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잃은 기술금융] ③ 韓 금융업, 혁신 R&D 관심 부족
韓·美 금융사 총자산 대비 특허 등록 건수 격차 커
정부는 10여년 전부터 각종 기술금융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올해 1월 특허청은 228억원 규모의 지식재산(IP) 직접투자 펀드를 신규로 조성했고 최근 금융위원회도 ‘기술금융 개선방안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시장은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이와 관련한 현황을 다양한 관점에서 진단하고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생기 잃은 기술금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최근 들어 각 금융사가 디지털 전환(DX) 전략을 선포하고 있다. 일부 금융사는 해외처럼 자체 혁신연구센터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지식재산권(IP) 등록 현황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금융업계에선 “각 회사가 기술 특허 출원 및 등록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 동향을 살필 필요가 있다”는 자기성찰의 목소리가 있는 반면, 해외 학계에선 “규제산업 특성상 경직되지 않은 조직문화 조성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있다.
17일 스트레이트뉴스가 특허검색 플랫폼 ‘패튼피아(PatentPia)’를 통해 미국특허청(USPTO)에 등록된 글로벌 금융사의 특허 등록 규모 집계를 살펴 본 결과, 뱅크오브아메리카가 5182건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웰스파고 2933건 ▲JP모건 체이스 2618건 ▲마스터카드 2096건 ▲비자카드 505건 ▲골드만삭스 304건 ▲모건스텐리 209건 등을로 집계됐다. 미국의 경우 주요 금융사만 어림잡아 보더라도 특허 등록 건수가 1만 건을 훌쩍 넘는다.
반면 국내 주요 금융사의 특허 등록 규모는 미국과 비교해 미약한 수준이다. 국내 주요 5개 은행 및 지주가 특허청(KIPO)에 등록한 특허 건수 상위회사를 보면 ▲신한은행 356건 ▲우리은행 179건 ▲NH농협은행 141건 ▲하나은행 131건 등으로 집계됐다.
주요은행은 물론 제2금융사의 특허 등록 건수까지 끌어 모아도 뱅크오브아메리카 한곳의 절반 수준도 못따라가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 기준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총자산은 3조1800억 달러(약 4311조원) 다. 같은 시기 국내 5대 은행의 총자산은 2741조원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의 63.58% 수준이다. 반면 뱅크오브아메리카가 현재까지 등록한 특허 건수(5182건) 대비 국내 5대 은행의 특허 등록을 모두 합친 건수(807건)는 고작 15.57%에 그친다.
각 은행의 총자산 대비 특허 등록 건수를 비교했을 때 객관적으로 국내 주요은행의 특허 관심도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2금융권 중에선 BC카드 특허등록 건수가 130건으로 가장 많이 나타났다. 최근에도 최원석 대표가 직접 나서 특허 취득의 중요성을 강조할 만큼 많은 역량을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BC카드의 총자산은 6조1106억원 수준으로 각 시중은행보다 훨씬 규모가 적었다. 그러나 특허건수 만큼은 이들 각 회사가 등록한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밖에 다른 카드사의 특허 등록 건수는 ▲신한카드 84건 ▲KB국민카드 33건 ▲삼성카드 31건 ▲현대카드 29건 순으로 나타났다. 증권업계에선 ▲삼성증권 85건 ▲대신증권 24건 ▲신한투자증권 14건 등으로, 보험사 중에선 ▲삼성생명 75건 ▲삼성화재 13건 ▲신한라이프 12건 등으로 집계됐다.
국내 금융업계에선 “각 회사에서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금융권 한 IP담당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KIPO에 특허를 출원하고 등록하는 환경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라며 “다만 업계에서 전반적인 관심이 부족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 실무자가 이미 생각하고 있는 컨셉이 USPTO 등 외국에서 벌써 등록된 경우가 많다”며 “특허 출원 자체를 국내 수준으로 한정지어 KIPO에 하는 경우가 많은데 K-금융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라도 각 회사가 기술에 더욱 관심을 갖고 기술 고도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 학계에선 “규제산업이라는 특성이 혁신의 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토루 요시오카-코바야시 히토츠바시 대학 교수는 스트레이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로 부터 각종 규제를 많이 받는 금융업특성상 기업 분위기 자체가 보수적인 성향으로 굳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이 경우 기업 조직이 혁신을 위한 모험을 추구하기 보단 리스크 없는 안정성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토루 교수는 “가령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의 경우, 핵심사업 부서에서 분리한 별도의 ‘혁신 허브 센터’가 있다”며 “구성원이 보수적인 분위기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이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조직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키프로스 니코시아대학의 알키스 스라수 교수는 2020년 28개 유럽 국가의 3883개의 투자은행(IB)을 대상으로 ‘은행의 성과와 개념적 발전에 대한 실증적 검증 연구’를 진행했다.
해당 연구에서 스라수 교수는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대해 조직원이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능력은 사전에 조직의 제약조건을 없애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8일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2024년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내외 금융환경의 불확실성에 대해 각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신속히 대응함과 동시에 우리나라 경제와 금융이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해 나가겠다”며 “인공지능(AI) 활용·데이터 결합 등 디지털 혁신과 관련해 '혁신'과 '책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