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외화부채, 리스크인가 기회인가?
“외화부채 이슈..각 기업 별 미시적 정책 대응 필요” 한 목소리
기업이 보유한 외화부채는 환율 급등기 리스크일까, 아니면 수출을 위한 유연성일까.
금융학계에서 “외화부채가 오히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외화노출이 클수록 자금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됐다.
◆ 김성룡 존스홉킨스大 교수 “기업 달러 부채, 수출 촉진 요인 기대”
5일 한국국제금융학회와 한국금융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급변하는 경제환경 하의 무역과 국제금융의 신질서’를 주제로 공동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 김성룡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이 보유한 달러 표시 부채가 무조건적인 리스크가 아니라 오히려 수출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달러 부채를 가진 기업일수록 수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환율 변동에 더 빠르게 대응하는 특징이 있다”며 “특히 외화 부채는 수출 확대를 위한 투자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 간 특성이 글로벌 무역 충격에 대한 반응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달러 부채를 보유한 기업이 오히려 글로벌 무역 환경에서 더 높은 적응력을 보인다”고 말했다.
존스홉킨스대학교의 관련 연구에 따르면, 달러 부채를 갖고 있는 기업들은 환율 변동기에도 수출액이 더 빠르게 반등하거나 줄어든 폭이 작았다.
환율 상승(달러 강세) 국면에서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이 부채 상환 부담을 일부 상쇄하며, 오히려 재무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사례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김 교수는 “기업 전체를 평균값으로 놓고 설계한 정책은 특정 대기업 중심의 효과에 머물 수 있다”며 “수출 정책이나 금융 규제는 기업의 규모, 부채 구조, 외화 자산 유무 등을 감안해 훨씬 미시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며 “중견기업이나 신흥시장 기업처럼 금융 접근성이 제한된 기업일수록, 정책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고 덧붙였다.
◆ KDI “외화부채 가진 기업, 수출입 활동 위축 우려”
김준형 한국개발연구원(KDI) 동향총괄은 “앞으로 기업 특성을 감안한 미시 기반 정책 설계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달러화 부채를 가진 기업이 글로벌 금융 환경 변화에 따라 무역 활동에서 받는 충격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총괄은 “국제 거래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단순히 환율이나 금리 변화에 일괄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며 “기업별 특성, 특히 달러화 표시 부채의 규모와 내재적 위험이 글로벌 교역에서 큰 차이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외화부채를 많이 보유한 기업은 달러 강세 국면에서 수입 원가가 상승하고 자금조달 비용도 가중돼 수출입 활동이 위축되기 쉽다.
반면 내수 중심이거나 외화노출이 낮은 기업은 같은 충격에서도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 그는 “동일한 경제 충격이라도 기업마다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거시적 대응책만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총괄은 “외환정책이나 무역금융 지원책 등도 이런 기업 간 특성을 반영해 미시적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관련 분석에 따르면, 달러 부채가 많은 기업일수록 무역 위축 속도가 빨랐고 회복도 더뎠다.
이어 김 총괄은 “국가 정책은 평균값이 아니라, 실제로 충격을 받는 기업들의 속성을 분석한 후 맞춤형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미국 관세율, 1938년 이후 최고치..대외 압박 심화”
한편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세계 경제의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한국 역시 기존 수출 중심의 성장 전략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외경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현재 세계 경제는 거센 파고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컨테이너선과 같다”며 “수십 년간 유지돼온 다자 자유무역 체제가 자국 우선주의, 공급망 교란, 지역 분쟁 등으로 동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성장, 고물가, 무역 환경의 불안정성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IMF조차 ‘지난 80년간 유지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해서도 그는 “미국의 실효 관세율이 1938년 이후 최고 수준인 14~15%를 기록하고 있다”며 “만약 트럼프 2기 행정부가 145%의 대중 관세를 실제 시행한다면, 미국의 관세율은 1872년 이후 가장 높은 30% 초중반대로 치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고물가, 달러 강세뿐 아니라 경기 둔화, 안전자산 이동, 금리 방향 등 복합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는 매우 흥미로운 실증 분석의 대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내 수출량의 40%를 차지하는 대미·대중 수출이 약화되면서 5월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3% 줄었고, 미국의 금리 및 환율 변동도 국내 금융시장에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외환시장 안정과 거시경제 대응을 위한 정부와 당국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한국 경제는 이제 상품 수출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서비스 수출, 해외 투자, 인력 이동, 기술 교류 등 다면적인 대외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계는 이제 과거의 양극 체제가 아닌 다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으며, 인도·브라질·멕시코 등 신흥국의 부상은 위험이자 기회”라며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전략으로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현 한국구제금융학회 회장은 “최근에는 무역과 국제금융의 단독 접근만으로는 글로벌 경제를 완전히 해석하기 어렵다”며 “두 이슈를 함께 보며 글로벌 경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항용 한국금융연구원장이 “지금 세계경제의 변화는 과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양상”이라며 “글로벌 무역과 금융 질서의 전환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국제 정세의 변화와 불확실성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며 “세계화 질서의 재편을 목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