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스테이블코인, 중앙은행 안전장치 필요”

윤창현 “코스콤, 스테이블코인과 시큐리티 토큰 추진” 최재원 교수“한국의 수요·금융시스템·통화정책과 충돌 소지 면밀히 점검해야”

2025-08-27     조성진 기자
윤성관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디지털화폐연구실장.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이 새로운 화폐가 아니라 기존 화폐의 토큰화”라며 “안정 운용에는 중앙은행 백스톱(안전장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학계에선 “달러 페깅(연동) 중심의 승자독식 시장에서, 환매가 몰리면 디페깅·시장 경색이 발생할 수 있고, 규제가 느슨한 영역으로 쏠리는 ‘규제 차익’까지 겹치면 시장 중심의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안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스테이블코인은 ‘토큰화된 기존 화폐’…관건은 중앙은행 백스톱


27일 한국파생상품학회와 한국금융정보학회는 서울 RISE 성균관대 사업단과 함께 서울 여의도 IFC에서 ‘스테이블콩니 도입과 발전 방향’을 주제로 ‘2025년 산학협동연구포럼’을 열었다. 

윤성관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디지털화폐연구실장은 이날 기조 발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본질과 국내 적용 방향을 놓고 “새 화폐가 아니라 기존 화폐를 분산원장 위에서 토큰화한 것”이라며 “안정적으로 굴리려면 결국 중앙은행의 백스톱(Back-stop)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스톱이란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마지막 단계에서 확실히 막아주는 장치나 약속을 말한다.

윤 실장은 “스테이블코인은 전혀 새로운 발명이 아니고 ‘기술을 덧댄 옛 개념’에 가깝다”며 “과거에도 유사한 시도가 있었고, 과도한 대출·운용으로 실패한 역사도 있다”고 했다. 이어 “중앙은행은 ‘은행의 은행’으로서 상업은행 통화를 교환해 주는 최종 결제기관”이라며 “이 위계 속에서 블록체인은 기존 화폐를 토큰화해 같은 기능을 더 표준화된 방식으로 수행하게 하는 기술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금 토큰’을 넓은 의미의 스테이블코인 범주에 포함시켰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의 관점처럼 토큰화된 예금은 넓게 보면 스테이블코인에 속한다”며 “중요한 차이는 예금 토큰에는 원래의 예금 계약이 따라다닌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예금 토큰 기반의 유스케이스(실 사례)가 존재한다”며 “새로운 코인을 찾기보다, 있는 예금 토큰을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퍼블릭(개방형) 블록체인을 직접 발행해 스테이블코인을 대체할 수 있다”며 “다만 운영주체·데이터 주권 등을 이유로 신중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유럽에서는 ‘퍼블릭 체인 위 디지털 유로’ 가능성까지 거론된다”며 “역사는 순환하고, 결국 공공 화폐 체제로 정리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전경. 연합뉴스 제공.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 요건에 대해서는 구체적 사례를 들었다. 그는 “대규모 상환 압력이 있는 자산을 단순히 은행에만 맡겨둘 수 없다”며 “예컨대 일부 스테이블코인은 블랙록이 운용하고, 역레포(RRP)를 통해 사실상 연준의 시설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시장 구조와 규제 리스크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폐쇄적 생태계를 지향하기 쉬워 독과점이 발생한다”며 “토큰형 발행은 계정형보다 규제 강도가 낮아 고객확인의무·자금세탁방지(KYC·AML) 비용이 낮아지는 ‘규제 차익’ 유인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 재무제표에서 현금·현금성자산 분류 문제처럼 회계 이슈도 뒤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제 인프라로서의 한계도 짚었다. 그는 “대규모 결제는 ‘결제 유동성’이 핵심인데, 패깅이 0.99달러처럼 미세하게라도 흔들리는 자산을 기초로 레이어(단계)를 쌓는 것은 위험하다”며 “스테이블코인이 모든 분야의 만능 열쇠라는 주장은 넌센스에 가깝다”고 했다.

국내 로드맵으로 윤 실장은 ‘예금 토큰과 유니파이드 레저(BIS 제안 통합 원장)’를 결합한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중앙은행 머니는 은행 간 예금 토큰 이전을 뒷단에서 결제해 주는 용도로 두고, 은행들이 디파짓(예치) 토큰을 발행해 표준화된 프로토콜(통신 규약) 상에서 상호 운용하도록 하자”며 “현행 제도를 크게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토큰화의 장점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여러 블록체인을 하나의 지갑으로 연결하는 ‘핀터넷(Finternet)’ 개념을 적용해 이용자 경험을 단순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에 국내 데이터를 얹고 처리하려면 비허가형 퍼블릭 체인과는 맞지 않는다”며 “가능한 영역에서 예금 토큰을 중심으로 표준화·상호운용·백스톱을 갖춘 3세대 지급결제로 진화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윤 실장은 “이를 위해 발행자 요건과 운용 프레임을 엄정히 설계하고, 필요하면 중앙은행이 안정성을 부여하는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학계 “대규모 환매 땐 채권시장 경색 우려”


최재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생태계의 기초 통화이고, 지금 쓰이는 것은 대부분 달러에 패깅된 담보형”이라며 “한국은 수요와 여건이 다른 만큼 제도 설계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의 경우, 가격 변동성이 커서 화폐로 쓰기 어렵다”며 “그래서 나온 것이 스테이블코인이고, 퍼블릭·퍼미션리스(누구나 참여 가능하도록 분산화된) 블록체인에서 누구나 전송 내역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 연동 방식과 준비자산에 대해선 담보형이 대세라고 짚었다. 최 교수는 “테라·루나 같은 알고리즘 기반 모델은 사실상 시장에서 퇴장했다”며 “지금은 은행 예금이나 단기 국채 같은 안전자산을 담보로 두는 구조가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이 겉으로는 단기채를 담는 점이 비슷하지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사실상 은행처럼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쓰고, 준비자산에서 나는 수익을 자체적으로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최재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최 교수는 “스테이블코인 수요의 90% 이상이 가상자산 거래·디파이(탈 중앙화 금융) 등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나오는데, 국제 송금·지급결제는 아직 10%도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시장은 테더가 60% 넘는 점유율을 차지한다”며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유동성이 있는 곳으로 더 유동성이 몰리는 성향이 뚜렷하고 유로화 스테이블코인은 1%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최재원 교수는 “퍼블릭 체인에서 자금 흐름 추적은 쉽지 않고, 대규모 환매가 일어나면 준비자산 매각이 채권시장 경색으로 번질 수 있다”며 “2023년 USDC의 가격 괴리 사태 당시에도 실제로 디페깅이 발생했고 국채 금리에 악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되면 은행 예금이탈로 민간대출 여력이 줄 수 있다”며 “국가의 화폐 독점력에서 파생되는 수익을 민간 발행사가 가져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미국은 명확한 발행자 요건과 준비자산 규정을 통해 역외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하려는 움직임”이라며 “이 과정이 달러의 지배력을 더 공고히 하고 미 국채 수요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원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도입은 필요하고, 토큰화 자산·RWA·펀드 등 블록체인 생태계 인프라로 의미가 있다”며 “다만 승자독식 시장에서 진입장벽이 낮으면 과열 경쟁과 규제 차익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감사 직전 안전자산만 들고 있다가 평소에는 고위험·장기자산을 채우는 유인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 최소자본금이 아니라 은행처럼 자본비율(레버리지) 규제가 필요하고, 소비자 보호와 공공성 요건도 부과해야 한다”며 “한국법·미국법을 따르지 않는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유통은 제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미국의 제도화 흐름을 그대로 복제할 게 아니라 한국의 수요·금융시스템·통화정책과 충돌할 소지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며 “지금 당장 수요가 크지 않더라도 향후 혁신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질서 있게 문을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테이블코인, 머니로서의 기능 정착 중요 


한편 윤창현 코스콤 대표는 “비트코인이 원래 달러를 대체하는 화폐가 되기 위해 태어났는데, 열심히 만들어 거래하다 보니 자산이 돼버렸다”며 “비트코인을 머니(화폐)가 아닌 에셋(자산)으로 보면서 시장에서는 떠난 자리를 메꾸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탄생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장 스스로 진화하면서 빈자리를 메우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며 “가상자산이 머니로서의 기능을 정착시키는 과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코스콤이 추진 중인 블록체인 기반 증권·자금 결제 혁신도 소개했다. 그는 “증권을 코인으로 만들고 돈을 코인으로 만들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두 코인을 교환해 즉시 결제가 가능하다”며 “기존 T+2일이 걸리는 결제가 T+0으로 단축된다. 이는 ‘아토믹 세틀먼트’ 개념으로, 편리하고 혁신적인 변화”라고 설명했다.

윤창현 코스콤 대표.

아토믹 세틀먼트란 거래와 결제가 동시에, 한 번에 이뤄지는 즉시 정산 방식을 말한다. 주식·채권 거래처럼 기존에는 매매 후 결제까지 2일(T+2) 정도 걸렸지만, 아토믹 세틀먼트를 적용하면 증권을 주는 순간 돈도 동시에 이동해 지연이나 불이행 위험이 사라진다.

블록체인과 스마트계약 기술을 활용해 구현할 수 있으며, 실시간(T+0) 결제와 안전한 금융 거래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혁신으로 평가된다.

윤 대표는 “시큐리티 토큰(토큰증권)과 스테이블코인이 함께 연결되면 새로운 금융 생태계가 열릴 것”이라며 “코스콤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과 시큐리티 토큰 발행·유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새로운 노력들이 결실을 맺는다면 금융 분야에서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혁신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학회와 업계가 협력해 생태계를 잘 정착시켜 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