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Y] 지금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

모바일 혁명이 올린 스페인 집값…흔들리는 플랫폼 경제 정부여당 눈치 안보는 한국은행 총재…’집값 부양 결별 선언’

2024-08-24     장석진 기자
22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1 여름휴가를 스페인으로 다녀왔습니다. 당초 계획에 없었던 일정이라 뒤늦게 남아있는 비행기표를 찾다보니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승인이 임박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 이후 어찌될 지 모르는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소진하겠다는 ‘노림수’도 있었지만.

막상 떠나기 전에 걱정이 들게 한 건 40도에 육박하는 현지 기온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것을 반대하며 손님들에게 물총을 쏘아댄다는 현지 뉴스였습니다. 바로셀로나 현지에 도착해 식당에 들러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이래도 되는 거냐고.

돌아온 답변은 “관광객이 많이 오면 내수에도 도움되고 고마운 일이나 이들이 호텔이 아니라 에어비앤비 숙소를 이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뜻밖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모바일로 저렴한 숙소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자 비싼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를 통해 일반 숙소에 머물게 되고, 그 결과 집이 부족해 집값이 오르니 현지인들의 불만이 커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모바일 혁명이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주게 된 전형적 사례로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일입니다.

#2 전일 한국거래소 사람들과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거래소 이사장이 힘주어 실천하고 있는 ‘벨류업’ 이야기를 하다, 하루 전 있었던 정은보 이사장 주재 ‘10대그룹 CFO밸류업 간담회’에 9개 기업만 참석해 오지 않은 한 곳이 어떤 회사인지 궁금해져 물었습니다. 그 기업이 누구인지 보단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적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는 ‘간 큰 회사’가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습니다.

답변은 뜻밖이었습니다. 거래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부르면 다를지 모르지만, 거래소가 기업들을 초청하는 행사 모객은 정말 어렵다”며, “상장 전이나 거래소에 잘 보이려 하지 그 이후엔 의사전달이 정말 어렵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다만 “그래도 민간 기업이 공공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은 긍정적”이라는 기자의 평가에 거래소 관계자들도 동의했습니다.

상장 이야기를 하다 주가가 고점 대비 10분의 1토막이 난 카카오페이 생각이 나서 다시 물었습니다. “플랫폼 기업임을 내세우는 카카오 그룹이 카카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까지 모두 상장시키는 것은 이중상장(Double Listing) 문제가 있다는 점, 더욱이 당시 밸류에이션을 위해 듣도 보도 못한 외국 플랫폼 기업까지 벤치마크 대상으로 끼워 넣은 행태가 투자자 피해라는 현재의 상황을 낳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질문에 거래소 관계자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아쉬움을 길게 토로했습니다. 거래소가 상장 실무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밸류에이션에 대한 모든 권한은 금융당국이 가지고 있는데 거래소가 IPO를 진행한다는 이유 만으로 그 책임을 거래소에 물으면 안된다는 취지의 답변이었습니다.

직접금융을 통한 조달 효율화의 필요성이 컸던 성장 시기, 공공기관으로서의 한국거래소 위상은 상당했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앞다투어 들어가고 싶어 했던 ‘신의 직장’이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을 이탈하려는 투자자들을 잡기 위해 ‘투자자활동(IR)’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다른 나라 거래소와 경쟁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또 과거엔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모으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일반화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수많은 소상공인과 일반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티메프(티몬·위메프)사태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집니다.

상장 당시 거액을 수혈 받고도 적자와 흑자 사이를 오가는 카카오페이가 고객 개인정보를 본인 허락없이 2대주주인 중국계 기업에게 넘기는 상황을 보면서 ‘플랫폼=돈’이라는 과거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됩니다.

#3 지난 2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3.50%로 13번 연속 동결했습니다. 이를 두고 이례적으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와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입을 통해 “결정 존중하나 아쉽다”는 발언이 이구동성으로 나왔습니다.

금융통화위원 만장일치로 금리를 동결해야 할 여러 이유 중 핵심 키워드는 ‘금융시장 안정’이고 금융시장 안정은 트리거(방아쇠)인 부동산 가격이 대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냐에 있다는 게 한국은행 측 입장입니다. 쉽게 말해 당장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는 양상이니, 내수 침체에 따른 경기 우려 보다는 “어떻게든 집값은 오른다”는 신화(Myth)를 이참에 깨야한다는 게 한은총재의 생각입니다. 잘못된 신호를 주는데 한은이 동참할 수 없다는 뚝심입니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불편한 심기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감독당국이 은행들에 대한 창구지도를 통해 시장금리가 내려감에도 주택담보대출 금리 줄인상을 넘어 신용대출까지 올리려는 시도를 할 만큼 집값을 잡기 위한 노력은 절박합니다. 집값은 너무 올라도 문제지만, 내리는 건 더 큰 문제라는 암묵적 인식이 매 정권마다 이어져왔고, 그 폭탄이 지금 터져서는 안된다는 걱정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에 앞서 각종 특례대출을 통해 집값 수요를 부추기고,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을 당초 7월에서 9월로 옮기며 시장의 주택 매수 수요를 부추긴 책임을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한국은행에게 나눠지자며 ‘아쉽다’는 논평을 내는 것은 시장을 정책을 통해 잡을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의 발로입니다.

여기서 금리동결이라는 (당국입장에서의) ‘몽니’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개인적 특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총재는 2022년 3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 임명한 사람이다. 앞선 이주열 총재와 차기 총재 임명 사이의 공백을 막는다는 입장이 있었고, 당시 윤석열 당선인 측 입장을 수렴했다는 설명도 있었지만 당선인 측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 총재는 한국은행 수장으로서 의사결정의 독립성을 훼손해가면서 까지 정부여당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줄 이유가 많지 않은 사람입니다.

임명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국장이었던 이 총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으로 석사와 박사를 받은 인물입니다. 미국 명문대 중 하나인 로체스터대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결제은행(BIS) 등을 모두 거친 ‘경제분야 아이돌’입니다.

지난 5월 30일 열린 한국은행 콘퍼런스에는 이창용 총재의 하버드 인맥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 총재의 글로벌 영향력을 엿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기조연설은 요르단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가, 사회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사전트 교수, 세션발표에 루트비히 하버드대 교수가 참여하며 막강한 하버드 인맥을 과시했습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당시 이를 두고 자신의 정책결정이 글로벌 눈높이에 맞춰져 있으니 방해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시위 성격이라는 평가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묶기를 좋아하는 세간의 눈으로 봐도 이미 2007년 말 이명박 대통령 당선 당시 인수위 위원을 맡고, 금융위 부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 시절 임명됐다 해도 딱히 한쪽으로 분류하기도 어려운 인사입니다.

대외적으로 독립성을 강조하지만 정부 여당의 눈치를 보지 않는 한국은행 총재가 지금까지 있었을까요? 독단과 독선은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특정 세력을 위한 일이 아닌 ‘공공을 위한 신념과 원칙에 기반한 결정’이라는 가정하에 한은 총재의 고집을 응원하게 됩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