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Y] 남의 나라 이야기된 ‘비트코인 ETF’

김치프리미엄 명성은 어디로…가상자산 주도권 요원 가상자산도 추격자(Fast Follower) 신세…당국 선제 대응 아쉬워

2024-01-12     장석진 기자
최근 1년 비트코이 가격 추이. 2200만원 아래에서 6600만원까지 약 3배가 올랐다. 빗썸 홈페이지 캡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현지시간 10일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을 승인했다는 소식이 국내 가상자산업계에 환호와 탄식을 동시에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도권 밖에 있던 대표 가상자산이 제도권 안으로 공식 편입된 것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ETF 기초자산으로 가상자산을 편입시킬 수 없다는 국내 자본시장법상 규정이 ‘국내에서 비트코인ETF 거래 중지’라는 발목잡기로 이어지는 상황 때문입니다. 김치 프리미엄이란 단어가 나올 만큼 가상자산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도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선도자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12일 주식시장에서는 전날 급등했던 한화투자증권, 우리기술투자 등의 가상자산 관련주들의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한화투자증권과 우리기술투자는 11일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이날 각각 -14.89%, -9.10%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이들은 국내 대표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비트코인ETF SEC 승인 호재에 급등했다가 한풀 기세가 꺾인 모양새입니다.

비트코인은 올해로 정확히 15살을 맞는 ‘원조 가상자산’입니다. 보통 코인이라고 많이 부르지만 정확한 명칭이 가상자산(Digital Asset)입니다. 탄생 배경은 2008년 금융위기로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중앙화된 기존의 화폐에 대한 반발로 이른바 탈중앙화(Decentralization)를 선언하며 2009년 1월 3일 등장했습니다. 초기엔 IT개발자들 사이에서만 입소문으로 전해지며 비트코인으로 피자를 사먹었다는 둥, 커피 한잔과 맞바꿨다는 둥 무용담이 넘쳐났지만, 이후에 등장한 여러 가상자산의 대표격으로 디지털 달러, 디지털 금 등으로 불리며 가치가 급등합니다.

특히 비트코인은 발행갯수가 2100만개로 정해져 앞으로 채굴할 수 있는 숫자가 한정됐다는 이유로 희소성이 부각되면서 가치가 오르더니,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서 ETF 승인이 나면서 제도권으로 흡수되고 이를 통해 기관투자자들의 참여에 의한 수요가 발생하면서 가격에 탄력이 붙습니다. 지난 해의 경우 연초 2200만원을 하회하던 비트코인 가격이 자본시장의 본산인 미 SEC가 ETF를 승인할 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현재 약 3배인 6600만원 부근까지 오르게 됐습니다. 곧 다가오는 비트코인 반감기에 따른 수급 불균형도 가격 상승에 한몫 했습니다.

불과 5년여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앞선 IT기술과 한국인 특유의 투자에 대한 관심이 더해지며 가상자산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다만 디지털자산이 국경을 넘나드는 상품이니 만치 증권성 등 성격 규정을 독자적으로 내리지 못했고, 변동성이 크기도 해 투자자 보호 문제등을 고려해 안착하지 못하는 사이 주도권이 싱가포르, 미국 등 다른 나라로 넘어갔습니다.

그 사이 우리는 은행에서 거래를 위해 실명계좌를 만들고 우후죽순 늘어난 거래소를 몇몇 대형 사업자들로 한정하고 거래 책임을 전통 금융기관과 나누는 방식으로 제도를 정비하며 글로벌 흐름에 발맞추고자 했습니다. 또 가상자산 활용도가 높은 일부 게임사나 IT기업 등에서 게임머니나 메타버스 등을 활용해 상업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여러 부작용을 낳으며 문을 열지 못하고 좌절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그동안 워낙 많은 비트코인ETF가 SEC 승인을 신청했지만 번번히 거절돼 왔기에 이번에도 또 좌절될 수 있다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승인이 떨어지자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판다’는 투자업계 격언처럼 막상 비트코인 가격은 조정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오히려 ‘왕초’ 비트코인에 대한 대체자산으로 불리는 알트코인(Alternative Coin)의 가격이 들썩입니다. 특히 높은 지명도와 더불어 비트코인의 약점인 폐쇄성을 극복, 실제 프로젝트에 활용이 가능한 이더리움 등이 차기 ETF 승인 가능성에 급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잔치 분위기에 한국은 동참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감독당국이 국내에서 거래 가능한 ETF의 기초자산에 가상자산을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일 첫날 거래에서 승인이 떨어진 11개 ETF에 대해 하루동안 6조원의 거래가 일어났지만 한국에선 오히려 증권사들이 기존에 거래되던 가상자산ETF마저 거래를 중단하며 당국의 유권해석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습니다.

금융위원회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현 자본시장법 하에서 허용한 중개상품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자본시장법상 허용되는 기초자산은 금융투자상품, 통화(Currency), 일반상품(Commodity), 신용위험(파생상품), 기타 등입니다. 이른바 열거주의(Positive) 규제로 허용된 상품에 해당하지 않으면 거래가 안됩니다.

포괄주의(Negative) 규제로 안되는 것을 열거하고 나머지는 허용되는 적극적인 규제와 다릅니다.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듯이, 거래 안전을 두텁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현재의 열거주의가 좋지만, 세상이 변화해 그 흐름을 쫓아가는 데는 취약합니다. 지금처럼 제도가 바껴서 흐름을 쫓아가야 할 때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발생합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이미 10여개의 나라에서 승인이 났던 만큼 우리도 적극적인 검토로 미리 대비했다가 미국 SEC 승인에 발맞췄다면 증권사나 투자자, 가상자산업계 모두 혼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시아 금융허브를 구호로만 내세우지 말고 싱가포르와의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서, 또 향후 STO(조각투자)나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분야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라도 보다 적극적인 행정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습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