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025년, 보험 산업이 가야할 길

박리다매식 영업 방식 벗어나 진정성 있는 혁신 고민해야 초고령사회 접어든 한국, '보험 종사자' 쓴 소리에 귀 기울여야

2025-01-21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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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5’에서 혁신적인 많은 전시를 봤는데, 당장 국내 보험업계에 적용할만한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보험사들이 혁신성을 추구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박리다매식(薄利多賣) 영업방식을 추구하는 게 안타깝다.”

최근 한 보험사 임원이 한숨을 쉬며 밝힌 심정이다. 보험분야 출입 기자로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올해 CES 행사에 참가한 국내 기업은 전년 대비 34% 늘어난 1031개를 기록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글로벌 수준의 혁신성을 가진 국내 기업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반대로 보험업계에 혁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은행권 수장들을 만나 ’금융외교’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금융의 국제 진출을 위해 디지털 결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은행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고 전 금융권이 대상이다. 이 때문에 더욱 보험산업이 걱정된다. 냉정하게 표현해서, 타 금융권은 혁신을 위한 일말의 노력이라도 하고 있는데 보험산업은 전진이 더딘 상황이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 모두 새해가 되면 보험출입 기자들을 불러 모아 신년 계획을 발표한다. 역대 협회장 스타일에 따라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보험산업의 디지털 전환’이란 맥락은 동일했다. 가령 2020년, 손해보험협회를 이끈 김용덕 전 협회장이 ‘민관 합동 인슈어테크 추진단’ 발족을 추진했지만 이후 관련 소식이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2023년 정지원 전 손보협회장은 의료 마이데이터 활용 기반 환경 조성과 AI 데이터 라이브러리 공동 구축 지원을, 같은 해 정희수 전 생보협회장은 토탈 라이프케어 산업을 추진했으나 눈에 띄는 사례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올해 초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국내 주요 보험회사가 인슈어테크를 활용한 사례로 ▲AIA생명·흥국생명의 건강증진형 보험 ▲DB손보·삼성화재·KB손보의 운전습관 연계 보험 ▲교보생명의 실손보험금 자동청구시스템 사용자 인증 서비스 ▲KB라이프의 보험증권 진위 검증 서비스 등이 전부다. 

모 보험사 상무가 속내를 밝힌 것처럼, 각 회사가 보험상품과 서비스 퀄리티 향상을 위해 자원을 투자하기보단 박리다매식 영업 확장과 이를 통한 단기실적 향상에 안주한 탓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안타깝지만, 감시자(Watchdog)가 되어야 할 언론 역시 후선(Back-end)의 디지털 혁신성 보단 일선(Front-end)의 보험대리점(GA) 영업행위 혹은 상품약관 상 논쟁에 더욱 관심을 두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보험협회장 간담회에서 ‘마이데이터 추진전략’을 질의하던 기자에게 “돈키호테 같은 질문”이라며 핀잔을 준 보험전문지 기자도 있었다.

누군가 ‘보험산업의 혁신성 부족’을 꼬집을 때, 업계는 한국시장 특유의 의료계 집단 반발과 열거식(Positive) 규제 탓,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손해율을 핑계삼으며 “형편이 나아질 때 더욱 신경 쓰고 노력하겠다”고 애둘러 표현할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형편이 넉넉한 산업은 없다. 대부분 산업이 녹록지 않은 형편에도 상품 및 서비스의 혁신을 위해 연구개발(R&D)에 집중한다. 반면 국내 보험산업은 마치 담합을 했거나 자포자기라도 한 모습이다.

혹자는 “녹록지 않은 형편에도 원수(보험)사들이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왜 굳이 총대를 매고 정부, 의료계, GA와 싸워가면서 혁신에 투자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우물 밖을 벗어나 바깥 세상을 한 번 보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 보험사 오스카헬스는 고객의 평소 활동량 측정을 목적으로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전용 앱을 통한 의사와의 원격진료를 지원한다. 중국 중안보험 역시 혈당측정 단말기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이를 통해 전송되는 혈당데이터를 분석해 갱신 보험료에 책정한다. 일본 네오퍼스트라이프는 건강검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산출한 건강연령에 의해 보험료를 산정한다.

주운 폐지를 모아 담은 손수레를 끄는 노인. 연합뉴스 제공.

글로벌 시장과 비교해볼 때 국내 인슈어테크의 도입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말 초고령사회(65세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초과)로 진입한 대한민국은 경기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쪼그라드는 내수시장에서 각 보험사가 현실에 안주한 박리다매 영업방식을 유지하는 게 정답인지 혹은 지금이라도 혁신을 위해 맞대응 하는 게 맞는지, 듣기 달달한 목소리가 정답인지, 아니면 쓴소리가 필요한 지 묻고 싶다.

무엇이 진짜 보험 산업을 위한 충언인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산업군 종사자 모두가 답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이제는 보험연구원이나 각 협회에서 좋은 이야기만 논의하고 끝낼 게 아니라 각 회사가 발 벗고 나서서 혁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시간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