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에서] 경제위기 극복할 최종 병기는 ‘재정’..비상 등 켜고 허리띠 졸라매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5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에 와 있다”며 “그걸 재정·통화정책 등 단기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며 우리의 경제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도대체 우리 경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적절한 해결책은 없는 것인지 살펴보자.
■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터널 진입 가능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올해의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3월의 1.6%에서 1.5%로 0.1%포인트 내려 잡았다. 반대로,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7%로 제시해, 종전 전망치보다 0.1%포인트 올려 잡았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글로벌 경기회복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나 홀로 뒷걸음질 치고 있는 형국이다. OECD는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도 2.1%를 제시하면서, 종전의 2.3%보다 0.2%포인트 내려 잡았다.
한국은행도 올해 경제성장율을 1.4%로 종전보다 낮게 제시했다. 국내외 기관들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율을 1.1%~1.6%로 제시하고 있다.
무역수지는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대비 36.2% 줄어들었고, 대중국 수출은 20.8% 감소하는 등 ‘반도체·대중국’ 함정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말 하반기 수출액이 0.9%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었지만, 최근 하반기 수출액이 5.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리오프닝 흐름에도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미·중간 경제 패권 경쟁 속에 중국과의 정치·외교적 관계도 악화일로에 있고, 중국의 기술고도화에 따른 제품품질 경쟁력 제고 등으로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교역에서 단기적으로 만성적 무역적자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고물가와 고금리는 내수 경기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4월 소비는 전월보다 2.3% 줄어 지난해 11월 이후 감소폭이 가장 컸다. 가계부채 잔액이 1,800조원을 넘어 고금리에 따른 이자부담 증가, 부동산 가격 하락이 민간소비 증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출 부진과 내수 경기 악화는 천문학적 규모의 세수펑크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역수지와 재정의 쌍둥이 적자 현상은 단기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구조적 이슈로, 우리 경제가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의 터널 입구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엄습해 온다. 해외 언론은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피크(Peak) 코리아 또는 일본식 마비(Paralysis)라는 극단적 표현을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기존 DSR(Debt Service Ratio, 총부채상환원리금상환 비율) 40% 규제를 무시한 40조원 상당의 특례보금자리론과 조만간 시행될 깡통주택 전세금 반환 관련 정책 자금대출 등을 포함하면 가계대출 규모는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한 전세금 반환 불능 위험 및 상업용 부동산 PF대출 부실 위험, 불안한 자영업자 대출 부실 등은 우리 경제의 금융안정을 위협하는 압박요인들이다. 정부의 대책은 폭탄 돌리기이지만 이것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자칫 금융안정 이슈까지 붉어진다면, 우리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보다 혹독한 빙하기로 접어들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 경제위기 극복의 최종 병기 재정, 믿을 수 있나?
통제 불가능한 외생적 변수들의 충격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현실적으로 이에 대처할 최종 병기는 재정이다.
우리 재정에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 짚어보자.
(1)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세수 펑크
지난 4일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전체 세수 감소폭은 33조9천억이다. 세목별로는 법인세가 15조8천억원으로 가장 컸고, 소득세 8조9천억원 및 부가세 3조8천억원가 뒤를 이었다. 법인세 세입 여건은 계속되는 수출 부진으로 당분간 회복세로 전환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소득세는 부동산 거래 부진에 따른 양도소득세 감소가 주된 원인인데, 25조원에 육박하는 특례보금자리론 집행에도 불구하고 주택 매매 건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조짐은 보이질 않는다.
부가가치세는 4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조8천억원 적은 35조9천억원 걷혔다. 진도율은 43.1%로, 지난해 같은 기간(48.7%)보다 상당히 낮다.
올해 1월 소매판매는 전월대비 1.5% 감소했다가, 2월 5.1% 및 3월 0.1% 각각 증가세를 보였지만, 4월에 다시 2.3% 감소세로 주저앉았다.
올해보다 낮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감안하면, 내년도 세수는 올해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2) 국가채무 확대
정부는 세수펑크로 인한 유동성 확보를 위해 빚을 늘렸고, 이로 인해 국가채무는 지난 4월말 기준 1,072조 7천억원으로 지난해 연말보다 39조 2천억이나 늘어났다.
정부는 재정증권 발행 이외에 한국은행으로부터 48조 1천억원을 당좌대출을 받았다. 한은 차입규모는 지난해 말 1분기 동안 34조2천억원보다 14조원이나 늘어났다.
한국은행법 75조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정부에 대하여 당좌대출 또는 그 밖의 형식의 여신을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 한은 차입이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하지만, 한은 차입금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까닭에 가능한 지양해야 할 것이다.
(3) 잇단 대기업 감세 정책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개정세법에 따라 올해 세수 감소분은 6조281억원이었지만, 내년에는 14조4216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일 서울 강서구 서울창업허브M+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첨단산업 글로벌 클러스터 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다음 △올해 안에 관련 법을 개정해, 국가전략기술에 동물세포 배양·정제기술 등 바이오의약품 핵심기술을 포함할 예정 △국가전략기술 시설에 투자할 경우,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25%, 중소기업은 35%의 세액 공제 혜택 △R&D 비용의 경우, 대기업은 30∼40%, 중소기업은 40∼50% 세액공제 혜택 △바이오, 반도체, 이차전지 등 12대 국가전략기술 관련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혁신 클러스터를 선별해 세제·금융 지원 확대, 규제 완화 등이다.
세액공제 제도가 신규로 도입되면, 내년 이후의 법인세수는 한층 더 줄어들 것이다.
(4) 추가 재정 지출 예정
우크라이나 차관지원
지난달 17일 기획재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와 우크라이나 정부 간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에 관한 협정'에 가서명했다고 발표했다. 차관 제공 예정 금액은 1억3천만달러다.
에너지 가격 인상 억제 부담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33조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내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은 9조원에 가까워 부채비율이 500%에 이르렀다. 정부는 내년 총선을 의식해 에너지 가격을 올리지 못했지만, 내년도 선거 이후 전기요금 인상과 함께 국고지원도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5) 재정 집행에서의 엇박자
소상공인 지원 정책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 대표 등과 함께한 간담회에서, "소상공인의 완전한 회복을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지난 6일 지난달 31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예산요구안에 지역사랑 상품권사업을 전액 삭감했다고 밝혀, 소상공인들은 정책 엇박자라는 비난을 하고 있다.
특례보금자리론 40조원 vs. 소상공인 대출 8천억원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년간 공급목표인 39조6천억원 규모의 특례 보금자리론이 출시 이후 두 달 만에 연간 공급목표의 64.6%를 집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최대 5억원까지 고정금리를 제공하는 정책 금융 상품이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은 지난 1월 16일, ‘소상공인·전통시장자금 8천억원을 3고(고환율·고물가·고금리) 위기 속에서 낮은 신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위해 2% 저금리로 마련된 전용 자금을 신규 공급한다’고 밝혔다. 해당 자금은 1월 4천억원, 2월과 3월에 각각 2천억원씩 집행되었는데, 대출절차가 시작되기 무섭게 동이 났다.
(6) 세수 재 추계 작업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터널의 끝이 그리 멀지 않았다”며 “전반적으로 상반기보다는 하반기로 가면서 (경기가) 서서히 좋아질 것”이라며 ‘상저하고(上低下高)’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1.6%를 소폭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면서, “6월 말이나 7월 초에 새로운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기존의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을 포기한 것인지 헷갈린다.
국가재정법 7조에 따르면, 정부는 재정운용의 효율화와 건전화를 위하여 매년 해당 회계연도부터 5회계연도 이상의 기간에 대한 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하여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도록 규정돼 있다.
정부는 올해 8~9월 발표를 목표로 세수 재추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국회에 제출할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염두에 둔 발언일 게다. 하지만, 국회 제출 전 중기재정전략회의를 개최해 정부안을 확정하려면 세수 재추계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는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5월 말 소득세 신고 납부기한이 지났기 때문에 올해 세수 추계 작업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조속히 올해와 내년 이후의 재정의 실상을 정확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7) 세출 불용처리는 세수펑크를 해결할 대안 아냐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일정 기간 내 세수 상황은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당초 예산 집행 관련 대안들을 검토해왔다"며 "세계잉여금, 기금 여유재원 등을 활용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고, 세수 상황이 덜 좋아지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여러 방안 중 유력한 수단은 예산의 불용처리일 것이다. 재정이 어렵다고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의 팔을 비틀어 국회에서 심의받은 예산 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종용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나는 처사다. 정부의 세출예산 불용처리 발상은 국회의 예산 승인권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 재정관리에 비상등을 켜야 할 때
추경호 부총리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 정책의) 가장 큰 기치는 (나랏)빚을 내지 않는 것"이라며 추경 편성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
현재와 미래에 예상되는 천문학적 규모의 세수 펑크와 재정 압박을 감안하면, 윤석열 정부의 재정 건전성 확보 공약(公約)은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된다.
윤석열 정부는 총선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향후 복지예산 축소 등으로 취약계층에게 더 혹독한 시련이 닥칠 것을 인정하고, 재정관리에 비상등을 켜고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야 할 것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이호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