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장 위기' SK하이닉스, 韓-美 이원화 가능성 고개
SK하이닉스, 中 반도체 공장 美첨단장비 반입 장벽 발생 中 사업장 위기에 韓-美서 D램·낸드 역량 확대 가능성↑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 반도체 기업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자격을 전격 박탈하고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때마다 건별 허가를 요구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중국에 여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전략 변화에 이목이 집중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인텔을 'VEU' 프로그램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조치는 다음달 2일 관보에 정식으로 게시될 예정이며 유예기간 120일이 지나면 시행된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은 내년 1월부터 중국에서 운영 중인 공장에 현상 유지를 위한 장비 반출만 가능하고 생산능력 확대나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한 장비 도입은 허가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VEU는 미국이 2022년 10월 중국 반도체 견제 정책의 일환으로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특정 기업에게만 허용한 예외 조치다. VEU를 통해 인텔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의 개별 허가 없이도 미국산 첨단 장비를 중국 공장으로 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미 정부가 VEU를 철회하기로 결정하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수십억달러를 들여 투자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운영에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먼저 미국산 장비를 중국 공장에 들일 때마다 건건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업계에서는 연간 1000건 가량의 수출 허가신청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허가 요청을 하더라도 미국이 제때 승인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첨단 장비를 들이지 못하면서 고성능 칩 생산이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세계 5대 반도체 장비업체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KLA,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 등 세 곳은 광학·식각·이온주입 등 주요 공정장비를 독점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내 공장의 생산 역량 확대나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한 허가는 하지 않을 의향"이라고 밝히는 등 중국 공장에 미국산 첨단 장비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국에 주요 공장을 보유한 SK하이닉스가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다. HBM(고대역폭메모리) 선두로 승승장구 중인 SK하이닉스가 새로운 위기에 어떤 대책을 마련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본래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공장에서 전체 D램 생산량의 40%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다롄공장(낸드플래시), 충칭공장(첨단패키징) 등 주요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대중국 견제를 강화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생산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형국이다. 특히 HBM 수요가 여전히 높은 가운데 최근 데이터센터 수요의 증가로 낸드플래시도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메모리 시장에서 두 분야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한국에서 첨단 사양의 칩 생산량을 증대하는 한편 미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때 일본을 주 생산처로 거론하기도 했으나 최근 낸드플래시 자회사인 솔리다임의 일본법인을 청산하면서 가능성이 낮아졌다.
일단 올해 상반기 설비투자에만 11조2490억원을 사용한 SK하이닉스는 현재는 국내 사업장인 이천 M16 공장 생산능력을 월 17만장까지 끌어올려 우시 공장 수준에 근접시킨 상태다. 내년부터는 우시 공장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청주 M15와 M15X, 용인 클러스터 인프라 투자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HBM 생산량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다. 특히 M15X 공장은 오는 4분기에 준공을 마칠 예정으로, HBM 생산량 대폭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또 미국에서는 지난해 4월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AI 메모리용 첨단(어드밴스드) 패키징 시설을 짓고 있다. 오는 2028년 가동이 목표며, HBM 전용 첨단 패키징 및 테스트 공장으로는 미국 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다.
해당 미국 공장은 SK하이닉스의 AI 반도체 수요 폭증에 대응하는 핵심 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해당 공장을 통해 엔비디아와 AMD 등 북미 고객사에 더 빠르고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마련하고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미국에서 실적도 상승하는 중이다. SK하이닉스 미국법인은 올해 상반기 매출 24조7493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기록을 세웠다. 빅테크 고객들이 모여있는 미국에서 HBM 매출이 늘어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예기간이 있는 만큼 해당 기간 동안 SK하이닉스도 동향을 살필 전망"이라며 "생산 전략을 바꾸는 것을 빠른 시간 안에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