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돈맥경화]④보험사 “부동산 팔아 RBC 구하기”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번복 해프닝 내년 IFRS17 및 K-ICS 도입때까지 버티기

2022-11-25     장석진 기자

코로나19 발발로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한 각국 정부의 무제한 유동성 살포가 인플레이션을 불러와 이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으로 머니무브와 자산가치 급등락이 이어지고 있다. 돈이 넘치는 시대 ‘돈맥경화’를 겪고 있는 각 금융권별 현황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한국은행이 지난 24일 올해 마지막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연 3.0%에서 25bp 인상(베이비스텝)한 3.25%로 결정했다. 시장의 예상 범위였다고는 하나 금통위원 7명이 만장일치로 추가 인상을 결정, 6차례 연속 금리 인상한 충격은 일반 대출자에게도 부담이지만 조달시장에서 혈투를 벌이는 금융사들에게도 추가 압박이 되고 있다.

미국 현 기준금리(3.75~4.00%)가 내달 더 올라 양국간 금리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소폭 인상에 그친 이유 중 하나로 한은이 내세운 것이 자금시장에서의 돈맥경화다. 가뜩이나 채권시장에서 기업 자금 조달이 어려운데 추가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설명이다.

채권시장 분위기 냉각에 일조했다는 비난을 받은 흥국생명(제공=흥국생명)

◆ 급등한 채권금리 피하려다 공공의 적 된 흥국생명

지난 1일 흥국생명은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콜옵션) 행사를 연기하려다 시장에 충격을 준 ‘괴씸죄’로 평판만 나빠진 채 9일 다시 조기상환권 행사를 결정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보험사들이 즐겨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은 만기 30년의 상품이나 통상 업계에선 5년마다 콜옵션 행사를 통해 빚을 갚고 차환 발행에 나서기 때문에 5년 만기 상품처럼 여겨진다.

다만 최근 채권시장의 수급 미스매치로 채권금리가 급등, 차환 채권 발행 조건을 알아본 결과 3억달러 규모의 외화표시채권 발행 금리가 8%에 이른 상황을 알게 됐다. 흥국생명은 기존 금리 4.47%의 채권 미상환 패널티로 6%의 금리를 부담하는 것이 실리적이라는 판단을 하게 돼 상환 연기를 결정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난과 기업의 상황이 어려운게 아니냐는 의혹은 덤으로 안게 됐다.

우량 보험사인 흥국생명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배경에는 위험기준자기자본(RBC) 비율이 자리잡고 있다. RBC는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눈 수치로 보험사가 계약자의 보험금 요청 시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가를 나타낸다. 보험업법에선 보험사가 RBC를 100% 이상 유지토록 하고 있으나 통상 당국의 권고치가 150%라 보험사들은 그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흥국생명 RBC비율은 상반기 기준 157.8%를 기록했다. 안심할 수 없는 수치다.

신종자본증권은 후순위채권인 탓에 금리가 높은 반면 재무제표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돼 금융회사의 자본 적정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쓰인다. 저금리 시기 기업들이 자기자본 확충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이유다. 다만 지금처럼 고금리 상황이 이어질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 RBC비율은 왜 떨어졌나…구세주 IFRS17과 K-ICS

보험사들의 지급여력비율이 떨어진건 보험사들이 평소 고객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굴리기 위해 주식, 채권, 대체자산 등에 투자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자산의 가치가 오를 때야 문제가 되기 않지만 지금처럼 금리가 올라 보유 채권가격이 떨어지고 부동산 가치가 내려가고 주가가 무너지면 문제가 된다.

특히 많은 자산이 안정성을 이유로 채권에 투자되지만, 주식 대비 안전자산이라는 수식어는 금리변동기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RBC비율을 볼 때 자산은 시가로 평가되지만 부채는 취득 원가로 본다. 부채는 고정됐는데 자산 가격이 줄어드니 분자가 줄어 RBC 비율이 하락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다들 내년까지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며, “내년에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도입되면 보험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기 때문에 분자와 분모가 같이 움직여 지금 같은 비정상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LAT(책임준비금적정성평가) 잉여액이 있어도 지급여력 산정에 도움이 안되지만 IFRS17 상에서는 전액 보험사 순자산으로 더해져 보험사 자기자본이 크게 늘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실질은 같지만 형식상 회계기준 변화에 따른 위험 인식이 달라질 때까지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 현 보험사들의 모습이다.

당국도 이러한 보험사들의 사정을 감안, 경영실태평가(RAAS)에서 지금까진 3개월 이하 채권만 유동성 자산으로 인정해줬으나, 한시적으로 연말까지 3개월 이상 채권도 유동성자산으로 봐주는 등 보험사들이 유동성사막을 건널 수 있는 오아시스를 마련해 줬다.

보유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리츠 상장을 준비중인 생보사 빅3. 윗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제공=각사)

◆ 집 주인에서 세입자로 변신하는 보험사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대주주로 참여한 ‘삼성FN리츠’는 프리IPO를 통해 총 7441억원의 자금 조달을 완료했다고 25일 밝혔다.

지난 10월 국토부의 리츠 영업인가를 받은 삼성FN리츠는 이달 24일 대치타워와 에스원빌딩 편입을 완료하여 내년 상반기 상장 추진 예정이다.

프리IPO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앵커투자자(39%)로 참여해 안정성을 확보했고 MG새마을금고, 한화생명, 교보생명, 코리안리 등 기관투자자들도 다수 참여했다. 기관투자자는 투자 시점부터 1년간 보호예수가 적용된다.

향후 삼성생명, 삼성화재 보유 부동산 매각시 우선매수협상권을 확보해 장래 핵심권역의 프라임급 오피스를 지속적으로 편입할 수 있어 추가 성장성도 기대된다는게 회사측 설명이다.

리츠(REITs)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 및 관련 지분에 투자하는 사업이다. 리츠사가 보험사로부터 빌딩을 매입하고 자산운용사가 이를 운영, 관리한다. 상장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삼성계열 보험사들 뿐 아니라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주요 보험사들이 모두 리츠사업에 나서고 있다. 리츠 수익률이 한자리 수를 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적극적으로 리츠 조성에 나서는 이유는 수익성 보다는 회계적 부담을 덜기 위함이다.

내년부터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도입되면 보험사는 부동산 자산의 25%까지 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부동산자산에 대한 위험계수가 현재 업무용 6%, 투자용 9% 수준에서 몇 배씩 상향되는 것이다.

기업들 입장에선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건물들을 매각해 현금을 만들고, 이를 재임대하는 세일앤리스백(Sale & Lease back)을 통해 건물은 그대로 쓰면서 회계적인 부담은 덜 수 있다.

일감을 관계사인 자산운용사들에 맡겨 이른바 시너지도 낼 수 있고, 리츠 안에 기존 자산 뿐 아니라 다른 자산까지 편입시키면서 배당과 평가차익을 통해 수익금을 불려나가면 그를 통한 보수(Fee)까지 챙길 수 있으니 1석 3조다. 주식이나 채권처럼 변동성이 있는 자산 외에 AI(대체투자) 경쟁력을 확대한다는 명분은 덤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경제가 나빠질 때 사람들이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부터 줄이려하는데 안타깝게 보험이 그 타겟이 된다”며, “장수리스크가 커져 보험의 중요성이 커짐에도 본질적인 영업은 후퇴하고 조달에서까지 압박을 받아 비용이 늘어나니 효율성이 점점 후퇴해 금리가 당장 하락반전하지 않는 이상 내년이 온다고 해서 황금기가 오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