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혼 청년 ‘쪽방살이’ 외면하는 정부
“아파트는 무슨 아파트냐, 연봉 3500만원 포괄임금제 인생이 그렇지 뭐…”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고향 친구가 초라한 통장 잔액을 확인하며 내뱉는 깊은 한숨 소리가 전화기 넘어 나에게 전해진다.
사실 대부분의 TV 드라마 콘텐츠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공감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가령 드라마 ‘킹더랜드’ 주인공은 극 초반 전문대학교 출신이라고 무시받지만, 소녀시대 윤아를 닮은 외모와 뛰어난 외국어 실력으로 호텔리어로서 성장하고 재벌가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 현실성이 0%에 가까운 이야기다.
드라마 뿐만 아니다. 소셜미디어 역시 처음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동추천으로 보여지는 다수의 게시물은 극소수의 최상위층들의 게시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인스타그램에선 나만 빼고 모든 이들의 연봉이 1억원이 훌쩍 넘는 것 같고, 유튜브에선 성공한 자영업자의 이야기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언론에선 대기업의 성과급 파티 이야기가 연일 쏟아진다. 연봉 3500만원을 받는 평범한 중소기업 직장인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충분한 미디어 환경이다.
최상위권 대학을 진학해서 연봉 많이 챙겨주는 대기업에 취직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출산하는 청사진은 모두가 꿈꾸는 삶이다. 영화와 드라마, 소셜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이들의 삶은 화려함 그 자체지만 현실은 정반대 상황이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30~34세의 중위 소득은 3917만원이다. 세후 월급으로 290만원이 조금 안되는 수준이다. ‘한국인의 의식주와 관련된 필수 생활물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약 60%나 더 높다’는 건 월급만으로 생활비 충당도 어려운 우리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처럼 느껴진다.
이 가운데 ‘7월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를 시행한다’는 소식은 청년들을 ‘내집 마련’이란 꿈에서 한 발 멀어지게 한다. 같은 연봉과 신용등급으로 대출을 받더라도 한도금액이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연봉 5000만원인 직장인이 40년 만기(원리금 균등 상환)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4.38%(은행 금리 4.0%+스트레스 가산 금리 0.38%p)의 금리를 적용하고 DSR 40%(연봉의 40%·2000만원)를 꽉 채우면, 최대 3억7700만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다만 7월부터 스트레스 2단계 시행 시 같은 연봉과 신용등급 조건에서 주담대 최대 한도가 2000만원 줄어든다.
물론 정부가 DSR을 규제하는 게 건전성 이슈 때문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다만 3억5700만원으론 (평수를 극단적으로 줄이지 않는 이상) 서울은 커녕 경기권 끝자락도 내집 마련을 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30~34세 상위소득 75% 연봉이 5218만원이라는 걸 놓고 봤을 때, 3000~4000만원 직장에겐 대출 3억원 조차도 받기 어려운 게 현실로 보여진다. 다수의 청년은 내집 마련을 위해 대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문턱을 더 높인 것이다.
정부가 시행하거나 추진하는 다수의 부동산 정책과 증여 규제는 대부분 결혼하는 이들에게 맞춰졌다.
혹자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작은 쪽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지 않겠냐”라고 말하지만, 실제 청년들 입장에선 “현실이 쪽방살이인데 감히 결혼과 출산을 꿈꿀 수 있겠냐”는 불만이 제기 된다. 청년들이 이렇게 표현을 하는 이유는 서두에 안급한 미디어 환경과 상대적 박탈감이 한 몫 한다고 여겨진다.
증여세 역시 마찬가지다. 5000만원까지 공통적으로 세금없이 증여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증여세율이 매우 높게 붙는다. 또한 2억원까지는 직계 부모에게 무이자 차용으로 돈을 빌리는 게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부모에게 이자를 납부해야 한다. 사실 이자 이슈를 제외하더라도 자식에게 선뜻 2억원을 빌려줄 수 있는 부모가 몇명이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연봉도, 대출도, 증여도 막힌 상황에서 비혼 청년을 사실상 쪽방에 가두는 주체는 정부라고 생각된다. 정부에서 진심으로 저출산과 청년 삶의 질 개선에 관심이 있다면, 형식적인 수준에서 정책을 마련하는 것에 멈추지 말고 본질적으로 수혜 대상의 사고방식을 파악하고 ‘핀셋 정책’을 적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