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황 악화…배드뱅크 분담까지?
상반기 순익 감소·대손비용 증대 조달비용은 여전채 스프레드 민감
상반기 카드사 순이익이 18% 넘게 줄고, 연체율은 1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와 함께 ‘배드뱅크’ 분담 논의까지 겹치며 업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여전채·ABS가 조달의 버팀목 역할을 하지만, 경기 둔화와 정책 변수에 따라 하반기 업황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 카드사 여신 연체율 최고치…정부 규제·배드뱅크 논의까지 겹쳐
26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업 카드사들의 순이익은 1조1153억원 수준으로 집계돼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1% 줄었다. 2분기만 놓고 보면 감소 폭은 더 뚜렷해 22% 가까이 떨어졌다. 경기 둔화와 소비 심리 위축이 맞물리면서 결제 증가세가 둔화했고, 무엇보다 연체율이 빠르게 오르면서 대손비용이 늘어난 것이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반기 카드사 대손비용은 1조7597억원에서 1조9453억원으로 10.5% 증가했다. 카드사가 장기간 쌓아온 이익 구조가 연체율 상승이라는 변수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실질 연체율은 10년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다. 올 1분기 전업 카드사 8곳의 1개월 이상 실질 연체율은 평균 1.93%로 집계됐는데, 이는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부 회사는 2%에 근접하거나 이미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계의 소득 대비 부채 부담이 커지고, 중저신용자 중심으로 대출이 늘어나면서 채무 상환 여력이 급격히 약화된 결과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정부의 금융지원 조치로 억눌려 있던 연체율이 빠르게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이런 연체율이 장부상으로는 일시적으로 낮아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카드사들이 연체 채권을 상각하거나 매각해 분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통계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카드 등 6대 카드사 가운데 일부는 2분기 연체율이 소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상각 효과가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회계상의 착시’라고 지적한다. 겉으로는 실적이 안정된 듯 보이지만 실제 현금흐름과 회수율을 고려하면 위험은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 리스크는 카드업계를 더욱 압박한다. 정부는 6월 27일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내놓으며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규제, 전입 의무 강화 등을 발표했다.
7월부터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가 시행돼, 전 업권 가계대출에 최대 1.5%포인트를 가산해 상환능력을 평가하도록 했다. 이는 신용대출 여력을 직접적으로 제한해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수요에 제약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입 한도가 줄고, 카드사 입장에서는 성장 동력이 위축되는 셈이다.
가장 뜨거운 논란은 ‘배드뱅크’다. 정부와 여당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무담보 채권을 대규모로 매입해 소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별도 기구를 세우고 약 8000억원 규모의 장기 연체채권을 사들인 뒤 절반인 4000억원은 금융권이 분담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카드사들은 분담 부담이 과도하다며 반발한다.
이미 카드사 이익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분담금이 현실화되면 재무 여력이 더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연체 상환 유예로 단기적으로는 통계가 좋아 보이겠지만, 결국 연체율은 더 오르고 대손충당 부담만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아직 구체적 방안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업계는 최종 설계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하반기 여전채 흐름 관전 포인트는 무엇보다 ‘각 카드사가 연체율과 대손비용을 얼마나 안정화할 수 있느냐’에 있다”며 “조달비용 역시 여전채와 ABS 시장의 스프레드와 투자 수요 흐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배드뱅크 분담 구조와 가계대출 규제 기조는 정책 변수로, 상황에 따라 업황이 급변할 수밖에 없다”며 “투자자 심리 또한 금리와 경기 흐름, 카드 ABS에 대한 신뢰도에 따라 크게 요동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배드뱅크, 위기이자 기회”…분담 구조 따라 카드사 명암 갈린다
반대로 배드뱅크를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배드뱅크 설립 비용 분담 비율이 낮게 책정된다면 오히려 정부 재원을 통해 부실채권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채권시장 다른 관계자는 “설립비용 분담 구조가 합리적으로 조정된다면 부실 자산을 털어내는 동시에 건전성 지표를 개선할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배드뱅크 분담 기준이 순이익 감소 폭이나 업권별 연체채권 규모를 기준으로 정해질 경우 수익성이 가장 나쁜 카드사가 가장 많은 부담을 지게 되는 구조적 모순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부담이다.
조달비용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카드사의 주된 자금 조달 창구인 여전채 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금리 변동에 민감하다. 최근 ‘AA-’ 3년물 여전채 스프레드는 동급 회사채보다 27bp 가량 높게 형성돼 있어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이지만, 발행사 입장에서는 가산금리가 높아 조달 비용이 쉽게 뛸 수 있는 구조다.
특히 단기간 내 스프레드가 10~30bp만 확대돼도 이자 비용은 수백억원 단위로 불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카드사들은 하반기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차환 전략을 세우고 있다.
자산유동화증권(ABS) 시장은 또 다른 변수다. 상반기 전체 등록 ABS 발행액은 21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6% 감소했다. 이는 정책성 주택저당증권(MBS) 발행이 줄었기 때문이며, 오히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기반 ABS는 급증했다.
카드·할부리스 채권을 기초로 한 ABS 발행은 꾸준히 유지되며 카드사 조달 여력을 떠받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투자자들도 안정적인 캐리 수익을 선호하며 카드 ABS를 일정 부분 흡수하고 있다.
투자자 시각에서 보면 여전히 ‘캐리 매력’은 존재한다. 글로벌 금리 인하 기대감이 살아나고, 국내 규제가 강화되는 복합적 상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자금은 여전채와 카드 ABS를 찾고 있다. 그러나 경기 둔화와 고용시장 위축이 본격화되면 연체율과 대손비용이 다시 불거지고, 이는 신용 스프레드 확대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각에선 “하반기 크레딧 시장이 박스권 내 우상단 리스크를 안고 있다”고 경고한다. 지금은 투자 수요가 카드사의 조달비용 상승을 완충하고 있지만, 조금만 환경이 바뀌면 시장은 빠르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카드사들은 연체율 방어와 조달비용 관리라는 두 가지 무거운 짐을 동시에 안고 있으며, 정부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지에 따라 향후 업황의 무게추가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