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빅컷’ 단행..한은 ‘긴급 금통위’ 없었다
학계, 연내 금리 인하 전망 엇갈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한번에 0.50%포인트(p) 내린 가운데 한국은행의 행보에 대해 국내시장의 이목이 집중된다. 10월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이하를 전망하는 목소리도 있는 한편, 학계에선 ‘한국은행이 10월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이란 목소리와 ’가계부채를 잡는데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으로 엇갈린 상황이다.
18일(현지시간 기준) 주요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연준은 기준금리를 종전 5.25~5.50%에서 0.50%p 낮춘 4.75∼5.00%로 결정했다. 이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각각 거시 경제금융회의와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국내외 상황을 모니터링 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로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자 곧이어 ‘긴급 금통위’를 개최하고 금리를 따라 내렸던 것과 다른 상황이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9월 FOMC의 빅컷 단행은 경기침체 우려보단 정상으로 돌아가는 인하에 좀더 가깝다”며 “막연한 R의 공포를 제공하고 싶지 않은 연준의 통화정책의 실기를 최소화하고, 금융시장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글로벌 경기가 안정세로 접어들었다는 입장이다.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관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미 빅컷에 대한 기대감이 일부 선반영돼 비교적 안정적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을 계기로 팬데믹 대응 과정의 유동성 과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망 충격이 중첩되면서 촉발됐던 글로벌 복합위기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에선 국내 경기가 글로벌 복합위기에서 벗어나 가계부채 이슈에 직면한 것에 주목한다.
시장전문가 A 씨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한 202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됐다”며 “한국도 경제 성장률에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면서 회복 중이지만, 가계부채 이슈는 당시 상황 보다 오히려 더 크게 부각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관건은 한국은행이 언제 통화정책을 완화하느냐에 달려있다. 지난해 시장에선 ‘한국은행이 이르면 2024년 3~4월 중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시사했다. 하지만 통화정책 완화가 예상되는 시점은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8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하면서 그 배경으로 가계부채 급증을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여전히 수도권 중심의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 발표에 따르면, 9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8월 마지막 주 대비 0.21% 높게 형성됐다. 24주째 상승 추세다. 서울 아파트값은 3월 넷째 주(0.01%) 상승세로 돌아선 후 오름폭을 키우면서 지난달 둘째 주(0.32%)엔 5년 11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0.82%(9조3000억원) 증가한 1130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대치 기록으로 2021년 7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다. 특히 이번달 초,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을 앞두고 8월까지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탓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번달 30일 KB국민은행 등 국내 주요 11개 은행장과 만나 가계부채 문제를 비롯한 거시경제 현안을 논의한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8월 의사록만 보면 당장 인하 소수의견을 낼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이어 “위원들이 거시건전성 정책 효과를 확인해 봐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로선 이정도로 집값에 대해 강경하게 우려한 후 당장 인하 주장을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데이터 확인 측면에서도 시간이 필요한데 추석 연휴로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도 힘들다”고 봤다.
학계에선 한국은행의 향후 통화정책 향방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김영익 서강대 교수는 스트레이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의 목표치인 2%를 수렴했고, 9월에는 1%대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은행의 첫번째 목표인 물가안정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가계대출 이슈가 있으나, 이 역시 정부와 은행권에서 각종 규제정책을 시행한 영향을 받아 상승세가 꺾일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금리인하 영향으로 환율 인하도 전망되기 때문에 10월부터 금통위의 금리 인하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연준의 빅컷 단행은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여러 요건 중 하나인 건 틀림 없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통화정책 완화 부담이 줄어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미국 통화정책의 절반을 쫓아 왔다”며 “미국이 연내 금리를 1.0%p 내린다고 가정하면 한국은행은 남은 두번의 금통위에서 각각 금리를 0.25%p씩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반면 뚜렷하게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섣부른 금리인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한국은행이 당장 금리를 인하해서 득될게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가계대출이 부동산에 집중된 상황에서 금리를 내린다고 단기간 내 소비와 투자 여력이 회복되는 건 아닐 것”이라며 “만약 한국은행이 금리를 4%까지 올렸다면 미국을 쫓아 통화정책을 완화할 여력이 있었겠지만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분간 금리 인하가 어려울 것 같다”며 “가계대출이 잡히지 않는 이상 올해를 넘겨 내년 초 즈음 금리 인하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당장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길고 가변적인 시차(Long and variable lags)’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가변적’이란 표현은 통화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나타날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때도 있지만, 반대로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