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Y]삼성전자 없는 삼성생명, 삼성생명 없는 삼성전자

삼성전자 주식으로 이익내는 삼성생명…삼성생명 고객 돈으로 그룹 지배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지분 안판다는 삼성생명…상장 당시 원고 패소 이유는 ‘처분이익 배당 가능성’

2022-11-16     장석진 기자
2010년 2월 2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민사접수 창구에서 삼성생명 유배당 보험 계약자들과 소송대리인들이 상장을 준비중인 삼성생명이 상장전에 '유배당 계약자 이익배당금 10조원 지급하라'는 내용의 소송 소장을 접수하는 모습(제공=연합뉴스)

"유배당보험계약의 계약자배당금은 보험회사가 보험료를 산정함에 있어 예정기초율을 보수적으로 계산한 결과 실제와의 차이로 발생하는 잉여금을 정산·환원하는 것으로 이익잉여금을 재원으로 주주에 대해 이뤄지는 이익배당과는 구별된다"..."보험사가 자산재평가를 통해 그 평가이익을 원고들에게 배당할 의무를 진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원고들은 향후 장기투자자산이 처분돼 이익이 실현되면 계약자배당을 받을 수도 있어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 <삼성생명 상장 당시 2011년 삼성생명 유배당 보험가입자 배당금 청구소송 패소 재판부 판결문 中>

지난 2010년 2월 22일, 삼성생명 유배당보험 계약자 2802명이 모여 삼성생명을 상대로 미지급 배당금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습니다. 삼성생명이 수십년간 보험가입자들의 보험료를 굴려 수십조의 이익을 냈는데 이를 자산형성에 기여한 유배당보험 고객들과 나누지 않고 상장을 통해 주주들만 과실을 챙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소송 제기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1년 2월 18일 유배당보험 가입자 2802명은 원고 패소하게 됩니다.

그 이유로 당시 재판부가 설명한 논리가 기사 서두에 소개된 판결문입니다. 다만 눈여겨 볼 부분은 마지막입니다. “원고(유배당보험계약자)들은 향후 장기투자자산이 처분돼 이익이 실현되면 계약자배당을 받을 수도 있어 손해가 발생(확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부분입니다. 쉽게 말해 나중에 팔아서 이익이 생기면 그때 배당을 받을 수 있으니 지금(상장 전) 삼성생명이 고객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 다음에 팔아서 생기는 이익을 받으라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 삼성전자 지분 매각 의사가 없는 삼성생명

하지만 삼성생명은 최근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의사가 없음을 우회적으로 밝혀 판결 11년 뒤 지켜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은 감독 당국의 처분에 맡기겠다는 입장이었으나 돌연 자신감 있는 태도로 바뀌었습니다. 왜 일까요?

16일 금감원과 국회 등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지난 10일 한국회계기준원에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지 않을 것임을 전제로 현재의 RBC(지급여력비율)를 보완한 새 국제회계기준(IERS)17 체계에서 해당 지분을 자본으로 분류해도 되는지 질의했습니다.

보험사들은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굴려 사건사고 발생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대비합니다. 삼성생명이 고객 돈으로 사들인 자산이 부동산, 채권, 주식 등 다양하지만 그 중 삼성전자 지분 매입에도 상당부분 활용했습니다.

특히 그 중 적지않은 부분이 유배당상품 가입 고객의 보험료로 사들인 지분이라 보유중인 삼성전자 처분 여부는 수년째 공방을 벌여왔습니다.

삼성생명은 자사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단기 매도가능증권이 아닌 장기 보유증권으로 바꿔 회계상 자본으로 인식토록 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규모는 약 8.5%로 16일 종가(6만2700원)를 기준으로 약 32조원의 가치가 있고, 이중 유배당 가입자의 몫은 약 6조원 정도로 추산됩니다.

전술한 10년전 판결 당시 유배당보험 가입 고객들이 패소한 이유 중 하나가 언젠가 (삼성전자 주식을 포함한) 자산 매각이 있을 시 이를 배당받을 수 있으니 지금(상장 당시) 배당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과도 배치되는 결정을 삼성생명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 돈 가뭄에 시달리는 삼성생명…보유 부동산 세일앤리스백

삼성생명을 위시한 생보사들은 현재 극도의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돈이 부족해 자산운용의 효율성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건물을 매각해 리츠 형태로 내년 증시에 상장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지난 달 테헤란로 소재 삼성생명 대치타워와 중구 태평로 에스원 빌딩이 삼성에프엔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로 매각 후 임대차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른바 세일앤리스백(Sale&Lease Back) 입니다.

고객을 위한 준비금을 감독당국의 권고치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입니다. 내년에 달라지는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시 부동산 자산의 최대 25%를 준비금으로 쌓아야 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짐을 덜어 가뜩이나 빡빡한 자금사정에 숨통이 트이게 하자는 조치입니다.

삼성생명은 지난 11일 실적공시에서 올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 53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8%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적악화의 원인 두 가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지난해 1분기 보유중인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특별배당 약 6000억원 만큼이 사라진 역기저 효과입니다. 두 번째로는 증시 약세로 보유중인 주식 평가 가치가 떨어져 변액보증준비금 손실이 1621억원(세전)으로 늘어났다는 회사 측 설명입니다.

정리하면 삼성생명은 당장 삼성전자를 팔 마음도 없고, 삼성전자로부터 받는 이익도 적지 않지만 그 주식 가치가 또 떨어져 수익이 하락하는 이상한(?)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이 와중에 박용진,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이른바 ‘삼성생명법’의 국회 통과를 다시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미 3년전에도 함께 발의했던 그 법입니다.

골자는 보험사가 계열사 증권 보유한도 평가기준을 기존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현행 보험업법은 특정 보험사가 보유한 자회사의 발행 유가증권(채권 및 주식)의 합이 총자산의 3%를 넘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십년 전인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취득 당시 가치로는 1%에도 미치지 않지만, 주가가 급등한 현재 가치로 계산하면 보유중인 삼성전자 주식 수십조를 내다 팔아야 할 상황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를 다시 손봐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고객 돈으로 지배구조를 유지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회계부정·부당합병'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는 이재용 회장(제공=연합뉴스)

◆ 삼성생명이 자랑하는 최적의 투자 삼성전자, 영원할까?

삼성생명의 입장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우리는 법대로 할 뿐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라는 논리입니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지만, 법이 바뀌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소설에 불과합니다.

삼성생명은 말합니다. 삼성전자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으면 우리가 투자 자산으로 그 대안을 택하겠다고.

현재 시장엔 삼성생명법 통과로 삼성전자 물량이 쏟아지면 개미투자자들이 모두 손실을 볼거라는 이야기가 횡행합니다. 몇 년전 액면 분할을 통해 가격이 낮아진 삼성전자 주식을 개미들이 동학개미운동을 통해 500만 명이 넘게 주주로 올라선 것은 우연일까요?

너무 복잡한 이야기 같지만 중요한 건 보험업법이 바뀌고 나서의 일입니다. 이번에도 공염불에 그친다면 또 몇 년 뒤에나 다시 회자될 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삼성전자 없는 삼성생명, 삼성생명 없는 삼성전자는 쉽게 상상이 가질 않는 그림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영원할까요? 미중 무역분쟁 속에 승자로 떠오른 대만의 파운드리 강자 TSMC, 전장화 부품이 70%를 차지하는 전기차 시대에 전기차를 만들기 시작한 대만의 폭스콘, '라피더스'라는 이름으로 도요타, 소니 등 8개 기업이 뭉친 일본의 반도체 연합군, 과거의 영광 재현을 꿈꾸는 인텔.

이들의 거센 도전을 모두 이겨내고 삼성전자도 흥하고, 삼성생명도 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삼성생명이 투자할 대안이 없다는 논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