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등한시한 LFP 승기 잡아야 할 때

K배터리, 미국 내 전기차·ESS용 LFP 배터리 생산라인 도입 착수 및 양산 준비 LFP 시장 선점한 중국과 격차 좁히는 것 과제…미중 패권 전쟁 반사이익 기대감

2025-06-04     함영원 기자
LG에너지솔루션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에서 직원이 배터리 생산 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

국내 배터리 업계가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LFP(리튬철인산) 배터리에 명운을 걸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글로벌 LFP 배터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지만 기술력과 미중 패권 전쟁 등 빈틈을 노려 승기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계획대로 중국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LFP 배터리 양산 채비에 분주하다. LG에너지솔루션이 가장 먼저 미국에서 ESS(에너지저장장치)용 LFP 배터리의 대규모 양산에 돌입한 가운데 삼성SDI와 SK온도 내년 양산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 양산에 나섰다. 롱셀 기반 ESS 전용 파우치형 LFP 배터리를 생산할 예정으로, 이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내에서 ESS용 LFP 배터리를 대규모로 양산하는 유일한 글로벌 업체가 됐다.

미국에 생산라인 구축을 마치면서 현지 수주를 더욱 확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OCI홀딩스의 북미 ESS 프로젝트에 ESS용 배터리를 공급하는 사업 협약을 맺는 등 ESS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전기차용 LFP 배터리 공급도 연내 진행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7월 프랑스 완성차 업체 르노와 전기차용 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으며 최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테네시주 합작공장 일부를 전기차용 LFP 배터리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는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

삼성SDI도 미국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GM과의 합작공장에 전기차용 LFP 배터리 생산라인을 도입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 생산라인 도입을 위한 소재 조달과 장비 반입 등의 계획을 짜는 중이다.

ESS용 LFP 배터리 선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 양산을 목표로 잡은 가운데 지난 3월 북미 전력 기업 넥스트레아에너지와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여기에 최근 진행한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헝가리 각형 및 LFP 배터리 라인 생산 능력 확대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3사 중 가장 후발주자인 SK온 역시 LFP 배터리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SK온도 지난해 9월 미국 IHI 테라선과 북미 ESS 사업 협력 강화를 위한 MOU(양해각서)를 맺은 바 있으며 내년 LFP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LFP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속도를 내는 이유는 가격이 높은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자 완성차 업체들 사이에서 저가 전기차를 출시하고 여기에 기존 삼원계 배터리 대신 LFP 배터리를 탑재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AI(인공지능) 관련 산업의 확대로 데이터센터 수요도 급증했는데, 이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ESS에 적합한 배터리가 LFP이면서 LFP 수요가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LFP 배터리는 화재 위험성이 낮고 동일한 부피로 더 많은 전기 저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LFP 시장에 뒤늦게 나섰다는 점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NCM 등 그간 삼원계 배터리에 치중해왔는데, 반면 중국 업첻르은 일찍이 LFP 시장에 진출해 LFP 수요를 꽉 잡고 있는 상태다. 특히 전기차 분야에서 중국 업체들이 가파른 성장을 하는 중으로,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이 무색한 상황이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글로벌 전기차 탑재 배터리 사용량은 약 308.5GWh로, 전년 대비 40.2%나 늘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17.9%로, 전년 대비 4.6%p 줄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성장하고 있는데 3사 점유율은 하락하고 있는 셈이다. 점유율 1,2위는 중국 CATL과 BYD다.

업계에서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LFP 배터리 시장에 늦게 나선 만큼 중국 업체들과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 가장 큰 과제로 보고 있다. 타 산업인 반도체의 경우 HBM(고대역폭메모리) 진출 및 개발 시기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격차가 큰데, 후발주자가 단기간에 격차를 좁히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로 꼽힌다.

'꿈의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전까지 LFP 배터리가 과도기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LFP 배터리 시장에서 우위에 올라서야 하는 것이 시급한 시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고체 배터리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화재 위험성 때문에 전기차 시장 성장세도 더딜 전망"이라며 "이 기간 LFP 배터리가 글로벌 배터리 수요 대부분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긍정적인 점은 미국와 중국의 패권 전쟁으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차량 가격을 낮춰야 한다"며 LFP 배터리 사용에 나선 GM도 미국 정부의 중국산 배터리 및 소재 배제 정책에 따라 중국산 소재와 부품을 최소화하기 위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 업체들과 전기차용 LFP 배터리 생산라인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내에서 AI 산업 기반으로 ESS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데, 이 ESS에 들어갈 LFP 배터리 납품도 중국 업체를 대신해 국내 업체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본래 미국 ESS 시장에서 90% 가량을 중국 업체들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고율 관세를 부과한 탓에 중국산 LFP 배터리들이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SNE리서치는 관계자는 "미국은 최근 강화된 중국산 배터리 및 소재 규제 움직임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중심에 서고 있다"며 "이러한 정책 변화는 북미 시장 진출 및 점유율 확대를 노리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안회수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최종 사용자가 결국 저렴한 배터리를 원하고 있다"며 "장기전에서 LFP 밸류체인에 올라탈 준비를 마친 기업들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