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퇴보하는 보험업계, 왜 신기술에 눈감나
글로벌 인슈어테크 물결에서 뒤쳐질 우려 커져
“보험연수원은 디지털자산 교육 필요성에 공감하는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디지털자산을 통한 금융혁신을 이끌 인재 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최근 하태경 보험연수원장은 드림래더스·세븐라인랩스와 함께 디지털자산 교육 업무협약을 맺고 이같이 강조했다. 드림래더스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과 NFT를 활용한 블록체인 교육 플랫폼 ‘에덤’을, 세븐라인랩스는 AI 에이전트 기반 e스포츠 플랫폼 ‘미라클 플레이’를 운영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협력 선언이 실제 보험회사의 신사업 진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디지털 자산’ 논의는 국회 입법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7월 28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제도를 도입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 논의를 본격화했다.
해당 법안은 금융위원회·한국은행·기획재정부가 참여하는 ‘가치안정형 디지털자산위원회’를 설치해 발행·유통 전 과정을 감독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에 안착할 경우, 카드·은행·핀테크와 달리 보험사는 어떻게 대응할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송금 부문 혁신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 저장뿐 아니라 결제·송금에서 기존 시스템 대비 처리 속도와 비용 절감 측면에서 강점을 가진다.
◇ 스테이블 코인 도입에 분주한 은행·카드·플랫폼 업계
은행권에서도 관심이 높다. 최운재 NH농협은행 디지털전략사업부문 부행장은 최근 한 언론을 통해 “제도권으로 들어온다면 글로벌 송금은 물론 실생활 결제 시스템에서 혁신을 이끌 수 있다”고 전했다.
케이뱅크·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은 물론이고,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BC카드 등 8개 카드사는 ‘스테이블코인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법·제도 연구 및 관련 상표권 출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허정보 검색서비스 ‘키프리스’에 따르면, 신한카드는 6월 27일 ‘SHKRW’를 비롯해 총 9종의 스테이블코인 상표를 등록했다. KB국민카드는 지난달 1일 ‘STBKBC’ 등 35개 상표를 한꺼번에 출원했다. 그 뒤를 이어 우리카드(9개), 롯데카드(36개), 현대카드(51개), BC카드(24개)가 각각 상표 출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BC카드의 경우, 스테이블코인 전담 조직을 사내에 꾸려 시장 동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한 체계를 갖췄다. 신한카드 역시 전문가들로 구성된 스터디그룹을 운영하며 중장기 대응 전략을 다듬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자산이 결제·송금 수단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남은 과제가 많지만, 제도권에서 먼저 발판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라며 “상표권 선점은 향후 출시될 발행·결제 플랫폼의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금융권 전반이 기술 도입 준비에 나선 가운데, 카드사들은 ‘플랫폼 주도권’을 쥐기 위해 내부 역량 집중에 나섰다. 특히 주요 카드 브랜드들이 대규모 상표 출원에 나선 것은 ‘디지털 원화’ 시장에서의 선점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박상진 네이버페이 대표 역시 6월 기자간담회에서 “비금융회사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허용되면, 제도 하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플랫폼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네이버페이의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 신기술 수용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보험업계
그러나 보험업계의 움직임은 극히 제한적이다. 최근 국내 손해보험사 11곳이 암호화폐 거래소·수탁 업체 대상 배상책임보험을 출시했지만, 이는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사후 보장’에 불과하다.
삼성화재 역시 ‘가상자산사업자 배상책임보험’을 내놨으나, 발행·유통·환매 같은 본질적 시장 주도 기능으로 확장되진 못했다. 보험사가 산업 패러다임 변화의 선봉이 아닌 추격자로 한 발 물러나는 모양새다.
신기술 수용 부문에서 보험사의 보수적인 자세는 마이데이터 도입 시에도 드러났다. 정부가 2022년 말 금융 마이데이터 시범사업을 시작했을 때, 은행·카드사는 고객 데이터 기반 서비스 개발을 서둘렀으나 보험사는 사업 허가와 내부 시스템 점검에 머물렀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마이데이터 정보제공 범위는 은행·보험·카드 등 전 분야로 720개 항목으로 확대됐지만, 보험업계는 지연 가능성을 이유로 조심스러운 입장을 고수했다.
AI 활용 면에서도 지지부진하다. 보험연수원 하태경 원장은 “보험산업이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려면 AI 기반 금융교육과 리스크 예측 모델 개발이 필수”라고 강조했지만, 실제 보험사들은 사기 탐지·청구 심사에만 AI를 시범 운영 중이다.
보험 상품 판매 단계의 로보어드바이저(RA) 활용은 법적 근거 부족으로 정체된 상태다. 생성형 AI의 활용 가능성을 분석한 보고서는 “개인 맞춤형 상품 추천 등 응용 분야가 유망하지만, 정확성·신뢰성 확보와 규제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험업의 보수적 문화와 레거시(전통) 시스템 의존도 또한 장애물이다. 회계법인 KPMG는 디지털금융 보고서에서 보험사는 데이터 호환성과 비용 절감 관점에서만 디지털 전환을 강조해 왔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관행은 혁신 적용을 지연시키고,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업과의 격차를 확대한다.
이대로 가다간 ‘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인슈어테크의 물결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인슈어테크 투자 규모는 2024년 약 100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블록체인·AI·사물인터넷(IoT)을 결합한 상품을 출시 중이다. 반면 국내 보험사는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보다 규제 프레임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미래 금융의 중심에서 보험업계가 또다시 ‘시행착오형 추격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디지털 리더’로 거듭날 것인지는 업계의 결단과 실행 속도에 달려 있다. 이제는 눈앞의 안전지대에 머물지 말고, 산업 전환의 최전선으로 뛰어들 때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