룹의 사업지주회사가 된다.
여기에 소액주주와 자산운용사, 시민단체 등이 크게 반발했다. 동원산업과 동원엔터의 합병의 비율 산정이 최대주주인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에게만 유리하고 나머지 이해관계자들에게는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과 블래쉬 자산운용·타이거자산운용·이언투자자문 등은 지난달 21일 한국언론진흥재단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사의 합병에서)문제가 되는 건 합병비율 산정방식”이라며 “동원시스템즈는 고평가되고 동원산업은 저평가된 시점에 이번 합병이 결정됐다. 회사측은 시가기준으로 합병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합병비율 선정은 (대주주가 아닌) 동원산업의 주주에게 매우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병비율은 동원산업 및 일반주주들의 가치를 침탈하고 대주주의 지분율을 늘리는 결정으로 명백히 불공정하게 이뤄졌다”면서 “동원산업의 이사회는 주가가 저평가되고 상대 회사의 주가는 고평가된 현재 시점에 합병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만약 합병하더라도 적어도 시가보다 높은 순자산가치를 사용해 합병가액을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오너 지분율은 99.56%에 달한다. 김남정 부회장이 68.27%, 김재철 회장이 24.5% 등 오너 일가가 소유하고 있다.
이에 소액주주 등은 합병비율에서 동원엔터프라이즈 가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동원시스템즈 지분 가치가 평가 기준일 주가순자산비율(PBR) 2.6배, 5년 평균 지배 손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 34.2배로 산정됐는데 이는 동원산업(PBR 0.6배와 PER 6.7배)보다 현저하게 높게 평가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원산업과 동원엔터의 합병 비율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IB업계에서는 합병비율이 다시 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소액주주와 자산 운용사 등도 합병비율이 다시 산정되지 않는다면 법적 소송 등 대응에 나설 것을 예고한 상황이었다.
결국 동원그룹은 한발 물러섰다. 양사의 합병 비율을 재조정해 기준시가가 아닌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상향 조정했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기업이 합병을 추진하면서 소액주주들의 요구를 반영해 합병 비율을 변경한 사례는 거의 드문 경우”라며 “(합병비율 변경)이는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결정됐다”고 말했다.
또 “이번 합병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경영효율성을 증대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적법성을 넘어 적정성까지 고려해 합병 비율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동원그룹은 합병비율 조정으로 동원산업과 동원엔터의 합병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양사가 가진 장점이 시너지를 발휘해 앞으로 성장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 동원산업의 자회사이자 미국 참치캔 브랜드 1위 업체인 스타키스트, 물류업체 동원로엑스 등 손자회사였던 계열사들은 자회사로 지위가 바뀌면서 신속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합병 비율 재산정으로 최대주주인 김남정 부회장은 합병회사의 지분율이 기존 약 48.4%에서 약 5.28%p 떨어진 43.15%가 됐다.
동원그룹은 합병에 앞서 논란이 있었으나 소액주주에 한발 양보하면서라도 지배구조 단순화를 적극 추진 중이다. 동원그룹의 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가 동원산업을 비롯해 동원F&B 등의 자회사를 지배하고 중간 지배회사인 동원산업이 스타키스트, 동원로엑스 등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에 동원산업과 동원엔터의 합병으로 주력 사업인 원양어업 외에 축산업, 2차전지 등을 더욱 육성할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동원산업과 동원엔터 합병은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변호사)은 “동원그룹이 순자산가치로 합병비율을 조정한 것에 대해선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연결재무제표가 아니라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순자산가치를 책정한 점,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을 합병가액에 연계하지 않은 점 등은 아쉽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동원산업 방지법'으로 불리는 합병비율 산정과 관련된 개정안까지 발의됐고 소액주주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또 합병비율의 또다른 쟁점사항인 스타키스트의 가치가 얼마만큼 반영되느냐도 문제로 남았다.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