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구 함지산 산불, 피해 한달 영덕은 지금...“그래도 살아야 안 되겠능교”
3월 산불로 영덕군 올 예산 절반 3170억 원 피해 경정리·석리·노물리 영덕대게로 주변 나무 초토화 석리마을 90% 전소, 해안로 인근 펜션 피해 막심 노물리 주택 절반 피해, 800여 이주민 지원 시급
대구 함지산 산불이 진정되는 기미를 보인 직후 다시 재발화해 주택지를 위협하는 가운데, 스트레이트뉴스는 지난 3월 초대형 산불의 최대 피해 현장을 다녀왔다.
지난 3월 22일 의성에서 처음 타오른 화마는 25일 동해 끝자락 영덕군 석리를 거쳐 바닷가 마을 노물리까지 총 1만6577ha의 산림을 집어삼키며 올해 영덕군 예산 6171억 원의 절반이 넘는 3170억 원의 피해를 남겼다(국가재난안전관리시스템).
이번 산불로 10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당한 가운데, 영덕군에서만 주택 1652채와 공장·판매소 400여 곳, 태양광 발전시설 228곳, 차량 46대 등이 타들어 가면서 800여 명이 삶터를 잃었다.
육지에서는 농작물 121ha와 농업시설 1136동, 농기계 2397대, 한우 70마리, 돼지 86마리, 닭 1450마리, 꿀벌 4379군이 소실됐고, 바다에서는 어선 29척과 양식장 2곳, 수산물 가공공장 3곳, 어망 76건 등이 전소됐다. 피해를 입은 교회와 사찰도 18군데다.
동해 조망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해맞이공원과 별파랑공원 내 나무들, 트래킹 명소인 영덕블루로드 해안산책로 4.5km를 포함,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해파랑길 5.3km 도로 옆 나무들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거나 연기에 노출돼 누렇게 죽어갔다.
참화 현장을 다녀왔다. 북쪽에서 유명 드라이브 코스인 왕복 2차선 영덕대게로를 타고 경정항이 위치한 영덕군 경정리로 들어서는 순간, 날아든 불똥에 내부가 타버린 상업시설들이 보였다.
경정1리에서 경정3리를 거쳐 석리마을까지 2.3km 거리를 시커멓게 타들어 갔거나 연기로 누렇게 떠서 죽은 나무들과 동행했다.
경정리 경계를 넘어 석리로 향하는 내내 죽은 나무들의 행렬이었지만, 석리마을의 처참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갯길을 막 넘어 마주친 석리마을 풍경은 먼산부터 코앞까지 화재 당시 긴박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석리마을은 20여 채가 좀 넘는 주택 중 2~3곳만 용케 화마의 불길을 피했을 뿐, 교회를 포함한 주택 90% 이상이 검게 그을린 앙상한 뼈대만 남긴 채 방치돼 있었다.
“우리집? 다 탔는데? 이장이 빨리 가자꼬 그라더만, 갔다 와 보니까 이래 다 타뿌고 아무것도 없더라 카이... 이래가 우예 살아라꼬 이카노(이러나).”
90세 넘은 할머니가 이제 갓 푸성귀가 올라오는 밭을 넘어다보면서 푸념했다. 밭에 뭘 심었느냐는 질문에, 대뜸 “아야, 뭐라도 심어가꼬 묵어야지, 안 그라모 죽을 끼가?” 하는 답이 돌아왔다. 집이 날아간 판에 채소 따위 심어서 뭐 하나 싶어 한동안 넋 놓고 있었다는 얘기와 함께.
석리마을 반대편, 석동방파제 아래를 내려다보니 화마가 석리어촌체험마을 옆 산자락을 타고 육지 끝까지 내려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할머니와 헤어져 노물리로 가는 길, 석동마을에서 노물리 입구까지 이어지는 영덕대게로(2.5km) 주변은 고물 집하장이나 펜션들의 무덤을 방불케 했다.
고갯마루를 내려와 도착한 노물리, 입구부터 폭탄을 맞은 듯한 모습이 이어졌다. 어업인회관은 시커먼 재가 붉은 조적조 건물을 뒤덮고 있었고, 맞은편 마을회관 2층 경량철구조물은 폭격을 맞은 듯 녹아내려 있었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유일한 도로 양쪽에서는 각종 공사 관련 차량과 작업자, 포클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피해 주택들을 철거하고 있었다. 통상적인 공사 현장과 다르게, 노물리 현장은 소리치는 사람도, 뛰어다니는 사람도 없이 포클레인 소리만 들려왔다.
부모님 집이 전소돼 학업을 중단하고 내려와 피해 복구를 돕는 한 대학생을 만났다.
“노물리에 300여 가구가 사는데요, 절반 정도가 피해를 입었어요. 지금 어르신들 청소년해양센터나 펜션 같은 곳에 계시는데, 다음 달 25일까지 철거를 다하고 나면 철거한 자리에 이동식 주택을 설치해 준대요. 그거 끝나면 보상방안을 논의한다고 들었는데, 군에서 피해지원금으로 집마다 30만 원씩 지원한 걸로 알고 있고요.”
그런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학생을 불렀다.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포구에서 수확해 온 미역을 널고 있었다.
“인자 미역이 나는데, 얼른 해야지. 이것도 다음 주 넘어가면 끝나 뿌리거든.”
곁에 쪼그려앉아 미역을 펴던 할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맞다. 이거 퍼뜩 해놔뿌야지. 그래도 살아야 안 되겠능교. 집이야 벌써 다 타뿐 거 우짤 끼고? 가만 있으면 누가 밥 준다 카더나? 우째 되겠지.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나. 그런데 안 있소, 그놈의 산불이 우리 아저씨는 안 잡아가고 우짠다고 집만 태아뿌노 말이다, 어이?”
할머니의 익살에 깔깔웃음이 포구를 가득 채웠다.
이주민 800여 명은 현재 국립청소년해양센터, 울진해양수련원, 마을회관, 펜션 등지에 머물고 있다. 이 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가운데, 영덕군은 전국 22개 업체와 조립식 주택 공급계약을 맺고, 5월 말까지 주택을 철거한 자리에 이주민 임시주거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번 산불피해 복구를 위한 예산은 정부 추경안에 이미 반영돼 있다. 경상북도는 이번 초대형 산불로 가장 피해가 큰 노물리 마을을 ‘피해 복구’가 아닌 ‘해양관광마을 재건 모델’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철우 경상북도 도지사는 지난 27일 주재한 ‘경상북도 전화위복 버스’ 현장회의에서 “임시주택 공급이 아직 다 되지 않았는데 최대한 빨리 공급하고, 특별법 제정 추진, 정부 추경예산 조속 집행, 영농지원, 장마와 홍수 등 2차 피해 방지, 공공형 일자리 사업 등을 즉각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김광열 영덕군수는 별도로 국회에 산불피해 복구 및 지원특별법을 건의할 계획이며,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타격과 관광업계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국비공모사업 우선 지원, 마케팅 활성화 사업 국비 지원, 문체부 관광기금 특별융자 등을 요청했다.
[스트레이트뉴스 김태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