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배당소득세, 프랑스 자본시장 어떻게 망쳤나
2013년, 배당소득 최고세율을 45%까지 인상...결과는 시장 위축 배당소득 분리과세, ‘부자 감세’라는 정치적 구호에 갇혀서는 안돼
상법개정을 시작으로 자본시장에 지각변동이라 할 만한 제도들이 속속 입안되는 가운데, 주식 투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당소득세에 대한 논의도 한창이다.
한때 한국도 배당소득에 대해 단일세율의 분리과세를 적용했던 시절이 있었다. 1999년까지는 배당소득에 대해 15%(주민세 포함 16.5%)의 고정 세율로 과세했다. 투자자 입장에선 예측 가능한 세금 체계였고, 기업도 배당 확대에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금융실명제 도입(1993년)과 IMF 외환위기(1997년)를 거치며 자산 불평등 문제가 정치 이슈로 부상했고, 2000년부터는 '부의 재분배' 명분 아래 배당소득에 종합과세가 도입됐다.
즉, 소득 수준에 따라 세율이 점점 높아지는 누진세 구조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배당소득이 연간 2000만 원을 넘는 투자자들은 근로·사업·기타소득과 합산되어 최고 49.5%의 세금을 부담하게 됐다.
고배당 종목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순이익보다 세금 걱정을 먼저 해야 하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세금을 더 내고도 손에 쥐는 돈은 적은 기형적인 구조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어떤 결과를 낳을까. 장기투자는 위축되고, 배당 전략은 무의미해진다. 실제로 최근 국내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고배당주를 팔고 해외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을 옮기는 흐름이 뚜렷하다. 세금이 적고 환차익도 기대할 수 있는 미국 시장으로의 ‘세금 회피형 자금 이탈’이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배당 기준에 대한 변화가 일부 있긴 하나, 아직도 배당은 대부분 확정 수익이 아닌 기업 실적과 이사회 결정에 따라 달라지는 불확실한 현금흐름이다. 그럼에도 세법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잠재 수익'에도 미리 세금을 부과한다. 마치 도박에 참가비를 내고도 당첨금을 못 받는 것과 같은 셈이다.
배당소득세는 단순한 조세 논쟁을 넘어 한국 주식시장의 체력 약화와 직결되는 구조적 문제다. 특히 국내 개인투자자 비중이 60%에 육박하는 한국 자본시장 특성을 고려할 때, 세금이 수익 기대치를 갉아먹는 구조는 장기 투자 유인을 원천 차단하는 효과를 낸다. 이는 곧 기업의 자본 조달 기능 약화, 시장 유동성 하락, 코스피 체질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이미 해외에서도 배당소득세 역효과로 시장이 망가진 사례가 있다. 프랑스는 이 고배당 과세의 역풍을 먼저 경험한 나라다. 2013년, 프랑스 사회당 정부는 배당소득 최고세율을 45%까지 인상했다. 당시 고소득자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자본시장의 급속한 위축이었다.
BNP파리바 등 대형 상장사들은 배당을 축소했고, 배당성향이 40% 이상이던 기업 비율은 1년 만에 25%에서 14%로 급감했다. 투자자는 빠져나갔고, 프랑스 증시는 유럽 내 최저 수익률 국가 중 하나로 추락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고배당세 정책은 유럽 증시로의 장기 투자자 유입을 23% 감소시키는 효과를 낳았고, 연기금 등 기관자금의 탈출을 초래했다.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과도한 세율보다는 제도의 허점을 노린 환급 구조 문제로 큰 혼란을 겪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이어진 ‘Cum-Ex 스캔들’은, 동일 배당에 대해 여러 번 환급받는 방식으로 조세 회피가 벌어진 대표 사례다. 당시 50여 개 금융기관과 수십 개 펀드가 연루됐으며, 정부가 환수해야 할 세금만 6조원에 달했다. 이후 독일 의회는 배당세 환급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대부분 국가는 오히려 배당소득에 대해 분리과세 또는 세액 공제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기업이 이미 법인세를 납부한 뒤 주주가 배당소득을 받을 경우, 장기 보유 기준으로 20%의 낮은 세율만 적용한다. 일본 역시 금융소득에 대한 원천징수형 분리과세(약 20%)를 채택하고 있고, 일정 기간 이상 보유하면 세율 감면도 가능하다.
기업의 이익, 이사회 결정,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 배당은 줄거나 없어질 수 있다. 그런 불확실한 수익에 대해, 정부가 미리 세금을 많이 걷겠다고 나서는 것은 투자자 입장에서 불합리한 선세금 구조에 다름 아니다. 특히 배당을 받기도 전에 예상 과세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장기투자자나 중산층 투자자에게는 상당한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지금처럼 배당소득세가 금융소득종합과세의 틀에 묶인다면, 자본시장은 더 이상 재도약의 발판이 될 수 없다. 장기 투자자들이 이탈하고, 우량 기업들이 자금 유치를 해외로 돌리는 ‘탈출’ 현상만 가속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정부는 이소영 의원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바탕으로 배당소득 분리과세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배당소득 2000만원 이하의 경우 연 10~20% 수준으로, 종합과세보다 훨씬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이로써 투자자는 배당 수익에 대한 세금 부담을 사전에 예측 가능하게 된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부자 감세’라는 정치적 구호에 갇혀서는 안 된다. 이것은 투자를 유도하고 자본시장에 숨을 틔워주는 정책적 안전판이다. 자본시장이 살아야 기업이 자라고,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와 세수가 생긴다. 분리과세는 특혜가 아니라 구조적 호흡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투자자들은 세금보다 앞선 리스크를 감당하고 있다.
정부는 프랑스처럼 기업들에 더 많은 짐을 지우기보다, 시장의 숨통을 열어줄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자본시장을 키우겠다는 정책의지가 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세금 확대가 아니라 ‘투자 유도형 시장환경 조성’이다. 정부는 미래의 세수보다, 현재의 자본시장 체력을 더 중요하게 봐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조세 논쟁이 아니라, 투자 심리를 살리고 자본시장 경쟁력을 되살리는 제도 설계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