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석유류 B2B 온라인 플랫폼 등장… 유통 시장 지각변동 예고
석유유통시장 내 첫 온라인 플랫폼…법적 논란 및 업계 파장 촉각 석유사업법 회색지대 논란…“단순 알선” 유권 해석 정유사-석유공사, 기존 유통 체계에 파문
석유류 제품의 판매를 중개하는 B2B 온라인 플랫폼이 새롭게 등장해 석유유통시장 내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주유소는 저렴한 가격으로 기름을 구매하고, 석유 대리점은 재고를 효율적으로 소진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현행 석유사업법상 허용 여부에 대한 논란과 함께 기존 정유사 및 석유공사의 유통 체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해당 A플랫폼(가명)은 석유대리점을 입점업체로 추가 모집 중이다. 입점 업체들을 상대로 주유소 공동구매를 연결한다. 플랫폼 이용자인 주유소는 이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석유제품을 살 수 있다.
A플랫폼은 외부감사대상법인 등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대리점만 입점해 있다고 홍보 중이다. 또 여느 온라인 플랫폼과 다르게 결제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입점 대리점 계좌로 직접 입금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티몬, 위메프 등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벌어졌던 사고를 의식해 직접 입금 시스템을 도입한 듯 보인다.
공동구매 방식으로 가격협상력을 올려 현물 구매를 유도하는 게 이 플랫폼의 강점이다. 실제 A플랫폼에서 체결됐다고 공개한 공급가격은 해당 지역 내 상당히 저렴한 수준으로 파악된다. 입점 대리점의 경우 석유 재고 소진 방법으로써 플랫폼을 활용해 수급 조절이 용이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석유사업법상 허용되는지 논란의 여지다. 석유류는 인화성이 강하고 국가 경제 및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에너지원이라 유통 과정에 엄격한 관리를 받는다.
특히 석유판매업자는 석유사업법상 저장탱크와 운송차량을 보유하고 품질 기준을 준수해야 할 의무도 가진다. 그런데 온라인 플랫폼은 자체 운영자산 없이 중개만 하면서 석유판매업자의 성격을 띤다.
온라인 플랫폼은 석유유통업계에서 거의 최초 등장한 사례라 유권해석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정부로부터 위법하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해당 온라인 플랫폼 유형에 대해 법상 ‘알선’ 행위에 해당되는데, 규제 규정이 특별히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유권해석은 한계도 지적된다. 추후 온라인 플랫폼이 커져 단순히 중개만 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석유류 소유권 이전 과정에 개입하거나, 가격 결정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결제 및 운송 과정을 주도하는 등 유통 행위 일부를 담당하게 되면 단순한 알선으로 보기 어려워서다. 온라인 플랫폼은 전통적인 유통 방식과 다른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기존 법규 해석에 ‘회색 지대’가 발생한다.
SK에너지,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정유사들은 온라인 플랫폼과 마찰이 생길 수 있다. 정유사들은 브랜드 계약 주유소들에게 계약 물량 외 일부분은 현물시장에서 자유롭게 구매 가능하도록 관행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브랜드 주유소가 더 저렴한 공급가로 재고를 확보해 이윤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하지만 이같은 현물 구매가 늘어나면 당연히 정유사의 브랜드 주유소 공급 관리가 어려워진다. 판매경쟁이 심화되거나, 그로 인해 특정 정유사의 판매량이 감소할 수도 있다.
석유공사 역시 공급 대상인 알뜰주유소에 의무 구매 비율을 적용하고 있다. 알뜰 공급가보다 현물 시장 공급가가 저렴할 때는 비율을 지키지 않는 문제로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도입으로 기존 유통 경로에서 발생하던 세금 문제가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있고, 품질 관리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최종적인 책임을 질 것인지도 불분명해질 수 있다”면서 “정유사는 유통망 내 가격 및 물량을 통제하고 있는데, 플랫폼이 활성화 되면 기존 채널에 혼란을 주고 가격 통제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국회에선 티몬, 위메프 사태 이후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이 논의되고 있다. 플랫폼의 독과점 문제와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려는 목적이다. 입법 되면 계약서 작성 및 교부 의무가 강화되고 주요 거래 조건에 대한 사전 통지 의무가 부과될 수 있다.
자사 우대, 끼워팔기, 알고리즘 조작 등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도 금지된다. 손해배상 책임도 강화된다. 이 법안은 특정 산업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서, 석유류 판매 플랫폼에도 적용될 전망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이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