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뜬금포’...시민들, “갑진국치”

대한민국은 비상사태 중?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재석 190 만장일치 가결 비상계엄 칼날 향하는 곳은 윤석열 대통령 자신

2024-12-04     김태현 선임기자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한밤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를 자청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박정희 군부 쿠데타 이후, 그리고 80년 민주화의 어느 봄날(5월 17일) 이후 처음이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석 만장일치로 가결시켜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것도 처음이다.

대한민국, 전쟁·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 중?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헌법 제77조1항에 규정된 비상계엄 요건이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적인 행위인가?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그가 지목한 북한 공산 세력의 실체는 계엄선포문 앞머리에 적시됐다. 판사 겁박, 검사·행안부 장관·방통위원장·감사원장 탄핵 및 국방장관 탄핵 시도, 국가 주요 예산 전액 삭감 등 예산 폭거, 특검, 야당 대표 방탄에 의한 국정 마비, 윤 대통령이 늘어놓은 장광설은 정확히 민주당을 지목하고 있다.

국가 전복 기도하는 괴물로 ‘민주당’ 지목

윤 대통령은 민주당으로 인해 국회가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민주당이 입법 독재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가 대한민국을 붕괴시키는 괴물이라고도 했다.

그가 구체적으로 단정 내린 민주당의 실체는 ‘북한 공산 세력’,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패악질을 일삼은 반국가 세력’,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이다. 그들은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일거에 척결돼야 하는 존재다. 그는 “국민 여러분만 믿고 신명을 바치겠다”며 “믿어 달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헌법에 합치하려면 전시·사변,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지금은 전시도 아니고 사변도 없으니, 해당되는 것은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다.

지금이 비상사태인가? 그래서 우리 국민이 전쟁이나 사변이 났을 때처럼 떨고 있나? 전혀 그렇지 않다. 늦은 시간 하루의 피로를 풀며 생맥주 잔을 기울이던 시민들이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비상계엄 소식에 박장대소하는 시절이다. 식당 주인이 “올해 장사는 끝났다”며 툴툴거리는 시절이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재석 190, 찬성 190...친한동훈계마저 가결 투표

국회가 범죄자 집단이고 민주당이 야당 대표 방탄에 집중한다면, 그건 군부가 아닌 검찰이 해결할 일이다. 장관이나 감사원장 등에 대한 탄핵 시도와 예산 폭거 등 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국회 내에서 또는 여야정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그게 어떻게 체제 전복 시도란 말인가?

북한 공산 세력, 파렴치하고 패악질을 일삼고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 ‘체포조’까지 가동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 의결로 비상계엄이 해제될 수 있으니, 계엄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국회는 4일 새벽 본회의를 열어 재석 190명, 찬성 190명 가결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친한동훈계 의원 18명마저 전원 가결 투표했다.

4일 새벽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재석 190석 만장일치로가결되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이제항 선임기자)

윤 대통령 자신에게로 향하는 ‘비상계엄의 칼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방부 장관은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열고 전군 비상경계 및 대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비상계엄 선포 시 △군사적 통제 강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제한, △사법권 변화, △행정과 입법 제한, △통행·통신 제한, △경제활동 통제 등이 행사된다. 군부가 그 모든 통제권을 행사하고, 경찰 업무까지 맡을 수 있다. 언론은 검열당하고, 시위는 금지된다. 법원의 권한은 대폭 군사재판정으로 넘어가고, 통행금지와 인터넷 감시 가능성도 있다.

윤 대통령이 ‘뜬금포’처럼 뽑아든 비상계엄이라는 칼날, 그 칼날의 서슬은 퍼런 게 아니라, 이미 녹이 슬어 있다. “저를 믿어 달라”며 “국민을 믿고 신명을 바치겠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는 국민은 채 20%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이라는 규정은 ‘증거 없는 독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탄핵 시도와 예산 폭거, 그리고 대화 단절에 의한 입법 독재가 어떻게 국가 전복 기도로 연결된단 말인가?

주요 외신들은 “한국 비상계엄 선포”라는 서울 발 기사를 전 세계로 타전하고 있다. 가상자산시장이 들끓고 있다. 오늘 아침 주가는 풍랑 맞은 돛배처럼 출렁일 게 뻔하다. 환율이 추는 춤에 기업들은 또 어떤 방식으로 넋이 나갈지 두렵다. 국가신인도는 무사할까? 비상계엄이 두려운 게 아니라, 비상계엄이 몰고 올 경제적 파장이 더 끔찍하다는 말이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새벽, 우리 경제에 닥친 비상계엄의 칼춤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린다.

해프닝도 이런 해프닝이 없다. 일국의 대통령이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건가?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 제77조 1항 규정에 맞지 않으니 그 자체로 헌법 위반이다. 혹여 군부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군대를 투입한다면, 그보다 더 명백한 헌법 위반은 없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받지 않아 영장주의가 무너질까? 그래서 군부가 정치인이나 민간인을 구속 또는 체포하게 될까? 수많은 언론에 재갈은 또 어떻게 채울까? 세계는 이런 한국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우리 국민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진정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아니면 한심한 시선으로 대했을까?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프닝 정도가 아니라, 국치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가 있었다면, 2024년 12월 3일은 갑진국치일이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받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은 그야말로 탄핵 사유 하나를 더 챙기게 된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받아든다 해도 대한민국 국격이 받은 수치는 천연두 자국처럼 남는다. 어느 쪽이든 양수겸장 참담한 ‘득템’이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이 비장한 어조로 뽑아들었던 비상계엄의 칼날이 향하는 곳은, 억지 레토릭으로 가져다 붙인 ‘북한 공산 세력’,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패악질을 일삼은 반국가 세력’,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이 아니라, 바로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다. 무엇을 위해서였나? 80%의 국민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는 스스로 탄핵의 강으로 빠져들고 있다. 두 번째 서울의 봄은 오고 있는가?

[스트레이트뉴스 김태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