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시대 개막] 흙수저 딛고 '소년공 신화' 현실로
주경야독 검정고시로 중앙대 법대 진학 시민운동가, 시장, 도지사 거쳐 정치 입문 뼈아픈 대선 패배 후 '흉기 피습' 수난까지 이념·지역갈등 넘어 통합..'먹사니즘' 기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마침내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이재명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 1조를 강조하며 그에게 부여된 '권력'의 의미를 애써'권한'으로 축소시킨다. 그런 이유로 새 정부 이름을 '국민주권정부'로 정했다
그가 겪은 시련과 좌절은 윤석열 정부 시기 3년 뿐이 아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 뻔한 흉기 피습, 무소불위 검찰의 기소 남발, 진영을 가리지 않는 내외부의 '악마화' 프레임에 시달려야 했다. 가난한 '소년공'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지난 인생 '역정(歷程)' 혹은 '역전(逆轉)'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아무리 철심장이라도 아프다
1963년 12월 8일(호적 1964년 12월 22일) 경북 안동에서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난 이재명 대통령은 초등학교 졸업 후 경기도 성남시로 올라와 곧바로 공장 생활을 시작했다.
가난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중학교 대신 공장에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프레스기에 손목이 눌리는 사고로 팔이 굽는 평생 장애(6급)를 갖게 된다. 그가 군 면제를 받은 사유다.
이 대통령은 공장 생활 중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며 부러음을 느꼈다고 한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도 주경야독, 1년 3개월 만에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다.
이 대통령은 책 <나의 소년공 다이러리>에서 당시 17세였던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했다. "학생답게 학교나 다니면서 공부하며 열심히 뛰놀 나이에 직장 아닌 직장에 매달려 고생하는 그 애들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아무리 철심장이라도 아픈 것이다."
성남 변호사, 성난 변호사
중앙대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그는 졸업후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에서 당시 변호사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듣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결심하게 된다.
이어 그는 향후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 되는 경기성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성남시민모임' 활동을 하면서 시민운동에 본격 가담한다. 변호사 시절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 등을 파헤치며 지역 사회에서 이름을 알렸다.
정치 입문을 결심하게 된 건 당시 성남시의회의 횡포 때문이다. 2004년 성남시에 있던 종합병원 두 곳이 폐업하자 이 대통령은 시민들과 함께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시작해 약 10만 명의 서명을 시의회에 조례안으로 제출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이 장악한 시의회는 해당 조례안을 단 47초 만에 날치기로 부결시켰다. 이에 분개한 이재명이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은 역사 속의 한 장면이 됐다. 심지어 그는 이에 항의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돼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는다. 이에 억울한 '전과' 중 하나로 남았다.
시장, 도지사, 그 다음은...
이재명은 이듬해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현실 정치에 입문했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돼 재정 위기 상황에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여 주목받았다. 2014년 재선에 성공, '청년배당', '무상 산후조리 지원', '무상 교복 지원' 등 3대 무상 복지 정책을 시행했다.
2016년에는 지방재정 개편에 반대하며 단식 투쟁을 벌였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 집회에서 지자체장 중 유일하게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여 주목받았다.
이같은 배경을 도약대로 삼아 그는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그의 특유의 추진력과 '실적 중심' 인사 기준에 복지부동 공무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곡을 점령한 상인들의 불법 시설 철거, 닥터헬기 이착륙 확대,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등은 주요 치적으로 기록된다. 그 스스로 대선 유세 당시 이 시기를 여러 차례 언급하며 자부심을 표출한 바 있다.
화해를 권하는 자가 배신자다
대선 후보로 처음 나선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파면된 후 치러진 2017년 제19대 대선이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에서 그는 문재인 후보(57%)와 안희정 후보(21.5%)에 미치지 못한 21.2%의 득표율로 최종 후보로 선출되지 못 했다.
2021년 제20대 대선 경선에서는 50.29%를 기록해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차기 대권을 노리며 승승장구하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39.14%에 그치며 그에게 후보 자격을 내줬다. 당시 대세론에 취해있던 이 전 총리는 '화해와 통합'을 내세우며 이명박·박근혜 사면론을 꺼냈다 역풍을 맞았다.
'이재명계'와 '이낙연계'로 갈리며 한동안 계파 갈등에서 허우적 거렸던 민주당은 2024년 22대 총선 공천에서 '친낙계'가 대거 탈락하며 '이재명 단일 체제'로 바꼈다.
당권을 빼앗긴 이낙연 전 총리는 21대 대선에 이르러서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며 민주당계에서 영원히 멀어졌다.
천운이 목숨을 살렸다
20대 대선 본선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그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48.56%)에 0.73%p 뒤진 47.83%의 득표율로 분패했다. 이는 대선 기준 헌정 사상 최소 표차다.
심기 일전 차기 대권주자 입지를 재차 굳혀가던 2024년 1월, 그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방문 현장에서 흉기 피습을 당해 중상을 입는다. 당신 민주당 총선 영입 인재였던 강청희 전 의사협회 부회장은 "천운이 목숨을 살렸다"고 말한 바 있다.
시련은 신체적 위협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적 제거'를 위한 검찰 권력의 집요한 행태는 계속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현재의 그에게도 아직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진행 중이다. 해당 사건은 △공직선거법 위반(파기환송심) △위증교사(항소심)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성남FC(1심) △쌍방울 대북송금(1심)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1심)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의 경우 지난 5월 1일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선고가 내려지면서 '사법기관 선거개입' 논란을 일으켰다.
현직 대통령은 헌법 84조에 따라 내란죄나 외환죄를 제외하고는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다. 다만 '소추'라는 표현이 공소 제기만을 의미하는지, 재판까지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내란 종식과 민생 회복, 여전히 자갈밭
윤 정부의 국정 난맥에 더해 김건희 여사에 대한 각종 의혹이 논란을 일으키면서 민심이 등을 돌리기 시작, 민주당은 2024년 22대 총선에서 단독 175석을 확보하며 거대야당으로 부상했다. 이후 그는 당 대표 재선에 성공하고 2025년 4월 치러 21대 대선 당내 경선도 무난히 통과했다.
윤 전 대통령의 경악스런 12.3 비상 계엄 선포로 대한민국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국회의 계엄 무효 의결과 탄핵안 통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를 거쳐 6.3 대선에 이르기까지 약 4개월이 소요됐다. 이후 약 20여 일간의 공식선거운동기간과 재외국민투표, 사전투표를 거쳐 마침내 3일 본투표를 마지막으로 이재명은 당선증을 거머쥐게 됐다.
이재명의 앞길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미완인 '내란 종식'을 조기에 완성해야 하고 갈라진 민심도 수습해야 한다.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경제 위기 극복,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한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도 필요하다.
그가 쏘아올린 '먹사니즘'이라는 화두가 캄캄한 어둠속 대한민국을 비추는 등불이 될 지 지켜볼 일이다. 어쩌면 그가 걸어온 길보다 험한 고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른다.
그의 수난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윤 정부의 폭압과 이를 방조한 당시 여당의 기만과 비겁에 분노한 온 국민의 것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설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