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풀기 끝낸 최태원 회장, SK 리밸런싱 큰 그림은?
SK 최태원, 사내이사 재선임·대표이사 회장 재선임…3년간 또 그룹 진두지휘 포트폴리오 재정비 속도…계열사 IPO 추진 과정 속 주주설득 등 과제 남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도 SK(주) 사내이사로서 책임경영에 나선 가운데 오는 2분기부터 한층 더 그룹 리밸런싱(사업재편) 작업을 가속화한다.
SK그룹은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불확실한 경영환경 타파와 수익성 개선, 재무 건전성 강화 등을 위해 비주력 자산의 청산 및 매각을 실시하는 한편 핵심 성장동력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정보공시에 따르면 SK그룹이 지난해부터 리밸런싱 작업을 시작한 결과, 현재까지 SK(주)에서 흡수합병된 종속기업은 19개사, 지배력을 상실한 기업은 4개사, 청산한 기업은 26개사, 매각한 기업은 57개사로 나타났다. 106개사가 SK(주)의 종속기업에서 제외됐다.
이는 앞서 ▲2021년 30개사 ▲2022년 28개사 ▲2023년 51개사 등이 제외된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리밸런싱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등 성과 긍정적
최 회장의 리밸런싱 작업에는 대표적으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SK온과 SK앤텀·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의 합병 등이 있다.
SK이노베이션과 E&S 합병은 지난해 선제적으로 이뤄지면서 실질적인 성과를 얻은 상태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159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20.2% 늘어났다. 지난해 11월부터의 E&S의 실적이 반영된 결과다. SK온과 SK앤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의 합병은 올해 초 실시돼 이번 1분기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최정욱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자회사들의 실적 부진으로 주주환원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었지만 기업가치 제고 계획대로 자산매각이익을 배당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기업가치 제고 의지를 시장에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며 "자산 리밸런싱을 통해 부진했던 자회사들의 재무구조 개선이 기대되면서 별도 영업수익은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수익성 개선을 위해 SK스퀘어의 크래프톤 지분 매각, SK네트웍스의 SK렌터카 지분 매각 등에 이어 차량 공유업체 쏘카를 비롯해 SK스페셜티 등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SK스페셜티는 매각가가 2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12월 한앤컴퍼니와 체결한 계약이 이번 상반기에 마무리되면 유동성 향상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가 모이고 있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으로 신(新)성장동력인 AI(인공지능) 기반 사업들에 투자한다는 전략이다. 최 회장의 지휘 아래 SK그룹은 향후 5년간 100조원을 AI와 반도체 분야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통해 AI 반도체와 데이터 센터 등 다양한 사업을 아우르며 종합 AI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다.
이 가운데 최 회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SK(주)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직후 이어진 이사회에서는 대표이사 회장으로 각각 재선임되면서 한 번 더 책임경영에 나섰다. 3년간 더 SK그룹을 전면에서 이끌게 된 셈이다.
이와 함께 그룹 내에서 사업 기획과 포트폴리오 전략 수립 등의 역할을 수행한 강동수 SK(주) PM부문장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강 부사장은 리스크 매니지먼트, 경영기획 등 분야의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강 부사장이 이끌고 있는 PM부문은 그룹 리밸런싱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사내이사로 선임된 만큼 최 회장을 도와 그룹 리밸런싱의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SK(주) 사외이사로 이관영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을 발탁했다. 이 연구원은 에너지·화학 분야 전문가로, SK그룹의 리밸런싱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SK이노베이션의 실적을 개선하고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병과 매각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을 도와 그룹 리밸런싱에 속도를 낼 전문가들까지 중요 자리에 배치한 만큼 최 회장이 본격적으로 리밸런싱 방향성을 구체화하고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가 모이고 있다.
SK 리밸런싱 일환 '계열사 IPO', 기업가치 인정, 주주설득 등은 넘어야 할 산
특히 오는 2분기부터는 주요 계열사의 IPO(기업공개)를 추진할 예정이다. 수익성 개선과 재원 확보를 위한 발걸음이다.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자회사인 SK엔무브의 IPO를 가장 먼저 추진할 전망인 가운데 향후 SK에코플랜트 IPO, SK온 IPO 등이 남아있다.
SK엔무브는 최근 안정적인 실적을 내고 있어 기업가치 6조원 안팎을 기대하고 있다. SK온은 적정한 기업가치를 인정 받기 위해 연간 흑자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IPO를 위해서는 주주 설득이 최대 과제다. 최근 재계에서 상법개정안 찬반 논란, 주주가치 희석 문제 등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주사나 모회사가 있는 기업의 IPO 추진을 놓고 '중복 상장'이라는 지적도 거세다.
최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초불확실성 시대에 상법까지 개정해야 하냐"고 상법개정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밝혔는데, 이에 대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일리 있는 말"이라면서도 "진정성이 있으려면 SK이노베이션의 합병 문제 등에 시장 충격, 주주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경영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으로, 최 회장의 리밸런싱 작업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본격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SK그룹은 중복되는 투자·사업으로 인한 비효율을 최소화하고 적절한 통폐합을 통해 핵심 사업영역에 역량을 집중하고자 전면적인 리밸런싱 작업에 돌입했다"며 "계획대로 완료되면 풍부한 현금 유입으로 지주회사 SK 및 관련 계열회사들의 재무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진단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