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카드사 가맹점 적격비용 재산정 '시급'

10년 넘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사라지는 ‘혜자카드’

2024-08-22     조성진 기자

“규제 당국은 항상 작은 원을 그립니다. 그들은 이 작은 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책임을 다하죠. 그리고 그들은 항상 이 작은 원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여론의 비난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원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다른 일들이 자신들의 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규제 당국은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관계 없이 항상 자신의 첫 번째 임무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범위를 방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워싱턴의 금융 서비스 컨설팅 기업 ‘파토막 글로벌 파트너’를 이끄는 키스 노레이카가 올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규제 당국에 대한 사견이다.

그의 발언은 규제 당국이 특정 범위 내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전체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더 넓은 맥락이나 외부 요인을 간과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물론 이는 미국 규제 당국에 대한 소신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카드사 가맹점 적격비용' 이슈를 격고 있는 한국의 모습을 비추어 볼 때 동병상련이 느껴진다.

올해도 카드사들의 최대 숙원 과제인 ‘적격비용 재산정 개선’이 해결되지 못한 채 지나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적격비용 재산정은 3년마다 카드사 결제 가맹점 수수료 원가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대 가맹점의 수수료를 조정하는 절차를 말한다. 

적격비용 재산정은 카드사가 변화하는 시장 흐름에 맞춰 수수료 체계를 재정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주기는 3년마다 한 번씩 진행된다. 카드사들은 오랜 기간 비즈니스 구조를 정상화 하고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 개선을 염원해왔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금융당국은 소상공인 부담 경감이라는 취지 하에 카드사를 대상으로 결제 수수료 인하를 압박했다. 

연매출 3억~ 30억원 규모 소상공인의 카드결제 수수료율은 2012년 말 기준 약 3.6%였으나 현재는 1.1~1.5%까지 내려왔다. 연매출 3억원 이하인 이들의 결제 수수료는 4.5%에서 0.5%까지 감소했다.

게다가 2022년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사의 '선구매 후불 결제'(BNPL)이 허용됐고, 지난해 애플페이가 국내시장에 도입되는 등 시장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결제시장 흐름 속에서 적격비용 재산정 개선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카드사는 구시대적인 수수료 체계에 발목이 잡혀, 현재의 시장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선 논의가 매번 제자리 걸음이다. 올해도 적격비용 재산정 논의가 지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카드사들의 수익성 문제를 넘어서, 더 넓게는 금융시장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수수료 체계가 현재의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할 경우, 이는 결국 카드사들의 경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가맹점 수수료 부담의 불공정성을 낳고, 장기적으로는 카드사들의 경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수익성이 악화된 카드사들은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할 여력이 줄어들고, 이는 곧 카드 이용자들의 불편으로 이어진다. 실제 각 카드사는 올 들어 마진은 적지만 고객 혜택이 많은 속칭 ‘혜자카드’ 발급을 중단하고 구매력이 높은 우량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는 프리미엄 카드를 집중 출시하는 추세다. 

특히 현재의 경제 상황은 카드사에게 더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높은 조달금리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카드사들은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기 위해 적격비용 재산정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논의와 규제 당국의 신중한 접근은 적격비용 재산정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

그동안 규제 당국이 카드사 수수료를 내리는 방향으로만 정책을 추진하면서 소상공인 가맹점의 부담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카드사와 소비자에게 미치는 더 광범위한 영향을 놓쳤다. 즉 규제 당국은 적격비용 재산정 과정에서 더 넓은 맥락에서 정책의 파급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이제는 정부와 규제 당국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단순히 카드사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시장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소비자들에게 지속 가능한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적격비용 재산정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올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로 넘어가고,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는 적격비용 재산정이 올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정부와 국회 등 유관 기관은 카드사들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마련하고,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