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도심복합사업, 노후지역 정비 판도 바꿀 수 있을까?

민간도심복합사업, 기존 조합 단독 시행 방식 단점 보완 전문가 "'토지주 동의' 관건…공공의 역할 필요할 것" 1기 신도시 정비사업 마스터플랜은 오는 2024년 수립

2022-08-23     함영원 기자
서울 시내의 주택 밀집 지역 모습.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국민 주거안전 실현방안'(8·16 공급대책)의 하나로 '민간도심복합사업'을 제시했다. 기존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과 비슷하지만, 민간이 주도하는 것이 다르다. 관련 근거법도 발의되며 정비사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등에 따르면 도심복합 공급을 민간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심 복합개발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새롭게 발의됐다. '민간도심복합사업'의 근거법으로, 민간의 전문성·창의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특례를 적용하는 '도심복합개발혁신지구'를 지정해 민간 주도로 도심 내 문화·상업 등 성장거점을 조성하고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제정안에는 또 새로운 도심개발 사업모델의 ▲사업주체 ▲사업유형 ▲사업절차 ▲인센티브 ▲공공기여 등 세부 내용도 포함됐다. 이번 법안이 제정되면 도심복합개발사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전망이다.

지난 정부에서 도입된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은 전체 후보지 76곳 중 45곳이 동의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공공이 주도적으로 시행하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사업구역당 한국토지주택공사(LH) 담당 인력이 평균 0.7명 수준에 그치는 등 문제가 있었다. 또 서울 정비구역 지정도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였다.

갈수록 감소하는 서울 정비구역 지정 추이(왼쪽)와 동의요건 미충족이 많은 공공도심복합사업 추진현황 표./자료=국토교통부

윤석열 정부는 기존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은 공공시행자의 제한된 역량으로 인한 한계가 있다고 판단, 민간이 사업시행자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인 민간도심복합사업을 제시한 것이다. 아울러 민간도심복합사업과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을 합해 20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목표다.

민간도심복합사업은 토지주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는 경우 민간 전문기관(리츠·신탁)이 시행할 수 있으며, 조합을 설립하지 않고도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리츠는 특수목적법인(SPC)에 토지주, 디벨로퍼(개발사업자), 금융기관 등이 출자하는 방식으로 토지주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하고, 신탁은 토지주들이 신탁사에 토지를 신탁해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신탁사가 사업·시공을 모두 관리하는 형태다.

개발 유형은 입지에 따라 '성장거점형'과 '주거중심형'으로 나뉜다. 편리한 교통으로 상업·문화 거점이 될 수 있는 지역이나 낙후돼 혁신적인 개발이 필요한 곳은 첨단산업 중심의 성장거점형으로, 노후도 60% 이상의 역세권이나 준공업지 등은 주택공급 위주의 주거중심형으로 개발할 예정이며, 대상지역과 인센티브 등은 차등화된다.

성장거점형과 주거중심형 비교. /자료=국토교통부

사업 추진 시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사전검토를 통해 사업방향을 먼저 제시해 사업시행자가 신속하게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고, 각종 개별법에서 정하는 심의는 통합·심의해 행정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한다.

성장거점형 사업은 민간의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입지규제 최소구역 지정을 용적률·건폐율 등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는 방침이며, 주거중심형 사업도 도시·건축 규제를 공공수준으로 완화해 사업 참여 유인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완화된 규제에 따른 개발이익은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공공주택, 기반시설, 생활SOC 등 방식으로 기부채납하도록 하고, 개발 이익의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해 민간사업자의 이윤도 제한된다.

이 같은 민간도심복합사업은 정비사업의 가장 일반적인 시행방식인 조합 단독 시행의 주택정비사업을 개선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현행 조합 방식은 경험과 전문성이 낮은 토지주들이 조합을 구성해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구조다. 조합 단독 시행이 아닌 공기업이나 시공사, 등록사업자 등과 공동으로 시행하거나 신탁회사에게 사업 시행을 위탁할 수도 있으나, 시행이익 극대화를 원해 조합이 단독으로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사업추진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조합 집행부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조합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이 내려지기도 한다.

또 조합이 사업비를 지자체 또는 협력업체에 대여하거나 외상으로 진행 후 시공사 선정 후 정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 사업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기변동이나 소송 등 여러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 역량이 제한될 수 있다. 사업비를 대여해준 업체에 끌려다닐 수 있으며, 조합 임원과 업체와의 유착의 단초가 제공되기도 한다.

민간복합사업은 이러한 문제점을 상당 부분 보완해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디벨로퍼와 금융기관이 자본을 출자하고 이사회 멤버로 참여할 뿐 아니라, 사업시행 역량을 갖춘 전문기관(AMC)이 사업을 시행해 나가기에 전문성 부족과 사업비와 관련한 금융 리스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서다. 또 토지주 출자 비율을 50% 이상으로 설정했기에 토지주의 의사도 필연적으로 반영하는 구조고 용적률 최대 500%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부여돼 사업성도 극대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날(22일) '도심 복합개발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재 국민의힘 위원은 "(민간도심복합사업을 통해)과도한 규제로 인한 정형화된 개발방식에서 벗어나 도심이 좀 더 복합적이고 혁신적인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 이해도 낮은 토지주를 상대로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하는 난관이 있어 사업이 자리잡는 데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도심복합사업 방식이 기존의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구역 대상지(상업지역, 준공업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면 효율적인 의사결정이라는 장점을 살리면서도 큰 규모의 구역에서도 사업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익숙하지 않고 기존 조합방식에 비해 복잡한 구조화금융 수단이 적용되기에 토지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토지주의 동의를 끌어내는 동시에 토지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있어 공공(민간 보다 공신력과 안정성이 있는 정부·지자체 등)의 역할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복합사업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려면 조속히 여러 성공사례가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한편 정비사업 활성화로 기대를 모았던 1기 신도시와 관련해서는 윤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등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올해 하반기 연구용역을 거쳐 오는 2024년에 수립할 것이라고 발표해 공약 파기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해당 지역 집값도 하락세를 띠면서 많은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 3월 대통령 선거 직후 상승세를 탔던 1기 신도시 아파트값은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 발표를 기점으로 하락세로 전환됐다.

이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1기 신도시에는 이미 30만가구의 주택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재정비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 이주대책 등의 계획 수립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처음부터 '10만가구 공급'이 아니라, '10만가구 공급기반구축'이라고 공약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