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감세법, 韓 전기차 수출 ‘빨간불’…정책 지원 시급
美 세액공제 조기 종료에 전기차 판매 19억달러 감소 우려…배터리 산업은 ‘중국 리스크’ 넘는 게 관건
한국 전기차 산업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법(OBBBA) 시행으로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2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전기차 세액공제 조기 종료로 한국산 전기차의 미국 내 판매가 최대 4만5000대, 약 19억5508만달러(약 2조6800억원)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배터리 산업은 신규 공급망 요건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중국 의존도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어 장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발효된 OBBBA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조치다. 핵심은 ▲전기차 구매세액공제 조기 종료(2025년 9월 30일) ▲배터리 생산세액공제(§45X)에 공급망 요건 추가다. 특히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기존 2032년 말까지에서 7년 이상 앞당겨 종료되면서, 현대차를 포함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구축해온 북미 전기차 시장 전략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전기차 세액공제가 폐지되면 미국 내 제조사의 전기차 판매량이 연간 최대 37%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한경협은 이를 근거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미국 판매가 약 12만대에서 4만5000대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금액으로는 약 19억5508만달러(약 2조6800억원)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용공장(HMGMA) 건설에 약 80억달러(약 11조원)를 투자하며 북미 시장 확대를 추진해왔으나, 이번 법 개정으로 투자 회수 리스크가 커졌다. IONIQ5, EV6, GV70 등 5개 차종이 내년부터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었으나, 제도 종료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사실상 혜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조치가 단순한 보조금 축소를 넘어, 공급망 재편을 노리는 미국의 전략적 도구라는 점이다. 핵심광물의 조달 비율, 배터리 부품의 북미산 비율 등 복잡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세액공제는 물론 시장 진입 자체가 제한될 수 있다. 한국 배터리 3사가 미국 내 생산거점 대부분을 완성차 업체와 합작으로 운영 중이지만, 전기차 수요 위축 시 가동률 저하와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다만 배터리 생산세액공제는 적용 기간을 유지된 채 새로운 ‘금지 외국기업(PFE)’ 개념이 도입됐다. 기존 IRA ‘해외 우려 기업(FEOC)’보다 적용 범위가 확대됐으나, 부품·설비·서비스 등 PFE 개입이 일정 비율 이하일 경우 세액공제가 허용돼 한국 기업에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한경협 관계자는 “한국 배터리 3사가 미국 시장에서 48%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고, 지난해 기준 1조8000억원 규모의 세액공제를 수령했지만, 원료 채굴·정련·소재 제조 전반에서 중국 의존도가 최대 90%를 넘는다”며 “중국을 제외한 대체 공급망 확보 없이는 중장기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전기차·배터리 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정책적 대응도 요구됐다. 한경협은 ▲국가첨단전략산업기금 신속 조성 ▲R&D·인력개발비 직접환급제 도입 ▲국내 생산 세제 도입 ▲공급망안정화기금 조성기간 연장 등을 주요 과제로 제안했다. 특히 50조원 규모로 계획된 산업기금은 법 개정 지연으로 하반기 집행이 불확실하다고 지적하며, 산업은행 내 전담부서 설치 등 실행력 강화를 주문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전기차·배터리 산업은 미래 제조업의 핵심이자 공급망 패권의 관건”이라며 “글로벌 정책환경이 빠르게 재편되는 만큼, 정부는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감세법은 한국 전기차 산업에 ‘잔혹한 예고편’이자, 산업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신호탄이다. 기업들은 현지 대응 전략을 재정비하고, 정부는 뒤따르는 보조 엔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글로벌 EV 항로에서 한국이 좌초되지 않을 수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응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